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포로송환협정 조인 직전에 반공포로 2만7천명 석방처칠 경악 "이승만 없애라" ...아이크, 이승만 달래기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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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⑩ 반공포로 석방 전후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포럼 대표D데이 6월18일 오전0시, 수용소내 포로들은 잠은커녕 창밖만 뚫어져라 내다보고 있다.초저녁부터 내리는 빗발 속에 칠흑같은 어둠 저편에서 깜빡깜빡깜빡 손전등 불빛 신호 세 번!“나가자” 포로들은 일제히 막사를 뛰쳐 나갔다. 철조망은 누군가 벌써 넓게 끊어놓았다.수천명의 포로들이 밀려나가며 성급한 사람들은 철조망에 담요를 덮고 기어 넘어간다.탕 탕 탕...10분쯤 지났을 때 총소리와 함께 미군 경비병들이 나타났다.
검은 그림자들이 미군들을 덮치며 얼굴에 고춧가루를 쳐바르고 무장해제를 시켜
두팔을 묶어 무릎 꿇렸다. “멈추지 마! 30리 뛰어야해!” 검은 그림자들이 소리친다.
탈출한 포로들은 정신없이 뛰었다. 막사 대장이 나누어준 사복과 며칠분의 비상식량을 움켜쥔
포로들은 무작정 달린다. 날이 밝기 전에 미리 지정된 장소 “30리 밖까지” 도망쳐야만 한다.
미군에게 다시 체포되면 절대 안 된다.논산(論山)지구 포로 1만1천38명 중에 탈출 성공 8천24명, 3천여명이 탈출을 못했다.
미군 총격에 사망 1명, 부상 2명이다. 300여명은 다시 체포되어 끌려왔다.같은 시간 전국의 포로수용소에선 ‘반공포로 탈출 대작전’이 이렇게 벌어지고 있었다.▶ 암행밀사들의 작전지령...철조망 끊어놓고 대기...탈출포로 경찰이 보호이승만 대통령의 비밀특명을 받은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은 처음에 D데이를 11일로 잡았다가
18일로 연기시켰다. 달빛이 없는 초순을 택한 것, 그동안 더욱 면밀한 작전이 완성되었다.그뿐이 아니다, 사실은 이승만이 D데이를 변경시킨 것은 포로송환협정이 18일 조인된다는
정보를 알기 때문에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려면 바로 직전에 파탄을 내야 하는 법.원용덕은 잠은 신당동집에서 자고 경무대 경찰서 뒤편 일본식 집 골방에서 작업을 진행했다..육군보좌관 김길수(金吉洙)대령과 헌병총사령부(이하 헌총사) 문종욱(文鍾郁대형을 불러
포로석방 작전명령을 짠 원장군은 6명의 헌총사 간부들에게 비상을 걸었다.
이들 임기택(林奇澤) 중령, 김삼용(金三龍)중령, 김진호(金鎭浩)중령, 조용집 소령,
황동준(黃東俊)소령, 최세경(崔世卿)소령에게 담당지역을 배정하고,
사전 암행공작등 일체의 현장 지휘권을 부여하였다.각자 지역특성에 따라 부분적인 수칙을 달리했으나 석방작전 주요매뉴얼을 이렇다.1) H아워에 전면 소등, 미군 발전기를 끈다. 2) 수용소 막사별로 탈출순서를 정한다.3) 철조망은 미리 절단, 절단기는 포로들에게 주고 철조망 타고 넘을 가미니도 준비한다.4) 탈출 포로들은 사복을 입혀 민가에 분산 피신시킨 뒤, 경찰에 알려 보호한다.5) 미군과 충돌은 최소화, 그날밤 근무때 여자 얘기등으로 경계를 해이 시키고,
불가피할 경우 고춧가루를 뿌려 무력화 결박함. 가급적 살상 사고는 피하도록 한다.암행지휘관들은 포로 대대장들에게 사소한 임무까지 반복주지 시켜 준비완료 보고를 받았다.그날 밤 10시, 포로 지도자들은 취침소등이 되자 그때서야 포로들에게 밀령을 가르쳐주었다.“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유의 날이 왔소. 이승만 대통령께서 드디어 우리 석방명령을 내렸소.지금부터 하라는 대로 해야 하오. 철조망을 넘으면 적어도 30리는 벗어나시오.
