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재용 대가관계 합의’ 공소사실 입증에 실패
  • 지난해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조특위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해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조특위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진에 대한 뇌물공여 등 혐의 공판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종착역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사건을 심리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현재 오전 오후 2명씩 진행 중인 증인신문을 하루 3명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공판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끝내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냈다.

    현재까지 법정에 나온 증인은 특검이 신청한 인사들이다.

    특검은 이들을 통해 공소사실의 핵심 쟁점, 즉 삼성의 정유라 승마지원, 미르 및 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금 출연 과정,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운영을 주도한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의 후원 등을 처음부터 다시 살피면서, 이들 행위가 모두 포괄적 뇌물죄를 구성하는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다만 특검의 기대와 달리,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증인 대부분은, 자신이 특검 혹은 검찰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진술한 중요사항에 대한 답변취지를 번복했다.

    증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참고인 진술에 대해 “그런 취지로 답변을 한 것이 아니었다”라거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답해 특검의 기대를 저버렸다.

    부정확한 증인 진술이 거듭되면서, 변호인단은 특검이 단순 참고인에 대해서도 12시간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고, 심지어 새벽 3시가 돼서야 마무리된 조사 종료시점을 전날 오후 10시50분으로 기재하는 등 조서를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사실마저 확인됐다며, 특검이 유죄의 유력한 증거로 제시한 참고인 진술의 신뢰도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검은 19일 16차 공판부터 다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통합삼성물산의 순환출자고리 해소과정’에 초점을 맞춰, 삼성 측이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였다고 강조했다.

    19일 출석한 일성신약 윤석근 대표와 같은 회사 채권관리팀장은 ‘삼성 임원진이 물산-모집 합병에 앞서 일성신약이 보유하고 있던 물산 주식 330만주의 매수를 제의했으며, 시세 차익 보전을 위해 일성신약의 신사옥을 무상으로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24일 17차 오전 공판 증인으로 나온 윤OO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프록시팀 팀장은, 물산과 모직 모두에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국민연금의 의뢰를 받고 합병의결에서 연금공단이 반대의견을 내는 것이 적절하다는 권고가 담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24일 오후와 25일 오전 각각 증인으로 출석한 공정위 석OO 사무관, 곽세붕 공정위 상임위원(물산 합병 당시 경쟁정책국장)은, 통합삼성물산 순환출자고리 해소와 관련해 두 차례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당초 삼성 측은 주식 1천만주 매각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나, 공정위 김학현 부위원장이 삼성 미래전략실 김종중 사장을 만난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진술했다.

  • 삼성물산 사옥. ⓒ 사진 뉴시스
    ▲ 삼성물산 사옥. ⓒ 사진 뉴시스


    이들은 김 부위원장이 통합삼성물산 보유주식 처분 문제를 전원위원회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전원위 회의 결과 삼성의 보유주식 처분 물량이 500만주로 줄어들었다고 증언했다.

    증인들은 전원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위원장의) 판단사항”이라고 했다.

    석OO 사무관은 통합삼성물산 주식 물량 매각과 관련해 청와대 인OO 행정관으로부터 ‘500만주만 처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도 했다.

    특검은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삼성은 그룹 임원진이 주요 소액주주를 직접 만나 시세차익 보전을 조건으로 보유주식의 매수를 제안하는 등 물산-모직 합병에 각별한 공을 들였으며, 통합삼성물산 순환출자고리 해소 과정에 삼성 측의 로비가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들의 증언은 ‘이재용-박근혜 독대’ 과정에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공소사실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검은 증인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공소사실이 안고 있는 논리적 비약 혹은 모순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윤석근 대표 등 일성신약 관계자의 증언은 ‘전문진술(傳聞陳述)’이란 점에서 증명력 자체에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변호인단은 “윤석근 대표는 삼성 임원진이 골프 회동을 하면서, 물산-모직 합병 찬성과 시세차익 보전 등을 제안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골프회동은 윤 회장 측이 먼저 제안한 부부동반 모임이었다”며, “특정한 로비를 목적으로 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윤 회장은 삼성물산이 상한가를 기록했을 때 개인 보유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아 이익을 봤다“며, ”검찰은 합병으로 인한 소액주주의 피해를 강조하고 있지만, 일성신약 윤 회장 일가는 오히려 보유주식을 팔아 이익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일성신약은 소액주주 보호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득을 취하기 위해 삼성을 상대로 ‘주식매수 결정가격 소송’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박영수 특별검사. ⓒ 사진 뉴시스
    ▲ 박영수 특별검사. ⓒ 사진 뉴시스


