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포스트 4대강! ③유럽의 강_ 되살려 낸 ‘알프스의 선물’ 취리히호와 리마트강스위스 취리히 시 하천 복개도로 뜯어내고 수백km 복원자연그대로? “인공이라도 시민-하천 친해지는 게 중요”
  •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주변은 보통 기차역과 다를바 없이 북적였다.  도심전기열차(트램), 화려한 장식의 관광버스, 스위스 독일 프랑스 덴마크 번호판이 달린 승용차 버스가 부지런히 도시를 누볐고 하늘엔 트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이 거미줄처럼 덮여있다. 문득 “어째서 이곳이 친환경 도시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 ▲ 스위스 취리히호에서 리마트강을 따라 실 강과 만나는 지점 근처의 보.ⓒ
    ▲ 스위스 취리히호에서 리마트강을 따라 실 강과 만나는 지점 근처의 보.ⓒ

    취리히 중앙역을 지나 유럽 금융의 중심지로 불리는 반호프 거리를 지났다. 유럽 여느 도시처럼 수백년은 지났을듯한 멋스런 가게들의 고급브랜드 상표와 세일 간판이 명품거리임을 알려줬다.
    이곳을 지나서 나타난 취리히호수에 다다라서야 왜 친환경도시인지 알 수 있었다. 알프스의 빙하 녹은 물이 하천으로 흘러들어와 호수를 이룬 곳이다. 길이는 37km정도에 폭은 수백m에서 수km나 된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호수 한쪽을 뒤덮은 요트들이다. 비가 오락가락해서인지 개인용 요트들이 관광지 주차장처럼 차곡차곡 어깨를 대고 정박해 있었다. 이곳은 취리히호의 ‘엥게’ 지구로 주로 나이가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고 한다.
    요트 사이로 비친 물속은 1m아래 작은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아득히 멀리 알프스 만년설 봉우리도 거울처럼 수면에 담겼다. 잠시 구름 비켜난 사이 푸른하늘이 잠긴 호수, 은은한 코발트빛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 ▲ 취리히호옆에 있는 호반 노천극장ⓒ
    ▲ 취리히호옆에 있는 호반 노천극장ⓒ

    호수면엔 노천 호반영화관도

    호수 좌안(상류에서 봤을 때 왼쪽변)에 있는 요트 구역을 따라 하류로 몇 분 걸으면 축구장만한 잔디밭이 펼쳐진 수변공원이 나타난다. 한쪽엔 공작새 등을 키우는 조류 동물원도 있다. 100살이 넘었을 것 같은 고목 마로니에가 여기저기 버티고 있는 잔디밭에선 고니와 오리가 쭈그리고 앉아 부리를 쪼고 있었다. 벌레를 잡아먹는 걸까, 코앞까지 다가가니 기이하게도 잔디를 뜯고 있었다. 잔디밭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엔 자전거족들이 꼬리를 물었다.
    인근 유람선 선착장엔 비가 뿌리는 중에도 관광객들이 줄지어  탑승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트장 건너편 우안은 젊은이와 가족단위 시민이 찾아온다는 ‘취리히호른’ 지구이다. 문화공간, 식당 등이 갖춰져 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시민과, 조깅하는 사람, 조깅 후 호수에 풍덩 들어가 땀을 식히는 남자도 있을 정도로 자연과 시민이 하나가 돼 있었다. 빗발이 굵어지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 ▲ 취리히호에 산책나온 올리버씨 가족. 사는 곳 주변에 물가가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했다.
    ▲ 취리히호에 산책나온 올리버씨 가족. 사는 곳 주변에 물가가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했다.

    "집근처 개천이 있다는 건 큰 행운"


    취리히호른 구역에 7살 아들 숀을 데리고 나온 올리버씨 부부는 “저 건너 실개천이 흐르는 곳은 원래 2차선 도로가 있던 자리입니다. 집밖에 바지를 걷고 아이와 놀 수 있는 개천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며 “개천이 생긴 뒤에 산책하는 시민이 늘었고, 동네에 활기가 돌았다. 물이 흐르는 개천은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올리버씨는 취리히호엔 일주일에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꼭 온다고 했다. 한국에도 강을 정비하고 공원화하는 사업을 하지만 일부에서 반대하는데, 스위스에서는 강을 정비할 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냐고 묻자 올리버씨는 “이곳에서도 처음에 강변 일부와 도로를 파헤치고 정비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잘한 일이라고 좋아한다.”며 “시민들을 자연과 친해지게 해 주는데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연은 인간과 어울릴 때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또 호수옆의 공연무대를 가리키며 “저기서 영화도 상영한다. 저 공연장이 도심 한가운데 있었으면 지금만큼 멋졌겠느냐”고 반문했다.

