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단체협약 '독소조항' 주목, "자동차업계 근로자 임금 높은 수준"
  • ▲ 민노총이 지난달 30일 서울광화문광장에서 '6.30 사회적 총파업'의 이름을 걸고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민노총이 지난달 30일 서울광화문광장에서 '6.30 사회적 총파업'의 이름을 걸고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자동차·조선업계가 수출부진과 내수악화 등 심각한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노동계에서 대규모 파업을 예고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파업을 통해 국내 제조산업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13~14일 이틀 간 파업을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노조원 65.9%의 찬성으로 파업이 결의됐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13~14일 전면 파업을 선언하고 상경(上京) 투쟁에 나섰다.

    한국GM 노조는 6∼7일 조합원 투표에서 68.4%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시켰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지난달 말 임금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 파업을 앞두고 있다. 

    이들의 파업은 대체 어떠한 명분을 가지고 있을까.

    경기대 임종화 객원교수는 16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자동차업계에 있는 근로자의 임금은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이라면서 “일본 도요타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한 단계 앞서 있고, 대체적으로 미국계 회사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자동차협회에 따르면 현대차의 인건비는 2015년 말 기준으로 매출액 대비 14.3%에 이른다. 업계 1~2위를 달리고 있는 도요타는 6.1%다. 현대차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인 셈이다. 폭스바겐은 9.7%다. 반면 자동차 1대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HPV(Hour Per Vehicle)는 현대차가 26.8시간으로 가장 높았다. 도요타는 24.1시간, 폭스바겐은 23.4시간이다. 임금과 생산성의 체질개선이 없으면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규모 파업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논평에서 “조선업계는 심각한 경기불황과 경영난으로 업계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노·사가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며 위기를 극복하자고 해도 부족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바른사회는 현대차 노조에 대해서도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인한 실적 부진과 내수위축 등으로 사상 최악의 불황기를 겪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도) 현대차 노조는 6년 연속 쉬지 않고 파업을 강행해왔으며 현대차가 노조파업으로 입은 생산차질 누계는 작년 한해에만 3조 1,000억원에 달한다”고 꼬집었다.

    매일경제와 LG경제연구원,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진행한 ‘기업 10적(賊)’ 설문조사에서 파업투쟁을 일삼는 강성노조가 1위로 꼽힌 이유이기도 하다.

    바른사회는 또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에 불과하고 전체 근로자 가운데 11.7%만이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구조”라며 “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해 사측으로부터 얻어낸 협상의 과실은 중소·영세 사업장을 제외한 전체 근로자의 11% 정도에게만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 정규직 위주인 노조는 무리한 임단협과 지속적인 파업을 통해 대기업 정규직에게만 유리한 노동시장을 구축해왔다”고 덧붙였다.

    바른사회 측이 언급한 ‘무리한 임담협, 유리한 노동시장 구축’은 현재 대기업 단체협약의 ‘독소조항’이라고도 불리는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 단체협약 제41조에는 ‘신기술 도입, 신차종 개발, 차종 투입, 작업공정 개선, 전환배치, 생산방식의 변경 노조와 심의·의결, 신차종 양산 맨아워(M/H) 및 UPH 조정 시 조합과 사전협의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회사가 투자 결정을 할 때 사실상 노조 허락을 받아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기아자동차, 한국GM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대기업 단체협약에는 현대판 음서제라 불리는 ‘고용세습’에 해당하는 내용도 있다. 대우건설 단체협약 제23조 1항은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 또는 상병으로 인한 퇴직 시 본인 또는 그 가족의 요구가 있고 회사 당해 인력 소요가 있을 때는 그 배우자 또는 직계 갖고 중 1인에 한해 우선 채용하도록 노력한다’고 돼 있다.

    국내 노동계의 ‘마라톤’ 파업과 무리한 요구가 지속된다면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에도 연례행사처럼 파업이 예고되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강성 귀족노조들이 점점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될 수록 우리나라 경영환경이 나빠지기 때문에 한국기업의 R&D 위축과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 꺼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매일경제 한국외국기업협회 소속 외국 기업 5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외국 기업 CEO들 중 26.3%가 한국투자의 최대 걸림돌로 강성노조로 인한 노사 갈등을 꼽았다.

    도서 《기업10적》 44p를 보면 프랑스계 기업의 한국 지사장 B씨는 “노조문 제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라면 항상 걱정하는 이슈”라며 “한국에 투자를 결정할 때도 본사가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게 바로 노조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