거기 경찰이 우리를 보호해줄 겁니다...“ 이 지령대로 석방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군 장갑차 열고 고춧가루 퍼부어...부평에선 포로 수십명 사망
대부분 수용소들이 미군 초병들을 제압하고 포로석방 작전에 성공하였으나
경북 영천(永川)지구와 경기 부평(富平)지구에선 예상밖의 ‘교전’을 치루어 적잖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였다.. 두 사건을 1984년 부산일보사가 발간한 [비화- 임시수도 1천일]에서 간추려본다.★ 영천지구= 헌총사 밀사 조용집 소령은 17일 영천에 내려와 경비중대장 김규진(金圭軫)소령과 작전계획을 짰다. *18일 새벽2시 석방 *17일밤 11시 절단기를 수용소에 투입 *정문 미군보초 납치 *철조망 밖 연락책임자들 지정 등을 결정한 얼마후 조소령은 크게 낭패하였다.김소령이 평소에 친분을 쌓은 미군 수용소장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인간적인 협조’를 부탁한는
바람에 작전이 물거품 된 것, 미군대령은 즉각 경비를 강화하고 포로간부들을 영창에 넣어버리는 것이었다. 조소령과 김소령은 어쩔줄 몰라 금호강 모래밭에서 밤을 새우며 묘안을 찾던 중에
대구 육군헌병사 김병삼(金炳三) 중령이 부르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김중령은 김소령 앞에 검은 보자기를 풀렀다. 그 속에선 커다란 장도칼이 나왔다.
그것은 조금전 헌총사 김문호(金文豪)소령이 나타나 전해준 것, 그 뜻을 알아채린 김중령이
거사실패로 낙담한 김소령을 불러 보란듯이 껴내놓은 것이다.“이 칼은 대통령 각하께서 보내오신 것이오. 오늘밤 안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지 못하면
우리 둘은 이 칼로 자결해야 하오.” 비장한 각오를 다진 그들은 조소령과 함께 새작전을 짠다.수용소는 이미 대구에서 동원한 미군장갑차 30대가 포위하고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한판 붙을 수 밖에 없는 형편, 두 사람은 남전(南電: 지금 한전) 영천출장소를 찾아 소장에게
밤9시 단전시켜줄 것을 간청하였다. 소장이 “미군이 문책하면 안된다”며 거절할 때에
곁에 있던 젊은 전공이 나섰다. “사고로 위장해서 제가 끊겠어요. 소장님이 허락하신다면...”구세주를 만난 두 소령은 미리 조직한 특공대 30명을 대기시키고 전공과 함께 밤9시를 기다렸다. “끊어라” 조소령의 명령에 영천 포로수용소는 암흑세계로 변했고 동시에 특공대 30명은
전광석화와 같이 행동 개시. 포로복장으로 위장한 특공대원들은 포로들을 탈출시키면서
3명이 1개조로 미군 경비병들을 급습, 수갑을 채웠다.
동시에 장갑차 헤드라이트를 사격한 특공대원들은 장갑차에 뛰어올라 고춧가루 포대를 쏟아넣어 비명을 지르는 미군들을 일시에 붙잡았다.수천명 포로들은 금호강쪽으로 탈출, 사복경찰과 반공청년대원들이 민가에 수용하였다.협조를 거부했던 미군 수용수장은 돌발사테를 당하자 미군병사들에게
“한국군과 싸우지 말라. 이것은 정치적 문제이니 방해 말라”고 뒤늦게 지시했다고 한다.★ 부평지구= 이곳 포로수용소는 미국기지 내 미공병단 옆에 있어 처음부터 포기상태였다.미군은 18일 아침 방송으로 전국의 탈출사태를 접하자 포로들을 작업장에도 내보내지 않았다.이날 오후 3시쯤 철조망 밖에서 헌병장교가 수용소 경비 헌병을 기합주는 듯반복하여 호통치는 소리가 안에서 술렁이는 포로들에게 다 들려오는 것이었다.