  • ▲ 취리히호의 요트. 비가 오는 날이라 거의 정박해있다.ⓒ
    ▲ 취리히호의 요트. 비가 오는 날이라 거의 정박해있다.ⓒ

    취리히는 총길이 37㎞에 달하는 취리히호수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호수를 빠져나온 물은 리마트강의 시작이다. 이 강은 2km도 되지 않아 실 강과 만난다. 비가 온 날이라 자연하천인 실강엔 흙탕물이 가득했다. 수량이 풍부한 호수에서 내려온 맑은 물인 리마트강과 자연하천 실강이 만나는 곳에선 탁수와 투명한 물이 합쳐지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취리히는 원래 중세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로, 유럽을 대표하는 견직물 생산지이자 유통도시였다. 그 뒤 17세기에 들어 면공업 등이 발달하며 스위스 공업중심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 후반엔 수력발전을 이용한 중화학공업이 발달하면서 호수는 오염으로 얼룩졌다고 한다. 제조업이 발달하며 자연스럽게 금융산업도 등장했다. 산업과 금융도시가 혼재된 상태에서 도시의 하천과 호수는 제모습을 잃어갔다.

    공업도시 복개하천 20여년전부터 뜯어내 복원

    한 통계에 따르며 19세기 중반 취리히시에는 160km정도의 하천이 있었지만 1980년대엔 80km정도만 남았다. 그런 오염도시가 친환경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부터. 1985년 취리히 도심 한복판의 알투스케크라인 천을 덮고 있는 복개 콘크리트 150m가 뜯겨나간 것을 시작으로 환경복원 사업이 본격화됐다. 1987년 취리히 주정부는 토목기술자 생물학자 등 전문가들로 도시 리모델링 팀을 꾸렸다.

  • ▲ 취리히호 수변 공원에서 조깅을 하던 남자가 호수에 풍덩 들어가 땀을 씻은 뒤 몸을 닦고 있다.ⓒ
    ▲ 취리히호 수변 공원에서 조깅을 하던 남자가 호수에 풍덩 들어가 땀을 씻은 뒤 몸을 닦고 있다.ⓒ

    스위스에서 여행사를 경영하는 박영배 씨는 “당시 취리히의 하천을 덮은 도로를 걷어내고 원래의 하천을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폐수가 흐르던 하천 바닥과 콘크리트 벽도 모두 제거됐다. 대신 그 자리에는 흙과 자갈이 깔렸다. 사라졌던 동식물이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복원작업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르자 복구된 개천에 물고기가 돌아오고 하천이 하천다워지기 시작했다”고 들려줬다.

    취리히의 하천복원은 복개도로를 걷어낸 것과 함께 생활하수와 하천을 분리한 것이 특징이다. 하수관로를 따로 내고 정화처리하여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원리는 한강과 비슷했다.
    박씨의 설명에 따르면 하천을 되살리고 경관을 고려한 주택환경, 자연복원, 홍수 대책 연구대상이 취리히 주 전체에 수백개, 길이도 500km가 넘었다.

    "자연그대로 복원?" 사람들 몰려들자 인공 걱정하던 전문가들 생각바꿔"

    박씨는 “스위스의 학자들은 처음엔 자연 그대로의 복원이 아닌 인공적인 모습에 옳은 방법인가 회의했었다. 그러다 인공적으로라도 복원된 뒤 강에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고, 더불어 삶이 풍요로워진 모습을 보고는 전문가도 생각을 바꿨다”고 전해줬다. 즉 “자연그대로인 모습만 중요한 게 아니라 우선 사람이 자연과 친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문가들도 깨달았다는 것이다.

    박영배 씨는 “여행업을 하다보니 여러 곳을 보게된다. 서양사람들은 강을 가지고 ‘장난’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물가에 건축물이 바짝붙어 강을 넓힐 수도 없으니, 그 상태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환경을 만들고 시민의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아이디어가 놀랍다”고 평가했다.
    현재 취리히시에는 100㎞ 이상의 하천이 흐르고 이중 40여㎞가량이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심구간 중 30여㎞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됐고, 복원해야할 하천도 15km가량 남아있다고 한다.

  • ▲ 취리히호 공원엔 운동을 위한 젊은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 등 남녀노소가 편하게 나와 휴식을 즐긴다.ⓒ
    ▲ 취리히호 공원엔 운동을 위한 젊은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 등 남녀노소가 편하게 나와 휴식을 즐긴다.ⓒ

     

  • ▲ 취리히 호 전경. 멀리 구름에 아려 안보이는 곳이 알프스산맥이다. 고여있지만 유입된 원수가 깨끗해 호수물은 수정처럼 맑다.ⓒ
    ▲ 취리히 호 전경. 멀리 구름에 아려 안보이는 곳이 알프스산맥이다. 고여있지만 유입된 원수가 깨끗해 호수물은 수정처럼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