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신문 정리] 그룹 의사결정은 최지성, 이재용은 ‘전자 부회장’

깊어지는 특검의 고민, 이재용 뇌물 입증할 ‘통화내역·문자메시지’ 全無

혐의 입증할 물증·증언 나오지 않아...최지성 “이재용은 그룹 총수 아니다”

양원석, 윤진우 기자 | 최종편집 2017.08.03 15: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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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
“(최순실의) 사적인 고자질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그것을 삼성이) 감당할 수 없고, 그렇게 이해했다는 말인가요?”

증인(장충기 삼성그룹 전 미래전략실 차장) :
“(최순실이) 고자질 할 때 ‘자기 딸을 지원해주지 않아서 삼성이 문제가 많다’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기 나름대로는 ‘삼성이 올림픽 준비도 안하고 제대로 예산지원도 안한다’ 등 그런 핑계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재판부 :
“그 정도의 일러바침으로 삼성이 영향을 받는가요?”

장충기 :
“이재용 부회장을 불러 질책했다는 것 자체가...저희들이 기대하는 단독면담은 덕담입니다. (예를 들어) ‘투자 많이 해주세요’ 이런 것이지 질책하는 경우는...과거에도 그런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 1일 오후, 장충기 전 사장에 대한 재판부 신문 사항 중 일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공판 막바지, 2박3일간에 걸친 이 사건 피고인신문이 3일 마무리됐다.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을 상대로 377개에 달하는 신문사항을 준비하는 등,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압박에 나섰지만, 이 사건 핵심 공소사실인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특히 최지성(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미래전략실 대외협력담당 사장, 황성수 미래전략실 전무 등 이 사건 공동피고인들이, 이재용 부회장과 직접 통화를 했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룹 컨트롤타워로 불린 미전실 핵심 임원들과 이 부회장 사이에, 직접적인 통화 혹은 문자메시지 내역이 없다는 사실은, 특검에게 있어 치명적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특검은 황성수-박상진-장충기-최지성으로 이어지는 미전실 결재라인의 정점에 이재용 부회장이 존재하고, ‘정유라 승마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기금 출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 등과 같은 주요 현안을 이 부회장이 직접 결정하거나 지시했을 것이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공소사실도 이런 판단 아래서 작성됐다.

따라서 특검이 그린 기본 틀이 사실과 다르다면,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입증은 매우 어려워진다.

특검이 2박3일간에 걸친 피고인신문 과정에서, 이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의 혐의 입증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은 사실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검은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 황성수 피고인을 상대로,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과 역할 ▲미래전략실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시 여부와 영향력 ▲이 부회장이 ‘정유라 승마지원’이나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기금 출연’ 등의 현안을 최초로 인지한 시점과 그 이후의 정황 ▲박근혜 전 대통령 독대 후 이재용 부회장이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지만, 눈에 띄는 소득은 없었다.

피고인신문을 통해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정유라 승마지원’을 지시했거나, 이런 사실을 알고 사안을 직접 챙겼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기금 출연과 관련해서도 이 부회장이 결재권을 행사했다거나 이 부회장이 그룹의 총수로서 지시를 내렸다는 답변은 없었다.

특검의 질문은 기존 증인신문에서 나온 내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새로운 물증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특검이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는 질문을 거듭하자 재판부가 제지하는 모습도 중간 중간 눈에 띄었다.

3일간의 신문과정에서 눈길을 모은 건 특검이 아니라 재판부였다. 장충기·최지성 피고인 등에 대한 재판부의 신문은 예리했다.

재판부는 21일 열린 장충기 전 사장에 대한 신문에서, ‘박근혜-이재용 2차 독대’ 당시 이 부회장이 질책을 당한 사실과 관련해 전후 사정을 확인한 뒤, ‘박 前 대통령이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질책을 당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재판부의 질문에는,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직접 ‘정유라 지원’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깔려 있다. 해당 질문은 특검의 공소사실과 맥락이 같다. 이런 의혹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공여의 죄책을 피하기 어렵다.

재판부의 송곳 질문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일관되게 “대통령이 특정인을 직접 언급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검 역시 피고인들의 답변을 반박할만한 물증을 내놓지 못했다.