“다른 수용소는 다 탈출했는데 여긴 무얼 하느냐. 빨리 나오기만 하면 우리가 다 도와줄 텐데...” 이 말을 듣자 포로들은 그제야 상황을 알고 탈출준비를 서둘렀다.미군측은 탈출방지를 위해 한국군 경비들을 철수 시키고 해병대를 출동시켜 겹겹이 경계망을
강화하였으나 밤 9시 수용소는 전면 단전, 암흑천지로 돌변하였다.조편성을 마친 포로들은 50명씩 스크램을 짜고 철조망에 담요를 덮으며 탈출하기 시작했다.뒤늦게 미해병대가 착검한 총으로 저지에 나서자 후미에 따르던 포로들이 방향을 바꿔
뒤쪽으로 달려가자 인근 헬기장 서치라이트가 켜지며 사격하는 바람에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사망포로 47명, 부상 60여명, 탈출한 538명은 분산 잠적, 군경 및 청년단원들이 피신시켰다.이튿날 19일 오전 9시 부평 초등학교 교정에서 시민 궐기대회가 열리고
인천까지 경인가도를 행진하는 시민들은 뒤늦게 몰래 탈주하는 포로들을
검문하는 미군들로부터 숨겨주는 인간띠 작전을 펴기도 하였다.이렇게 사흘동안 석방된 반공포로들은 전국에서 모두 2만 7천여명이 된다.
중공군 포로들은 한명도 없었다. 이승만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
▶ 폴폴 뛰는 처칠 "배신자 이승만, 유엔군이 권력박탈하라"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서울발 아침 긴급뉴스는 강대국들을 무차별 강타하였다.런던서 잠들었던 처칠이 침실을 뛰쳐나오고 도쿄에서 아침 샤워하던 클라크는 면도칼을 떨어트렸다고 한다. 워싱턴 아아젠하워는 즉각 백안관 안보회의를 소집하여 흥분한 얼굴로 분노를 토하였다. “이승만은 우리의 적이다. 전쟁하는 적들보다 더 무서운 적이다.”수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공산측과 겨우 타결한 포로송환 협정, 그 최종서명이 오늘 18일로
예정되어있는 판에 이승만이 산통을 깨버렸으니 이승만에 대한 비상대책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누가 적인가를 재규정하자는 주장, 이승만은 더 이상 신뢰하면 안된다는 주장, 한국군 지원과
경제원조도까지 당장 끊어버리자는 주장 등등이 나왔다.처칠은 “유엔 권위를 파괴한 극히 심각한 중대범죄”라고 펄펄 뛰면서 아이젠하워에게 압박을
가하였다. “이승만은 세계 평화의 적이다. 배신자 이승만이 존재하는 한 한국전쟁에 협조 못하겠다. 파병16개국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승만의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한국에 보내라며 성화를 부렸다.
백악관회의에서도 처칠과 똑 같이 ‘이승만 제거’ 논의가 다시 본격화하였다.
휴전을 결사반대하고 단독북진 통일 주장을 포기하지않는 이승만, 그런 자살행위를 왜 고집하느냐 말리면 “공산지배를 받느니 자살을 택하는 길 밖에 없다”는 이승만을 만나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협박’이 입으로만이 아니라 과감히 행동할 인물이라는 점을 벌써 판단하고 있던 참에이번에 반공포로 석방으로 실증되었다며 "거봐라, 내가 뭐라더냐?" 책임공방도 일어났다.미국 정부는 두 가지 난제에 봉착했다.
