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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파동으로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를 기억합니다. 방송의 선동에 넘어간 많은 사람들이 시청 앞에 모였고 그들은 소리를 높이며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성을 외쳤습니다. 거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잘 모르고 그랬을 수 있으니까요. 집회의 지유를 가진 대한민국이니까요. 또한 국민들의 생명을 생각하는 행동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시위 장소의 한 복판을 걸어 다니면서 저는 납득할 수 없는 모습들을 계속해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한 젊은 청년의 욕설이었습니다. 21~22살 정도 된 남자 청년이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차마 인용할 수 없는 상스러운 말로 욕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집안의 어른이 잘못한다 싶으면 집안 어른에게도 저렇게 막 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존재인데 그렇게 막욕을 해댄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와대로 향하려는 시위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성난 군중들이 청와대로 몰려가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마침 청와대로 가는 길목엔 버스 등으로 바리케이트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시위대는 그 버스를 무너뜨리려고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버스에 달려들어 버스를 뒤흔든 것입니다. 버스 위에는 전경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이 떨어져 다치는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시위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도 같은 국민인데 말입니다.
저는 촛불 시위 현장 깊숙이 들어가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시위문화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면 반대 의견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촛불 시위 반대자들을 향해서 난폭하게 말하고 행동하던 촛불시위자들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 같은데 실상은 독선적인 주장을 하면서 반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마녀 사냥하는 이들의 모습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촛불 집회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레사 빈슨이나 다우너 소가 광우병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광우병으로 착각하도록 만든 방속국의 편집능력을 보면서 방송 왜곡이 얼마나 큰 타격을 국가에 미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촛불 시위는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시간이 더 지났고 우리나라의 대형 할인점마다 미국산 소고기를 판매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만약 미국산 소고기가 정말 촛불 시위자들의 말 대로 “뇌송송 구멍 탁”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들고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조용하기만 합니다. 만약 그 때의 촛불 시위가 문제 있는 것이었다면 군중들은 그만두고라도 시위를 주동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반성의 말이 나와야 하는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에 촛불시위자들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008년 촛불 시위 당시 반정부 분위기를 주도했던 인터넷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 운동본부] 운영진이 무더기로 형사처벌을 받을 상황이 된 것입니다. 자신들 모임의 회원 3명이 흉기에 찔리자 치료비로 쓰겠다며 카페 회원에게서 7천580여만원을 모금했는데 그 돈을 엉뚱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무대 설치와 전단 제작 등 시위자금으로 책정된 600여만원을 술값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대단한 도덕성입니다. 더구나 완전범죄를 위해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보관까지 했으니 아예 작정을 했구나 싶습니다. 운영위원 한 명은 한술 더 뜨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칼에 찔렸는데 합의금 명목으로 가해자측에서 3천만원을 받은 후 다른 피해자에게는 500만원만 주고 나머지 2천500만원은 자녀 유학비와 채무 변제 등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돈이 관련되면 동료고 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니 나라를 위해 들고일어난 것이라고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데 주 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저마다 문제를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약점과 한계와 문제를 지니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고요. 따라서 심각한 잘못이 아니라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는 모습도 필요합니다. 그런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 자신 역시 동일한 잣대로 평가를 받는다면 용납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러나 어느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를 드러낸다면, 그것도 사회의 지도자로 있는 사람이 그런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그냥 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에게 큰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촛불 시위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자신들이 먼저 지탄받아야할 사람들이 있으니 우습고, 그런 사람들이 정의 운운하며 큰소리를 쳤다고 하는 것에 허탈감이 생깁니다. 이제 냉정하게 광우병 파동 때를 돌이켜볼 시점이 되었습니다. 국가적으로 큰 손해를 입히게 한 시위였지만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앞으로의 시위문화를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선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이상적으로 충분히 판단한 후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꼭 필요해서 시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부터 철저하게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동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