장 전 사장은, “대통령에게 질책 받은 것 자체가...최순실이 험담을 하든 고자질을 하든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저희는 생각한다”며, “대통령이 특정인을 언급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장 전 사장은 정유라를 지원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최순실의 영향력’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박상진 사장으로부터 최순실의 존재 및 영향력과 관련된 보고를 받은 뒤, 그녀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어떤 사태가 닥칠지 몰라, 지원에 나서게 됐다.”

- 장충기 전 사장.

최순실의 악의적인 ‘고자질’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통령의 질책으로 이어졌다고 인식한 사람은 장 전 사장만이 아니었다. 최지성 전 부회장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은 2일 오후 속개된 피고인신문에서 ‘박 전 대통령이 무슨 의도로 이 부회장을 질책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최순실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진 답변에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게 질책을 두 번 받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이 평소 야단을 맞은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 질책인지 모르겠지만 ‘레이저 눈빛’까지 말하는 걸 보면 충격이 컸구나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답변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3일 오전 열린 피고인신문에서 당시 상황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판부 :
“다른 피고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통령이 레이저빔을 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는데 맞습니까?”

이재용 부회장 :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최지성) 실장님하고 그전에 장(충기) 사장님께서 들으셨다고 하니까...제가 경황이 없어서...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많이 당황했었다”며, “제가 좀 한 번 거르고 전달을 했어야 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후회가 된다”고 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은 과거 정권의 눈 밖에 나 곤욕을 치른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의 증언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는 기업인들 역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다음은 이에 대한 최지성 전 부회장 피고인신문 요약.

재판부 :
“최가 대통령을 이용해 삼성에 입힐 피해가 무엇입니까?”

최지성 :
“과거의 전례들이 있습니다.
과거 정권에서 회장님이 발언을 잘못해 굉장히 곤욕을 치른 적이 두 번이나 있습니다. 이번에도 오해를 산다면 어떤 곤욕을 치를지...“

재판부 :
“최순실이 대통령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는 말인데,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정유라에 대한) 지원밖에 없었습니까?”

최지성 :
“과거 회장님께서 영빈관 만찬 자리에서, 기자들이 ‘현 정권의 경제성적’을 물어봤을 때 ‘낙제점 면한 수준’이라고 답했다가 후폭풍이 세무 쪽으로도 들어오고 소송으로도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게 질책을 한 번 받았는데, 두 번 받는건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이 털어놓은 삼성그룹 내 역학관계와 이재용 부회장의 위상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은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룹 전체의 최종의사결정권자는 미래전략실장이었던 최지성 전 부회장이며,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서, 최 전 부회장과 중요 현안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관계다. 물론 미래전략실의 지휘권도 최지성 전 부회장에게 있다.

그룹 안에서의 위상 및 역할과는 관계없이, 외부에서 이 부회장을 그룹의 총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의전상 그룹을 대표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는 것이 최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최 전 부회장은 ‘정유라 승마지원 및 중단’ 사실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참고하라는 뜻에서 설명해 줬지만, 그 결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 아래 이뤄졌다고 했다.

그는 “(밖에서) 이 부회장을 총수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그런 식으로 오해를 하는데, 이는 삼성의 조직운영체계나 풍토 및 관행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 부회장과 정보률 공유할 만한 중요 현안인지 여부를 누가 판단하느냐’는 재판부의 물음에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제가 봐서 후계자 수업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있으면 팀장들에게 보고를 하게 하고, 만날 일이 있으면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최 전 부회장은 “주요 현안은 제가 먼저 보고를 받기 때문에, 팀장들이 디테일한 부분을 이 부회장에게 별도로 보고하지는 않는다”며, “김종중 사장 등이 저를 거치지 않고 이 부회장에게 따로 보고를 하는 일은 없다”고 답변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은 “지난해 8월 박상진 사장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 중단을 결정한 것도 본인”이라며, “당시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런 사정을 알려줬더니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별 말 없었다”고 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은 이날 신문과정에서도 ‘후계자 수업’이란 표현을 쓰면서, 본인과 이 부회장 사이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그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 부회장에 대한 부탁이나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명시적으로 그런 지시를 받은 적은 없지만, 때가되면 제가 어떻게 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최 전 부회장은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할 수 있는 얘기가 승마밖에 없다는 게 이상하다’는 질문에도,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 총수도 아닌데...부회장에게 대통령이 뭔가를 얘기한다는 게 부담스런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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