하나는 실제로 이승만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회수하여 단독북진에 나서는 것,
둘은 이승만이 또 포로를 석방할 경우, 공산측이 반발로 미군포로를 돌려주지 않을 위험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이승만의 자유행동을 방치하면 안되는 상황이다.유엔사령관 클라크는 우선 모든 포로수용소 경비 강화령을 내리고 한국군 경비병을 미군으로
교체하는 한편, 미군 2사단에게는 비상사태에 대비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것은 준비된 Ever-Ready Plan(이승만 제거작전)을 명령만 내리면 실행하겠다는 태세를
워싱턴에 알리고, 이승만에게는 “꼼짝 말라”고 경고장을 보내는 강력한 무력시위이다.여차하면 유엔군이 계엄을 선포하고 이승만을 연금한다는 .작전은 이승만도 알고 있다.이승만 "내가 책임지고 석방...사전협의 안한 이유는 다 알것이다"★ 반공포로 석방이 대강 완료된 후 원용덕 장군은 담화를 냈다. “ 전국민은 이들 애국청년을 애호 선도하여 주기 바란다...본직은 조국의 신성한 주권의 존엄성 유지를 위하여 이를 명하였으며 한국민의 열화 같은 민족정기에 호응하여 이를 감히 실천한 바이다...”라고 발표한 원장군은 “석방된 애국청년을 자기의 허가없이 불법 감금 또는 억류하는 여하한 부대나 개인을 막론하고 단호히 무력행사를 단행한다”고 경고하였다. 이는 석방 포로들을 총력 검거하겠다고 발표한 미군과 동조세력을 경계하는 언명이다.(조선일보)이승만 대통령은 ‘전세계의 인류와 참전 우방국들을 향하여’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제네바 협정과 인권정신에 의하여 반공한인포로는 벌써 다 석방되었어야 할 터인데...국제상 곤련으로 해서 불공평하게도 이 사람들을 너무 오래 구속해 왔던 것이다.지금 와서는 유엔이 공산측과 협의한 것이 국제적관련을 더욱 복잡하게 해서 필경은
우리 원수에게 만족을 주고 우리 민족에게 오해를 주는 결과를 일으킬 염려가 있게 되었다.그러므로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내가 책임을 지고 반공한인포로를 오늘 6월18일로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다. 유엔사령관이나 관계당국들과 충분한 협의가 없이 이렇게 행한 이유는 설명치
않아도 다 알 것이다. 각도지사와 경찰에게 지시해서 이 석방된 포로들을 아무쪼록 잘 지도보호할 것이니 잘 행할 것을 믿는 바이다. 우리 모든 민중이나 친구들이 다 협조해서 어디서든지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줄 것을 믿는 바이다.(조선일보 호외재록)★ 공산측 뜻밖에 침묵...“미국이 이승만 통제도 못하나” 휴전 깨질까 걱정반공포로 석방 쇼크는 공산측에도 마찬가지였으나 뜻밖에 판문점에선 문제삼지 않았다.대신 북경방송이 19일 중국어방송에서 신화사 개성특파원 보도를 통해 미국을 물고늘어졌다.“이승만 대통령은 무력을 행사하여 포로들을 강제로 수용소에서 탈출시켰다. 미국은 이대통령에게 동 사건의 책임을 전적으로 전가시키고 있으나 사실은 미국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휴전협상에 있어서 미국측의 성의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로 될 것이다.”공산측 선전꾼들은 “미국은 꼭두각시 한명도 통제하지 못하나? 이승만이 휴전협정을 지킬 것이라고 무엇으로 보증하나? 이승만을 끌어와 협정에 서명을 시켜라” 등을 요구하였다.어렵사리 타결된 포로송환협정문도 책상서랍에 다시 넣어둔 채 양측은 이제 상대방이 아니라이승만과 협상해야 하는 제2의 협상 국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 되었다.
인도를 비롯한 스웨덴과 스위스 등 중립국들도 “우리 3개국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준수
보장을 하지 않는다면 휴전 및 포로감시위원단에 참가할 수 없을 것임을 명백히 선언한다”고
발표하였다.이제서야 세계는 이승만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결코 미국의 ‘괴뢰’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미국만 믿고 있다가 이승만의 한방에 휴전은 물 건너가게 생겼잖은가.
언제 또 무슨 ‘휴전방해’ 행동을 저지를지 알수 없다.
‘단독북진’ 주장도 허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유엔과 참전국들은 미국을 붙잡고
“이승만을 없애든지 달래든지” 휴전을 속히 마무리하라고 다구치며 흔들었다.▶ 아이크 편지와 클라크 편지도 공개...이승만의 '국민외교' 묘수
아이젠하워가 또 서한을 보내왔다. 공산측의 눈치를 살피듯이 이승만에게 요구한다.“휴전이 성립되었을 때 한국군이 휴전조항에 순종할 것을 보장하라”는 통고문이다.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은 이 편지도 언론에 공개하였다.‘외교의 신’이란 별명처럼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외교의 다목적 효과와
거인 미국의 얼굴에 연신 날카로운 잽을 날리는 이승만 스타일 전법이다.다음날 클라크가 도쿄에서 날아와 경무대로 직행, 이승만에게 항의하였다.“지난번 약속을 어기고 본관 휘하의 국군을 빼내 마음대로 포로석방을 하다니요?”
짐짓 포커페이스(poker-face)로 꾸민 이승만은 딴펑 부리듯 사무적으로 응수한다.“내가 왜 미리 통보안했는지 말안해도 자명하지 않은가.”