    특검이 윤 대표에 이어 부른 윤OO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 프록시팀 팀장은, 본인을 포함해 3명이 전담해 약 한달 가량 분석 작업을 진행,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윤 팀장은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삼성물산의 주주가치 및 주주권익 훼손이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윤 팀장은 ‘물산과 모직이 합병할 경우 주주인 국민연금공단 입장에서는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저평가돼 상대적으로 주주권익이 훼손된다는 취지냐’는 특검의 질문에 “저희 판단에는 합병의 시너지 계획안이 미흡해서 시너지 자체에 대한 효과가 의문시됐다”고 말했다.

    윤 팀장은 ‘삼성물산의 합병 배경’을 묻는 특검의 질문에 대해서도 “지배주주 일가의 경영권 승계 관련 고려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평가되며, 합병이 이뤄지면 이재용 부회장은 시가 7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 4.06%를 간접적으로 확보하게 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높이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는 “구 삼성물산 주가가 낮으면 낮을수록, 제일모직 주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제일모직 대주주 이재용 부회장의 신삼성물산 지분율이 높아지는 결과가 발생한다”며, “삼성물산의 주가가 가장 불리한 시점에 합병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윤 팀장의 이런 주장은 변호인 반대신문 과정을 거치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윤 팀장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국민연금이 합병 당일까지 총 500만주의 물산 주식을 내다 팔았으며,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같은 기간 동안 1천600만주를 매도하면서 물산의 주가가 내려간 사실을 분석보고서 작성 시점에는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증언은, 합병 시점 물산의 주가가 내려간 원인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의 집중적인 매도 때문이었으며, 삼성 측이 주가를 고의로 떨어트렸다거나 일부러 특정 시점을 골라 합병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변호인단은, 계열사 간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윤 팀장의 판단과 배치되는 근거도 제시했다.

    변호인단은 “윤 팀장이 작성한 분석보고서에는 재무시너지 항목이 없다”면서, 합병 후 삼성물산의 신용등급이 두 단계나 상승한 사실을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윤 팀장이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구하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DCF 평가’를 하지 않은 사실도 짚었다. 윤 팀장은 변호인단의 질문에 “찾을려면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DCF는 기업 내부 자료가 필요했기 떄문에”라며 맡 끝을 흐렸다.

    윤 팀장은 합병 이전 물산과 모직이 모두 대주주의 지배력 아래에 있었으며, 합병을 했다고 해서 대주주 일가의 그룹 지배력에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변호인단과 윤 팀장의 신문 내용.

    변호인단 :
    결국은 합병 이전에도 물산과 모직은 삼성그룹 내에서 동일한 실질적 지배 받고 있었다는 점 인정하는가.

    윤 팀장 :
    네.

    변호인단 :
    (합병 전) 물산이 보유한 전자 주식 4.06%는, 삼성 실질적 지배아래 있었던 거죠.

    윤 팀장 :
    실질적으로 (지배력이)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변호인단 :
    물산 자체가 삼성 계열사로서 동일한 실질적 지배하에 있었다고 하면서 전자주식에는 지배력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인가? 물산이 가지고 있는 전자주식도 지배주주의 지배력 아래에 있는 것 아닌가?

    윤 팀장 :
    그렇게 볼 수 있다.


    물산과 모직의 사업 부분 중 겹치는 부분이 적고 계열사간 합병은 시너지 효과가 적다는 윤 팀장의 판단도 무력화됐다.

    변호인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6년 기업결합 동향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최근 3년간 합병 사례 428건 중 99%가 계열사간 합병이었다”며. “증인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캐물었다.

    윤 팀장은 “저 자료는 확인을 못했다”고 시인하면서, “보고서 작성할 떄는 ‘시너지가 없으니 반대’라고 한 게 아니라, 종합적 검토결과”라며, 특검의 주신문에 대한 답변과는 결이 다른 진술을 했다.

