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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CCMM 빌딩 1층에서 중요한 단체 하나가 출범했다. 단체명은 ‘콘텐츠유통기업협회’. 협회 창립 취지는 ‘저작권 보호 및 음란물 유통 근절을 통한 콘텐츠 유통시장 활성화’였다. 행사에는 중소 규모의 웹하드-P2P 업체 관계자들과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들, 언론계 인사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왜 ‘콘텐츠 유통시장 활성화’와 웹하드-P2P 업체의 문제가 관계있다고 생각한 걸까.
불법 저작물의 본산, 웹하드-P2P
콘텐츠유통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400여 개 이상의 웹하드-P2P 업체들이 영업 중이다. 사용자 수도 엄청나다. 웹하드-P2P 업계의 추정으로는 우리나라 국민 중 60% 이상이 그들의 회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웹하드-P2P 사용자 대부분은 이런 업체를 사용하는 게 별 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회원 가입 후 웹하드-P2P 업체에게 이용요금을 내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이 요금에 콘텐츠의 사용료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웹하드-P2P 이용요금이라는 건 업체의 인터넷망 이용료, 업체 인건비, 관리비용 등으로 나가는 게 대부분이며, 나머지는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회원들에게 수익배분 형태로 지급하는 돈이다. 문제는 회원들이 업로드하는 콘텐츠 대부분이 불법 복제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에이, 그래도 영화 한 편에 300원 남짓 수준인데 그걸로 얼마나 벌겠어”라며 작은 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업계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2009년 12월 웹하드-P2P 업체 10여 개 이상을 면접 조사한 결과 이들이 추정하는 업계 전체의 연간 매출은 8,000억 원. 이마저도 최소한으로 추산한 것이다. 대부분의 업체는 연간 매출이 10억 원 안팎이지만, 선발업체들의 경우에는 연간 매출이 500억 원 이상이다. 일부 대형업체는 코스닥 기업을 인수, 우회상장을 하기도 했고, 여러 개의 업체를 가진 ‘오너’들은 성공한 벤처기업가인양 활동 중이다.
반면 이런 웹하드-P2P에서 유통되는 불법 콘텐츠로 인한 피해는 2009년 말 기준으로 연간 1조4,251억 원에 달한다. 피해 당사자 대부분은 신인배우나 가수, 영화제작사, 기획사 등 콘텐츠 생산자들이다. 대형 배급업체나 유통업체는 웹하드-P2P에게 소송을 걸어 합의금으로 자신들의 손해를 벌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세한 영화제작사나 신인 연예인들은 매출액이 수백 억 원이 넘는 기업을 대상으로 법적 소송을 벌일 능력이 없기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대형 웹하드-P2P 업체들은 현재의 콘텐츠 유통시장을 개선할 의지도, 노력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자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단체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음란물을 국민 오락물로 만든 웹하드-P2P
웹하드-P2P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근에서야 주요 언론들이 거론하는 음란물 유통이다. 웹하드-P2P가 처음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포르노 사이트들에 대한 집중단속이 시작되면서부터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유명 웹하드 업체인 ‘W’社의 한 관계자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전체 콘텐츠 중 유료로 사용하는 건 대부분 포르노다. 포르노가 가장 돈이 되는 콘텐츠”라며 이를 시인하기도 했다.
실제 웹하드-P2P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일본 포르노를 중심으로 미국, 러시아, 유럽, 한국 포르노 등 숱하게 많은 음란물이 수만 내지 수십만 개가 올라와 있다. 이런 음란물들은 국내법에서 허용하는 성인물이 아니라 성기가 노출되고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하는 등 온갖 범죄행위를 재연했거나 또는 실제 범죄행위가 찍힌 불법 콘텐츠가 90% 이상이다.
일부 음란물은 합법적으로 제작된 것처럼 위장한 범죄 영상도 있다. 피해여성의 얼굴이 드러나고 파일 명에는 이름 등 인적사항이 있지만 제대로 제재가 되지 않고 있다. '아마추어''일반인' 등의 제목으로 오른 음란물들 중에는 몰카나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도 있다.
그런데 웹하드-P2P 사이트에는 성인인증에 대한 확실한 장치가 없다시피 하다. 때문에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들도 이런 포르노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로 성인인증을 한다고 하지만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래 사용할 경우에는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이렇게 허술한 시스템 때문에 최근에는 초등학생들까지도 웹하드-P2P에서 음란물을 다운로드 받아 본다고 한다.
이런 음란물 유통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낀 후발업체들은 전담 직원을 고용해 필터링에서부터 음란물 삭제, 검색 금칙어 설정 등을 24시간 하고 있지만, 온갖 음란물을 올려 돈을 벌려는 이들이 수천 명이 넘고 이들이 주로 새벽에 활동하다보니 번번이 한계에 부딪힌다. 반면 선발업체들은 겉으로는 필터링을 상당히 잘하는 것처럼 해놓고선 필터링을 피할 수 있는 ‘패치 파일’을 만들어 업체 직원들이 만든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통해 유통시킨다. 이 ‘패치 파일’을 이용하는 회원들이 많을수록 그들은 뒷돈을 벌게 된다.
업계가 이런 구조로 움직이는 보니 중소 업체들이 아무리 자정 노력을 한다고 해도 불법-음란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유통기업협회를 응원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예전에도 있었다. 콘텐츠유통기업협회의 전신(前身)인 콘텐츠공정유통협의회는 2009년 11월 발족한 이후 콘텐츠 유통배급망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기업과 각종 규제 및 단속을 관리 감독하는 정부부처와 수차례 협의를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웹하드-P2P 업체에 고소고발해서 다 없애면 된다’는 식이었고, 정부 부처와 관련 기관들은 ‘지금 우리가 잘 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왜 참견이냐’며 현실을 외면했다. 이런 무관심과 아집 때문에 당시에는 200여 개던 웹하드-P2P 업체는 불과 6~7개월 사이 100개 이상 늘었다.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업계에 더 이상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일부 생각 있는 웹하드-P2P업체까지 모아 만들어진 것이 바로 ‘콘텐츠유통기업협회’인 것이다.
콘텐츠유통기업협회는 창립식에서 ▲문광부, 저작권보호센터, 영화진흥위원회와의 공조를 통한 복제방지 체계 개발 및 보급 ▲청년 PD 협회, 대중문화기자협의회 등과의 연대를 통한 콘텐츠 산업 지원책 마련 ▲웹하드-P2P사이트의 콘텐츠 유통 합법화 모델 제시 ▲웹하드-P2P 합법화 및 정상화를 통한 일자리 마련을 목표로 제시했다.
즉 아무도 나서지 않던 문제를 소비자이자 생산자, 유통망의 핵심인 2030세대들이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의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콘텐츠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콘텐츠 유통시장 정화’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가 이들을 응원하고 지원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