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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월 ◊일. 김정일은 최후의 선택을 한다.
예고 없는 대남 전면 도발. 옹진반도에 있는 20만 정예 병력이 백령도 등 서해오도를 기습하고 휴전선 전면의 남침과 함께 AN-2기를 이용한 특수전부대의 강습도 동시다발로 이뤄진다.
아군의 전면반격이 이뤄지는 속에서 불쑥 김포며 수원, 양구, 대전 등에 아군 복장을 북한군 수만 명이 나타난다. 이들은 주요 시설과 군 시설 등을 불시에 점령하고 수도권의 배후를 치고 올라온다. 미군 부대도 타격을 입어 수많은 미군들이 인질이 된다.
상상도 하기 힘든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 신속이동군이 서둘러 날아와도 이미 서울 등 주요 거점이 점령당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하룻밤사이에 적화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악몽의 이 같은 시나리오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상상만은 아니다. -
사실상 북한은 그동안 핵무기 이외의 남한 타격 수단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지난 2008년 12월 23일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남한이 사소한 선제공격 움직임만 보여도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타격수단에 의거한 우리식 선제타격을 가해 통일조국을 세우겠다”고 위협했다.
또 지난해 5월 27일엔 “군사적으로 타격하겠다. 우리식 타격방식이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전문가들은 이같은 ‘북한식 타격방법’은 땅굴 -
이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한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는 “북한의 대남 남침땅굴이 한강 이남 깊숙한 요지까지 뚫려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AN-2기를 이용한 강습은 복귀 가능성이 적어 제한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다”며 “땅굴은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남침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2002년 화성서 땅굴 발견
2002년11월 28일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 야산에서 땅굴이 발견됐다. 매송영락교회 김진철 목사는 정지용, 최민용씨 등과 포클레인으로 굴착작업을 해 땅굴에서 철제 지지대와 호미, 배터리 등을 수습했다. 탈북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철제 지지대는 북한 황해제철소의 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호미는 베트남산, 배터리는 정확한 북한제였다는 것이 김 목사의 증언이다.
김 목사는 신도들과 의견을 나눠 교회 건립기금으로 모아둔 4000만원을 땅굴 발굴에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냉랭하기만 했다는 것. 남침 땅굴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보상금을 노린 파렴치한으로 몰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 규정에 남침 땅굴을 발견한 민간인에게는 어떤 보상도 있지 않다는 것이 김 목사의 설명이다.
김 목사는 종교계 인사 수천 명에게 자신이 발견한 땅굴의 증거를 알리는 서한을 보내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당시 미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알아보겠다”는 의례적 답변뿐이었다. 되레 부시 대통령의 경우 각별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왔다.
◆北장교 "한강 밑 땅굴로 침투" 증언
그렇다면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우리의 후방 지역 어디까지 들어와 있을까?
일부에선 북한의 땅굴이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250km 이상은 남진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1970년도에 첨단 굴착장비인 TBM을 유럽 국가들로부터 300대 수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대의 TBM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02년부터 경기도 화성 등에서 지하에서 ‘TBM 작동음’과 ‘전화 받는 사람 목소리’까지 들렸다는 민간인들의 신고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TBM을 동원하면 1일 15m, 1년에 30km 정도를 굴착할 수 있다고 한다. 1954년부터 김일성의 지시로 굴착된 땅굴은 TBM에 의해 더욱 날개를 달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탈북자들은 땅굴 굴착과정에서 나온 화강암 등을 북한이 서해갑문공사와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 공사에 사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또 실제로 지난 1980년과 86년, 89년에 서울에 침투했던 북한군 장교 3명은 탈북 뒤 “개성 인근의 화곡강산 지하에서 한강 밑으로 파진 땅굴로 대남 침투를 했다”는 증언도 있다. -
◆북한산 밑까지 파내려 왔을지도
김목사는 “남침 땅굴이 인적이 드문 산속에 출구가 있으면 지하철이나 상하수도 공사 현장과 마주칠 가능성도 거의 없다”며 “땅굴 출구는 해당 지역 내에 위치한 높이 100m 이상 되는 산 중에서, 주요도로와 접해있는 산속에 개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지하 100m 내외에 개척돼 발견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주장이라면 청와대 인근 북한산에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셈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지난 2004년 김 목사와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1954년부터 땅굴을 파왔다”고 확인하며 ”인민군 1개 사단 당 2개씩 땅굴을 파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목사는 “좌파정권이 묻었던 경기도 김포, 연천, 화성 땅굴을 지금이라도 재조사해야 한다”라며 “공정성을 위해 제3국 인력에게 조사를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화성땅굴의 존재를 위해 두 번이나 삭발을 했던 그는 지금도 매주 종묘공원에서 남침땅굴 재조사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미 100회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