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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계의 지배자 신 오시리스(세티1세 신전-아비도스)" title="▲ 명계의 지배자 신 오시리스(세티1세 신전-아비도스)">
처녀 잉태와 죽은 사람의 부활 그리고 영생
고대 이집트 신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가 오시리스의 재생·부활 신화이다.
이 신화에 따르면 이야기는 이러하다.
「신의 시대」의 최초의 신왕은 태양신 라였다.
신들과 인간들이 지상에서 함께 살았던 이 시대의 이집트는 지상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태양신 라는 인간을 말살하려했던 대소동이 있은 뒤,
왕위를 대기의 신 슈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돌아갔다. 슈에 이어 왕위는 땅의 신 게브를 거쳐
신 오시리스가 이어 받았다.
오시리스의 옛 이름은 「착한 존재」라는 뜻의 우시르Usire였다.
그는 게브와 누트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오시리스는 누이동생 이시스, 동생 세트는 막내 여동생 네프티스와 결혼을 하여 남매부부가 되었다. 오시리스는 흰 옷을 입은 죽은 자의 몸에 머리는 상 이집트의 흰 왕관과 마아트의 깃털로 장식한 왕관
을 합쳐서 만든 이중 왕관 아테프Atef를 썼다. 그리고 손에는 통치권을 상징하는 갈고리와 도리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두쌍의 남매 부부...형을 죽인 아우
그는 이집트를 훌륭하게 다스렸다. 인간에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빵과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는 고대 이집트인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왕위를 탐낸 동생 세트는 음모를 꾸며 오시리스를 살해하고 유해를 나일 강에 버렸다. 슬픔에 잠긴 그의 아내 이시스는 유해를 찾아 헤매다가 시리아에서 찾아 이집트로 가져왔다.
이 사실을 안 세트는 오시리스의 시신을 다시 빼앗아 열네 토막을 내어 전국 곳곳에 버렸다.
이시스는 다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그의 유해 조각을 모았다.
이때 물고기가 삼켜버린 성기는 찾지 못했다. 이시스는 신 아누비스Anubis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의 유해를 미라로 만들고 토트 신의 도움을 받아 주술로 미라가 된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다.
이때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졌다.
이시스는 나일 강의 습지에서 아들 호루스를 낳았다.
성장한 호루스는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와 싸워 이겨 지상의 왕이 되었다. 이시스가 성기 없이 오시리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부활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세트는 신들의 회의에 호루스는 왕이 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신들은 직접 성행위가 없어도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호루스는 지상의 왕이 되고 오시리스는 명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오시리스의 머리가 발견된 아비도스는 신 오시리스의 성지가 되었다.
오시리스 신화는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 마치 인간 세계에서 일어난 이야기 같다.
이것이 이집트 신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신화는 처녀 잉태, 죽은 자의 부활, 내세에서의 영생 등 몇 천 년 후에 탄생한 일신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오시리스 신화는 『플루타크 영웅전』을 쓴 그리스의 플루타르코스의 수필집 『모랄리아Moralia』에서 상세히 전하고 있다.(세티 1세 신전-아비도스) -
부활·영생의 내세신화
평균수명 25세, 내세의 영생 신앙
영혼과 육체의 재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고대 이집트인들도 역시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러면서도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죽더라도 재생·부활하여 내세에서
영생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없어지지만, 혼魂과 정령精靈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그들의 이러한 사생관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생관에 따르면 현세는 내세에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그들에게는 죽어서 가게 될 내세가 영원한 삶을 누리는 곳이었다.
5천 년 전 당시 이집트인들의 평균수명이 겨우 25살 밖에 안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잠시 머물다 간다는 그들의 사생관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세보다 사후의 세계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사자의 책Book of the Dead』을 비롯하여 여러 장제문서에 죽은 자의 재생·부활을 바라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생 관을 담은 이야기가 신화처럼 전해오고 있다.
창조신 크눔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을 세 요소로 만들었다.
하나는 육체이고 나머지 둘은 바Ba와 카Ka라고 불리는 영혼이다.
바는 육체를 움직이는 생명력으로 육체가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초자연적인 존재 즉 혼魂이라고 할 수 있다. 카는 육체를 영적으로 복사한 인간의 본질적 존재 즉 정령精靈으로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바는 일생동안 변하지 않지만, 카는 어릴 때는 어린 아이 모습이었던 것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어른의 모습으로 변했다. 바는 사람의 턱에 수염이 난 얼굴을 가진 새로 표현되었고 카는 두 팔을 반쯤 올리고 있는 사람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미라를 만든 이유...'아크'로 부활하여 영생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늘 그림자처럼 함께 있던 카와 바가 육체에서 떠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은 떠나간 카와 바가 돌아와서 미라가 되어 있는 육체와 다시 결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카와 바가 돌아올 수 있도록 육체는 미라를 만들어 잘 보존하고 죽은 사람의 집인 무덤을 만들어 그곳에 잘 모셨다.
