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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두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빨간 넥타이를 매고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다 죽은 우리 아들은 바로 김대중이 버린 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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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10시 전쟁기념관에서 거행된 ‘제 2 연평해전’ 8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故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는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아있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온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을 때 북한의 경비정 2척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기습공격을 강행했다. 우리 군은 31분간의 사투 끝에 북한군의 총탄에 피투성이가 되고 숨통이 끊기면서도 방아쇠를 놓지 않고 NLL을 사수했다. 북측 경비정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도주했다.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을 포함한 5명이 교전 중 전사. 교전이 끝난 뒤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은 부상을 입어 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그는 두 다리가 잘려나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뒤 3개월 후 6번째 전사자가 됐다.
박동혁 병장 어머니는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며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다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더라...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이곳이 저리고 아프다”며 가슴 한쪽을 손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이 나라의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모두 외면했다. 영결식조차 오지 않았다. 박동혁 병장 어머니는 “나라를 지키다가 죽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켜주지 않더라...”며 당시 힘든 시간을 토로했다. 이어 “효순이 미순이 사고에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나왔지만 나라를 지키다 죽은 6명의 아들들에게 촛불 한번... 단 1초도 들어준 적이 없었다”며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우리 해군이 이렇게 희생을 당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북한이 쏘기 전까지 먼저 총을 쏘지 말아야 한다”는 교전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군은 그 당시 북방 한계선을 침범한 적에게 먼저 총을 쏠 수도 없었다. 故 박동혁 병장 어머니 역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총을 먼저 쏘지 말라는 것은 패전하라는 의미가 아니냐?”며 비통해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헌화와 분향, 부상자 이희완 대위의 경과보고, 인천오페라 합창단 및 해군 군악대의 기념공연, 총리 기념사 순으로 진행됐다. 정 총리는 기념사에서 "정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께 최대한의 예우를 해 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아직 만족할 만한 보상을 못 해 드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이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어 "참수리호에서 산화한 여섯 분의 호국영령들은 우리 함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부활해 차례로 조국의 바다를 지키고 있다"면서 "지난해 6월에는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함정이 실전에 배치됐고 한상국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서후원함도 취역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박동혁함까지 진수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