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동포여 실망 말라" 이승만 눈물의 성명 '통일 다짐'미국의 잇딴 휴전 압력에 "석달뒤 통일전쟁" 조건부 양보
  • [연재] 이승만史 (2) 한미동맹의 탄생⑫ 휴전협정 조인 거부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포럼 대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로버트슨 미국 특사의 ‘경무대 휴전회담’이
    타결됨으로써 공산군의 침략전쟁은 3년2개월만에 정전(Cease-fire)을 맞이하였다.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판문점 휴전회담장에서는 유엔측 대표 해리슨(William K. Harrison, Jr.)장군과 공산측 대표 북한 남일이 협상 2년 17일만에 협정문에 서명을 하였다.
    조선일보는 이날 조인식을 ‘기이한 전쟁, 기이한 휴전’이란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판문점 조인식장에서 최병우 특파원발] 백주몽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너무나 우리에게는 비극적이며 상징적이었다. 학교강당보다 넓은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둘 뿐이었다. 유엔측 기자단만 약 백명이 되고 참전하지 않은 일본기자석도 10명을 넘는데, 또한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27일 상오10시 정각 동편입구로부터 유엔측 수석대표 해리스 장군등 4명이 입장하고 거의 동시에 서편입구로부터 공산측 남일 이하가 들어와 착석하였다. 악수도 없고 목례도 없었다.
    ‘기이한 전쟁’의 종막다운 ‘기이한 장면’이었다. (조선일보 7월29일자)

대한민국과 한민족이 원하지 않는 일방적 휴전, 무방비의 한국을 기습남침했던 공산군이
자유세계의 응징에 패전에 몰리자 애원한 휴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지키려 앞장 선 휴전, 전투기간보다 협상기간이 더 길었던 전쟁의 휴전, 전장은 조그만 한반도내였으나 그 피해와 전쟁경비 규모가 제2차 세계대전과 맞먹는 전쟁의 휴전, 그 인명 피해만 400만여명이다.
***6.25전쟁 피해 상황***
한국군: 전사 13만8천여명, 부상 45만여명, 실종자 포함 총 60만9천여명
미군: 전사 3만6516명, 부상 10만3248명, 실종자 8177명
(유엔군: 미군포함 전사 5만8천여명, 부상 15만여명, 실종-포로등 합계 48만여명)
북한군: 사상자 52만여명, 실종-포로 등 총 80만여명
중공군: 사망자 13만6천여명 부상 20만8천여명, 실종-포로 포함 총 97만3천
대한민국 민간인: 사망 24만5천여명, 학살 13만여명, 부상23만, 피납 8만5천여명, 행방불명 30만 3천여명---합계 100만여명.
스탈린이 만든 ‘인형 앞잡이’ 김일성이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기습 남침한 ‘6.25동란’이
3년2개월의 포성을 멈춘 것은 협정조인 12시간후, 이 시각까지 공산군은 협상막바지에
 ‘철의 삼각지’ 금성지구를 맹공격하여 10㎞를 더 빼앗았고, 유엔군은 강계 북한 임시수도를
비롯한 주요 격전지에 맹폭을 감행하였다. 이때 퍼부운 공산측 포탄이 약 5만발,
유엔군도 재고 포탄을 몽땅 터트리는 둥 양측은 마치 ‘정전 불꽃놀이’라도 하는 듯
최후공방을 벌였다. 이날 밤 10시 마침내 한반도 전쟁은 멎었다.
  • ▲ 판문점 휴전회담장에서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해리슨 유엔대표와 북한 남일(오른쪽).
    ▲ 판문점 휴전회담장에서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해리슨 유엔대표와 북한 남일(오른쪽).
    ★정전협정문은 영어, 중국어, 한글로 각각 작성된 것으로 유엔측이 9통, 공산측이 9통씩 나누어 가졌다. 판문점 인근 유엔군 전진기지에서 해리슨이 가져온 협정문서 18통에 ‘무거운 마음’(heavy hearted)으로 최종 서명한 클라크 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짧막한 성명을 써서 읽었다.
    “이 시간 내 마음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기도할 시간입니다. 
    이 정전이 인류의 이익이 되도록 힘껏 노력함으로써 성공하기를 기원합시다.
    여기서 희망을 찾는다면 끊임없는 경계와 노력이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I cannot find it in me to exult in this hour. Rather it is a time for prayer, that we may succeed in our difficult endeavor to turn this armistice to the advantage of mankind. If we extract hope from this occasion, it must be diluted with recognition
    that our salvation requires unrelaxing vigilance and effort.)
    클라크는 아이크 정부의 강압정책에 따라 휴전을 이루었지만
    “내 생애 중에 공산주의 전쟁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탄식하였다.
    그는 미국 사령관중 “승리를 얻지 못한 채 정전협정에 서명한 최초의 사령관이 되었다”고
    자탄하면서 유명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공산군과의 전투나 협상보다 정녕 힘들었던 전쟁은 이승만과의 협상이었다.”
    클라크는 이어 유엔에 ‘한국전쟁 보고서’를 작성 제출하고 공산군이 저지른 잔혹한 학살행위가
    2만9천815건이며 이 가운데 1만32건의 시체만 확인되었다는 자료도 제출하였다.

  • ▲ 해리슨이 가져온 휴전협정 문서에 서명하는 클라크 유엔사령관.
    ▲ 해리슨이 가져온 휴전협정 문서에 서명하는 클라크 유엔사령관.

    ▶ “북한 동포여, 실망하지 말라” 이승만, 국민에게 착잡한 성명
     
     “북한 동포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려 달라” 휴전협정이 조인되는 날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에서 착잡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나는 정전이라는 것이 결코 싸움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하며 공산측이 전쟁과 파괴적 행동을 준비하여 더욱 공격하게 될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정전의 조인을 반대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전이 조인되었음에 나는 정전의 결과에 대한 그동안 나의 판단과 예측이 옮지 않은 것으로 되었으면 좋겠다.
    북한의 해방과 통일문제를 평화리에 해결하기 위아여 일정한 기간 정치최담이 개최한다하니 그 동안 우리는 정전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와 미국 사이에 도달된 합의는 양국의 공동이익이 관련되어있는 지역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양국은 협조한다는 것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재건과 부흥은 즉시 그리고 효과적으로 진전될 것이다. 공산측은 북한을 위하여 이만한 일을 할 것인가? 공산 압제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우리 북한 동포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친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체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목표 즉 북쪽 우리의 강토와 동포를 다시 찾고 구해내자는 목표는 계속 남아있으며 결국 성취되고야 말 것입니다. 유엔은 이 목표를 위하여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왜 우리들이 이와 같이 북진통일정책을 변경하여 정전을 방해치 않기로 하였는가하는 상세한 설명은 차후 발표될 것이다.“ 
  • ▲ "북한동포여 실망말라. 기어코 통일"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조인에 성명을 발표했다.ⓒ동아DB
    ▲ "북한동포여 실망말라. 기어코 통일"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조인에 성명을 발표했다.ⓒ동아DB

    ★휴전을 매듭지은 클라크 사령관이 테일러 8군사령관을 대동하고 경무대를 방문,
    경과보고와 함께 휴전협정을 준수해 달라는 당부를 되풀이하였다.
    ”수고했다‘고 치하를 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내는 장문의 성명을 또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