    윤 팀장은 보고서 작성 당시, 연금공단이 물산 뿐만 아니라 모직의 주식도 보유 중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날 오후 공판에 출석한 석OO 공정위 사무관과 25일 법정에 나온 곽세붕 공정위 상임위원의 증인신문은 증언 당사자만 다를 뿐, 질문과 답변 내용이 거의 유사했다.

    우선 석 사무관은 통합삼성물산 출범 후 순환출자고리 해소 관련 업무일지를 작성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통합삼성물산 주식 처분물량이 최초 900만주에서 1천만주로 변경됐다가 공정위 전원위원회를 거쳐 500만주로 줄어든 과정을 설명했다.

    두 사람의 증언을 종합하면, 통합삼성물산 출범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고리는 합병 전 10개에서 7개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를 위해 대주주 일가 및 계열사가 통합삼성물산 보유 주식 물량을 일정 부분 매각해야 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공정위는 처음 처분 물량을 900만주로 판정했다가 내용을 변경, 1천만주로 늘렸다. 공정위는 이런 내용을 삼성 측에 통보했으며, 삼성 관계자들은 “이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까지는 두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며, 특검 및 변호인단 모두 이견이 없다.

    증인들은 이후 공정위 삼성 관계자로부터 ‘김학현 부위원장이 삼성 미전실 김종중 사장을 만날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그 사실을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증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삼성은 법률자문사인 김앤장을 통해 다수의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공정위에 ‘보유주식을 얼마나 매각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김학현 부위원장은 통합삼성물산 주식 처분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전원위 회의 결과 처분 주식 물량은 500만주로 변경됐다.

    이 사안은 박영수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때 히든카드로 들고 나온 항목이다.

  • 23일 서울중앙지법 415호 법정에서 열린 1회 공판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 ⓒ 사진 공동취재단
    ▲ 23일 서울중앙지법 415호 법정에서 열린 1회 공판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 ⓒ 사진 공동취재단


    특검은, 공정위가 처분 주식 물량을 1천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주면서, 이 부회장이 그에 상응하는 ‘지배력 강화’라는 이익을 얻었고, 이런 사정은 ‘박근혜-이재용 독대’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즉 ‘이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권 승계 및 그룹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박 前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고, 박 전 대통령은 공정위에 압력을 행사해 주식 처분 물량을 줄여주는 특혜를 줬다’는 것이 특검의 기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특검은 이런 내용의 공소사실 입증을 위해, 석 사무관과 곽 상임위원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두 증인은, 처분 주식 물량을 1천만주로 결정한 뒤 삼성 측에 통보까지 한 사안을, 전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500만주로 변경한 사실에 대해,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위원장의) 판단사항이며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색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증인들은 “(결정을) 바꾸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 의견은 달라질 수 있으며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라고 부연했다.

    증인들은 공정위 부위원장이 삼성 미전실 사장을 따로 만난 사실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공정위 공무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이재용 독대’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특검의 논리는 구조적으로 완성되지 못했다.

    특검의 논리가 구조적으로 흠결 없이 완성되려면,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가 있었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단순히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었을지 모른다’거나 ‘그런 관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의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심증은 영장발부의 사유는 될 수 있어도, 유죄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특검은, 공정위가 전원위원회 심의를 통해 통합삼성물산 처분 주식 물량을 500만주로 변경한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 이런 결정이 청와대의 압력 혹은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실패했다.

    김학현 부위원장이 삼성 임원진을 만난 사실이나, 담당 사무관이 청와대 행정관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한 사실 등은 확인됐지만, 이것만으로 청와대의 압력 내지 지시가 있었다고 보는 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 증인은 특검의 기대와 달리, “어느 누구로부터도 외부의 압력이나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석 사무관은 청와대 인OO 행정관으로부터 ‘500만주로 결론낼 방법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두 마디 물어본 것에 불과하고, 확실한 건 압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석 사무관은 “그런 압력이나 지시가 있었다면 일지에 적었을 것”이라며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변호인단은 “공정위 담당자의 증언은 어떤 청탁이나 압력도 없었음을 입증해 줬다”며, “이 사건 순환출자고리해소 문제는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합의를 하거나, 박상진 사장이 청탁을 할 만한 사안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