• 37° 32' 58.41" N 127° 4' 42.918" E, 37° 32' 55.902" N 127° 4' 57.756" E…. 숫자와 기호, 영문의 배열은 사진의 제목들이다. 제목을 보고 사진을 유추하기란 쉽지 않다. 지리에 능한 이라면 이 배열이 GPS 좌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북쪽을 뜻하는 N 앞은 위도 동쪽을 뜻하는 E 앞은 경도. 하지만 이 좌표와 사진의 연관성은 무엇일까. 단순히 사진을 찍은 자리를 의미한다면 왜 하필 그 자리가 사진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린이대공원

    1973년 5월 5일 박정희 정부에서 어린이날을 기념해 개장한 어린이대공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학생소년궁전에 대항하려는 뜻을 품고,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시설로 지어졌다. 그 시절의 ‘어린이’로서 교육받고 성장한 사진가 김준수는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여러 기억을 갖고 있었다.

    37° 32' 55.902" N 127° 4' 57.756" E, 어린이대공원

    GPS 좌표의 자리는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앞이다. 박정희 정권의 붕괴이후 퇴락하던 어린이대공원은 2006년 무료 공원화되었고, 2009년 개장 36년 만에 대대적인 재단장과 함께 가족 단위 휴식공간으로 변화했다. 정체성이 변화한 공간 앞에 선 사진가 김준수는 ‘어른’으로서, ‘사진가’로서 사진을 남겼다.

    다시 37° 32' 55.902" N 127° 4' 57.756" E, 어린이대공원

    GPS 좌표의 자리는 다시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앞이다. 하지만 시간은 2016년이다. 2009년 찍은 사진을 들고 사진가 김준수는 같은 위치에서 또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전에 찍은 첫 번째 사진은 위치를 나타내는 표지판처럼 두 번째 사진 가운데 섰다.

    3개의 시공간과 2개의 사진 사이를 잇는 것은 그 자리이다.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흐름에서 명확하게 남아있는 것은 객관화된 좌표뿐이었다. 기억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또 다른 사진으로 이미지화된 어린이대공원은 현실의 어린이대공원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도, 동일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필 그 자리가 사진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진위주 류가헌, '어린이대공원_다시'

    2017년 4월 25일부터 류가헌 전시장의 벽면은 김준수가 두 번째 촬영한 사진들로 랩핑된다. 어린이대공원은 여전히 서울 광진구 능동에 존재하지만, 전시장에는 김준수가 재구성해 재현한 어린이대공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김준수의 어린이대공원은, 이전 그대로를 복재한 어린이대공원이 아니라 어떤 시점과 시대를 통과한 ‘그 다음’의 어린이대공원이다. 사진의 제목인 좌표들은 전시장으로 옮아와 사진을 찍었던 자리만을 지시하는 것에서 나아가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으로 탈바꿈한 자리를 지시하게 된다. 다시 반복된 어린이대공원이지만 작가는 ‘다시’가 아닌 ‘어린이대공원’에 방점을 찍었다.

    <어린이대공원_다시>는 작업의 과정부터 그 결과물까지 사진가 김준수가 어린이대공원에서 맞닥뜨렸던 고민과 감정을 그대로 재현한 사진전이다.

    진실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거짓의 프로파간다 공간에 가까운, 어린이대공원. 그곳에서 인생의 무력함을 실감하게 되는 것을 왜일까?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익숙함에서, 안도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마주한다. 내게 낯익은 대상이었던 어린이대공원을 낯선 공간으로 재포착함으로써, 혹시 이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는 않을까? 새로 포착한 진실로 구시대의 진실을 갱신하는 일은 옳을까?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 역시 김준수와 동일한 물음표를 갖고 전시장을 나가게 될 것이다. 전시는 4월 25일부터 30일까지다.

    김준수 Kim Joonsoo
    kimjoonsooc@naver.com


    <이력>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 졸업 『석사논문 <무허 정해창 연구>』
    한남대학교 디자인학과 겸임교수 역임    

    <출판>

    2012. 9  <이제가면 언제오나> 도서출판 알마

    <전시>

    ◇ 개인전

    1997. 12 <異情友>전 (서남아트센터. 서울)
    2011. 5 <Hello Gabriel~I>전 (갤러리 룩스. 서울)
    2011. 12 < Hello Gabriel~II>전 (중앙로역 문화공간. 대구)

    그룹전

    1994. 12 제주 여름 사진 워크샵 (한마당 갤러리. 서울)
    1998. 11 호남 사진축제 국내작가 초대전 (패밀리 랜드 상설 전시장. 광주)
    2001. 1 <young portfolio acquistion 2000> (kiyosato museum. 일본)
    2002. 5 <young portfolio acquistion 2001> (kiyosato museum. 일본)
    2003. 1 <make- up> 전 (고도갤러리. 서울)
    2011. 11 <Worldwide@young portfolio> (kiyosato museum. 일본)
    2012. 5 <Living with Red Ribbon>전 (요기가표현갤러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