(It must be obvious why I could not notify you in advance).
사전에 알려주면 사령관으로서 사전 예방조치를 해야 할 테니 당신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그랬다는 뉴앙스를 풍기는 답변이었다고 한다. 동지끼리 통하는 농반진반 말투이다.클라크는 뒷날 그의 회고록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From the Danube to the Yalu)에
“예언자 같은 제1의 애국자이고 한국에 없어선 안될 인물”이라고 이승만을 높이 평가했지만
휴전의 데드라인에 몰려서까지 국제정세를 이토록 요리하는 전략건술에 새삼 감격했다.
그렇다해도 휴전 완수의 책임자로서 클라크는 이승만에게 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자는 이승만의 요구를 받은 아이젠하워가 이승만에게 “오케이” 친서를 보내면서 클라크에게도 ‘조약을 선물카드’로 협상하라는 훈령을 내린바 있었다. 군인 클라크는
그러나 공산측과 휴전합의가 될 때까지 입을 다물기로 작정한 터인지라 이승만에게
강한 항의편지만 보냈던 것이다. 여기에 이승만도 답장을 써보냈다.클라크가 돌아간 뒤 이승만은 이 편지도 신문에 공개하였다.
‘사적인 편지’란 단서를 붙이면서 협박공갈 변명등 할 말을 다하고 ‘사적인 편지’를 국민과
세계가 알게 하여 강대국 술수를 폭로, 압박, 조종하는 묘수라 할만하다. -
"미군은 떠나도 좋으나 제발 우리국민을 공산당에 넘겨주지 말라"<클라크 사령관에게 보낸 이승만 대통령의 편지>이대통령은 24일 지난 6월20일부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을 공표하였다.(편지 원문은 영어, 공보처가 번역 발표. 동아일보 6월26일자)“클라크 장군 귀하귀하의 서한은 1953년 6월18일 저녁에 본인에게 수교되었는데 그때 나는 오랜 기일을 두고
부당하게 억류되어있는 충량한 한국인 포로들을 왜 석방치 않으면 안되느냐 하는 것을설명하는 서한을 귀하에게 발송코자 준비중에 있었던 것이다.
본인은 이 서한과 함께 공식문서로서 상기 포로들에 관한 정부의 견해를 전반적으로 설명한
외무장관 변영태 박사의 서한을 귀하에게 보내는 것이 가장 적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변박사의 서한은 공식적인 것으로 그리고 본인의 것은 사사로운 것으로 보아주기를 바란다.6월18일부의 귀 서한에 관련하여 그중의 한두가지 점에 관하여 몇마디 하고자 한다.유엔군은 우리를 구원하러 왔으며 귀하도 알다싶이 우리는 감사히 여기는 바이요.
앞으로 여하한 일이 야기되든 간에 우리는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귀하가 국련군의 사령관으로서 우리들의 공공의 적에 대한 전쟁을 지도하는만치
우리는 우리의 군대를 귀하의 통수하에 두었던 것이다. 본인은 귀하가 한국군의 장병과
한국정부 및 국민들이 과거에 귀하에 베풀어준 충실한 지지에 만족할줄 믿는다.귀하가 양지하다시피 사태는 최근에 전적으로 변하여 버리고 말았다.이러한 변화는 귀하나 본인으로 인하여 야기된 것이 아니요 국제연합 정치가들로 인하여야기된 것이다. 그들이 우리들의 공동의 적인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적들이 주도해오던
휴전조건을 수락하였으며 우리를 보고 이 조건을 수락하라고 강요하였던 것이다.우리들은 이러한 휴전조건은 너무나 부당함으로 그것을 수락하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소하였던 것이다.부언할 필요도없이 백만이상의 중공군이 한국에 주둔하게되는 한 한국이 살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일이다.혹자는 한국의 통일은 정치회의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그러나 현재 우리가 승리하고 있는 이때 전쟁에서 실현되지 않는 통일이
정치회의에서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미국정부당국자와 국제연합 한국위원단이 수년을 요하여 평화적회담으로 한국을 통일하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공산주의자들과의 정치협상이란 그것이 항상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용한 것이라는 쓰라린 경험에서 우러나온 우리의 확신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유엔의 몇몇 가입국은 친공적이며 혹은 공산 대 민주의 이 세계적 투쟁에
자기입장이 명확치 못하며 혹은 그것이 반미적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국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국은 그 동안 한국통일정책과 공산침략자를 응징하는
정책을 변경함으로써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침략자들에게 이용당하게 되고 있는 것이다.한국은 기로에 도달하였다.