카는 이 세상에 남아서 무덤 주변에서 맴돌면서 죽은 자의 유해를 지켰다.
바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드나들면서 죽은 자가 내세에 가는데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카와 바가 다시 돌아오도록 무덤에 갖가지 부장품을 넣어두고 굶어 죽지 않도록 온갖 음식을 바쳤다. 뿐만 아니라 육체를 떠나간 바나 카가 쉽게 찾아 올 수 있도록 관에 죽은 사람의 얼굴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찾기 쉽도록 미라에는 죽은 사람의 얼굴 모습의 마스크를 씌웠다.
대표적인 것이 유명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이다.
그리고 무덤이 파괴되어 없어질 경우에 대비하여 무덤 앞에 죽은 사람의 모습을 한 카 상을 세워 두기도 했다.
카를 찾아서 돌아오게 하는데 죽은 미라는 움직일 수 없으므로 대신에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는 바가 낮에는 미라가 된 육체를 떠났다가 밤이 되면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가 바가 카를 찾아 미라
가 된 육체와 다시 결합하면 죽은 자는 부활하여 아크Akh라고 불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되어 내세에 가서 영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마아트(진실)의 심판...거짓말하면 악어의 밥
그런데 누구나 재생·부활하여 내세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는 순간 육체를 떠나간 바는 오시리스 신이 지배하는 명계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았다.
심판은 명계의 지배자인 오시리스가 주관하는 법정에서 열렸다. 먼저 죽은 사람이 내세에 갈 자격이 있는 지를 판정하는 「죄의 부정고백negative confessions」이라고 불린 예비심판을 받았다.
이것은 42명의 신 앞에서 죽은 자가 생전에 살인, 폭행, 절도, 강간, 거짓말과 같은 42가지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일종의 자기변호였다.
「죄의 부정고백」이 끝나면, 그것이 진실한 지를 판단하기 위해「오시리스의 심판」이라고 불린 정의의 저울에 죽은 자의 심장의 무게 달기 심판이 열렸다. 이것은 내세에 들어갈 자격을 심사하는 심판이었다. 저울의 왼쪽에 죽은 자의 심장을 얹고 오른쪽에 진리의 여신 마아트Ma-at의 진실의 하얀 깃털을 얹어서 그 무게를 달았다. 만일 죽은 자가 「죄의 부정고백」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저울이 수평을 유지했다. 그러면 죽은 자는 부활의 신 오시리스로부터 내세로 가는 생명의 열쇠 앙크Ankh를 받아 내세에 가서 영생을 하게 됐다. 거짓말을 했을 때는 저울이 기울어지면서 심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면 그 밑에서 굶주리고 있던 머리는 악어, 몸은 사자, 다리는 하마의 모습을 한 명계의 괴수 아미트Ammit가 심장을 먹어 버렸다. 함께 와있던 죽은 자의 혼인 바도 소멸해버리면서 영원한 죽음을 맞아 다시는 부활할 수 없게 됐다.
심판의 기준이 된 것이 마아트라는 진실이었다. 인간이 죽어서 내세에 가서 영생을 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동안 마아트의 진리에 맞는 성실한 생활을 해야 했다. 다만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삶이 보장되어 있는 하늘에 있는 내세에 영혼이 가서 영생을 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코란처럼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의 기준이며 생활의 지침이었다.
내세 신화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한 내세는 현세와 다른 세계가 아니고 현세가 연장된 세계였다. 내세는 고대 이집트어로 세케트 이아르Ialu라고 불리었다. 「갈대의 들Fields of Reeds」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오시리스가 지배하는 물과 곡식이 풍부한 땅으로 죽은 후에 신과 함께 살게 될 내세 즉 낙원이었다. 이곳에 죽은 사람이 현세에서 가장 좋았던 때의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어 죽은 자는 현세에서와 똑같은 생활환경에서 영생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스-로마-기독교 창세기까지 '인류신화의 고향'
무덤에 미라와 함께 묻은 「사자의 책」 등 여러 장제문서에는 모두 죽은 사람이 부활하여 아크가 되어 내세에서 영생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무덤에 유해와 함께 묻는 여러 가지 부장물들도 모두 아크가 안전하게 내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덤의 벽화에 많은 제물이 그려져 있고 장제문을 발췌하여 히에로글리프나 그림으로 새겨놓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력의 힘으로 이것이 제물을 제공한 것이나 장제문을 읽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신화는 어떻게 천지와 인간이 창조됐고 살아있는 신 파라오의 신왕사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죽은 자가 부활하여 내세에서 영생하는 사생관이 어떻게 확립됐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오천년 전에 있었던 고대 이집트 신화는 그리스나 로마 신화 나아가서는 기독교의 창세신화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 이집트 신화는 「인류신화의 뿌리」이며 헬리오폴리스는「인류신화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기파랑(02-763-8996) 펴냄 <이집트의 유혹> www.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