이제 한국인들은 국가적 사멸로 인도하는 유엔의 지시에 따르거나
우방국가들과 결별하여 본래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이제 우리 한국인들은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우리 본래의 결심에 충실하기로 결정하였다.미국과 우리들이 심대한 희생을 내면서도 지켜오는 근본적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유엔이라는 것을 상기하여 주기를 바란다.미국의 충량한 동맹자가 한국이겠느냐 국제연합이겠느냐 하는 것은
미국민 자신 스스로가 판단하는데 맡길 수 밖에 없다.이러한 까닭에 현재 휴전조건대로 휴전이 조인된다면 우리들이 이 같이 지금까지 지향하여 오던 우호관계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최후적이며 공식적 표시라고 인정될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유감스럽게도 한국군이 귀하의 통수하에 있게 되리라고 보지 않는다.그러나 귀하도 아는바와 같이 본인은 본인이 한국군을 유엔군 산하로부터 철수케 하기로
결정할 적에는 본인이 귀하에게 친구와 친구로서 알려주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귀하에게 보낸 요전의 서한에서 불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약속은 아직 유효한 것이다.그 서한에서 말한바와 같이 본인이 이 철수 명령을 안 내려도 무관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포로문제와 이 문제를 혼동하여서는 안된다. 이 두 가지는 관련성이 없는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귀하가 말하는 그 약속을 했던 당시에는 내가 충량한 한국포로를 석방하리라고
예견치 않고 있었던 때인 것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군사적 조치를 취할 적에는 항상 그랬던것처럼 귀하와 사전에 협의하였을 것인데,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 특수한 경우에 처하여서이러한 조치를 왜 안 취했는지를 귀하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본인은 귀하가 적어도 본인의 의도하였던바를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다.그뿐아니라 포로문제는 전투조치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라는 것도 알아주기 바란다.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특히 이 문제가 한국 국민의 처리문제에 관련된 것이니만치
대통령인 그가 발언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만약 본인이 사전에 귀하에게 협의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귀하를 곤경케 하였을 뿐일것이다.
귀하는 본인의 결정을 본인이 우리들의 협정을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나,
국제연합은 공산당이 우리 포로를 여하히 처리하였느냐 하는 점에 의문을 품을 적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우리 포로를 여하히 처리하였던 가를 잘 알고 있다.되풀이 말하자면 반공포로를 그와같이 석방하는 것이야말로 귀국이 데려오려는 친공적인 외국군대와 한국인 사이에 충돌이 생길 위험성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우리는 지금 귀국의 청년들과 어깨를 겨누며 공산군과 대항하여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우리가 끊임없이 반대하여 왔고 또한 귀측이 늘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친공적인 또 하나의 외국군대를 우리 집안에 데려와 가지고 우리의 충량한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나아가서는 공산측의 소위 교양원들이 우리 청년들을 세뇌하여
공산주의자로 개조토록 만들 것을 계획 진행중에 있지 않은가..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힘이나 강압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하지만
반공포로들이 친공국군대로 포위되어 버리는 이상의 강압이 어디 있단 말인가..유엔당국자들이 만들려는 사태가 우리들에게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귀하가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본인이 반공포로를 해방함으로써 취한 해결책을
귀하가 그렇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본인은 어디까지나 우리 한국민이나 또는 기타 아시아의 반공자유민들이 반미적으로 나가게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세계 여러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협조를 제공하여 왔으나 이상하게도 이들은 대개 끝에 가서는 미국에 비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참으로 슬픈 사실이며
우리는 이것을 막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여야 할것이다.만약 미국이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면 떠나도 좋으나
적어도 미국이 우리 한국 국민을 우리들의 공동의 적 공산침략자들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은
태도는 취하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나의 열렬한 소원임을 알 것이다.다시 말하건대 본인이 이와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무모하게 취한 것이 아니요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결과를 충분히 고려한 것이었다.....(중략)......최근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성실한 서한 역시 본인은 똑 같은 마음으로 받은 것이며
이 점은 적어도 우리 한국인 모두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본인은 또한 귀하가 본인에 대하여 반항적 태도라고는 생각지 말아주기 바란다.본인은 하루 온종일 낮과 밤을 밀실에 침거하여 나 자신과 토론하고 여론을 살펴 보고있다.본인은 또한 본인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본인의 깨끗한 양심과 의무감은 나의 길을 인도하고 있으며
그 길이야말로 본인이 꼭 걸어야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장군, 본인이 쓸데없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종용을 거부하고 있다는 바,
이처럼 본인의 진정한 말은 없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우리 우방에 요청안 것은 한국을 위해서만 아니라 전자유아시아를 위해서인데 부당한 강요에 이르러서는 그것을 반대하는 것 이외에 무슨 다른 길이 있겠는가.
우리가 여기서 우방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참으로 깊은 겸손한 마음으로 거부하는 것이며
결코 반항적 태도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이승만 -
▶ 이승만의 리더십, 세계의 헤게머니를 장악하다
미국 언론들이 단독북진을 열창하는 이승만을 ‘자살폭탄을 안고 적진에 투신하는 만화‘로 그리기 시작한지 한달, 만화는 현실로 다가왔다.
클라크에게 “자살전쟁은 내가 지휘한다”고 고함친지 열흘만에 유엔군에 말도 없이 국군통제권을 휘둘러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자살 훈련’을 이승만이 단독 감행하였다.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달라는 이승만의 공식요청을 받은 아이젠하워가
“휴전후에 체결하자. 휴전후 정치회의에서 통일 이루자”는 친서를 보내 달래보았지만이승만은 “휴전보다 안전보장조약이 먼저”라며 속아 넘어가지도 않았다.덜레스 국무장관은 아이젠하워 앞에서 “이승만이 미국을 등뒤에서 질렀다”고 화를 냈다.그래도 덜레스는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부산정치파동 때 애치슨이 그랬던 것처럼 “이승만 제거 (에버레디 플랜)보다는 다시 한번 담판”을 주장, “공산측과 이승만을 단숨에 밀어버리는
휴전 강행” 방침을 주장하였다. 고개를 끄덕인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달래기’부터 하자며
미국 방문 초청을 한다. 이승만은 “바쁘다”는 한마디로 거부한다.
“미국이 할 말이 있거든 덜레스 국무장관을 보내라고 했다.
덜레스는 국회회기라서 떠날 수 없다며 자기대신 동아시아-패텽양지역 담당 차관보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을 대통령 특사로 보내겠다고 회신했다.이승만은 “좋다”고 17일 회신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밤 자정에 “포로석방”을 단행한다.
절묘한 타이밍 선택, 날이 밝으면 판문점에선 포로송환협정이 조인되고 모든 협상은 끝난다.아이크는 대통령 취임 6개월도 안돼 ‘한국전쟁 휴전’이란 공약을 실현하게 되어 느긋해진 그날,
이승만은 판문점 한복판에 세계의 면전에 ‘핵폭탄’을 터트려 휴전을 깨버린 것이다.마침내 한국 대통령은 한국전쟁 3년 만에 전쟁 종결권을 한손에 틀어쥐었다.세계의 반전, 최초의 냉전체제가 불붙은 최초의 이념전쟁에서 헤게머니를 장악한 최약소국
대통령의 리더십 앞에 동서 양진영은 얼어붙은 듯 무릎을 꿇고 이승만의 입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었다.모든 것은 다시 시작돼야한다고 이승만은 변함없이 부르짖는다.현재의 휴전 조건들은 전면파기하고 유엔군은 다시 북진해야하며,
압록강 두만강에 태극기 날리는 날 통일도 한미안보조약도 동시에 쟁취해야 한다.미국과 소련이 분단한 국토를 미국의 힘으로 통일시키는 순간이 곧 휴전이어야 하는 것이다.6월25일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동란발발 3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은 되풀이 역설한다.“중공군은 휴전협정 조인 전에 한반도에서 철퇴해야 한다.한미안보조약도 휴전협정 조인 전에 반드시 조인되어야 한다.휴전후 정치회의는 3개월로 제한, 실패하면 무력통일 전쟁 하겠다“같은 시간 도쿄에서 클라크와 회담을 마친 아이젠하워 대통령 개인특사 로버트슨은6.25 바로 그날 밤에 새로운 휴전협상을 하러서울로 들어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