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책을 번역한 남성욱, 국정원 산하 연구소 소장 근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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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魔의 변호사' 브루스 커밍스 책을 번역한 남성욱
“북한 핵은 부시가 만든 폭탄이다”
國情院 산하의 연구소 소장으로 근무중.
金成昱
1.
‘김정일 코드’라는 책이 있다. 소위 수정주의 학자로 불리는 시카고대학의 브루스커밍스 석좌교수가 쓰고 現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남성욱 소장(前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이 2005년 3월 번역해 출판된 책이다.
브루스커밍스는 2007년 5월‘후광 김대중 학술상’초대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한 인물이다. ‘후광 김대중 학술상’은 이른바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5.18 정신의 학술적 계승을 위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김정일 코드’가 김일성과 6·25, 김정일과 북한을 美化(미화)하는 수준은 놀라울 정도다. 다양한 引用(인용)과 證言(증언), 현란한 表現(표현)을 동원해 대한민국 현대사에 무지한 이들을 미혹케 만든다.
우선 일제시대 김일성의 활동과 관련, “고전적 로빈 후드”, “가장 유명한 지도자”, “위대하고 유능한 지도자”, “조선의 영웅으로 찬양”, “그의 부대원들은 정말 용감하다”, “엄청나게 강한 매력”, “우리의 총사령관·위대한 지도자·현명한 교사·다정한 친구는 다름 아닌 김일성 장군이다”는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또 “김일성이 러시아의 꼭두각시인 것처럼 비춰진 것”에 대해 “오해”라고 강조한다.
6·25에 대해서는 김일성의 남침에 대한 비판적 서술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공습은 북한을 철저히 파괴했다”, “미국인들의 야만적인 공습”, “미국인들이 저지른 파괴와 끔찍한 살해”, “미군은 모든 것에 재미삼아 총을 쏘아댔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었다”며 “북한이 병영국가”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이 한국전쟁 동안 대학살(holocaust)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국군과 경찰에 의한 “지독하고도 무서운 보복”이 이뤄졌다며 이를 “국군의 학살”, “총살”, “처형”, “살해”, “몰살”, “중세 마녀사냥”, “킬링필드” 등으로 표현한 뒤, 이것은 “전방 전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또 살아남은 좌익에 대해선 “노예 취급”을 하고 “여자들은 남한과 미국 군인들에게 ‘밤낮없이’ 强姦(강간)을 당했다”고 덧붙인다.
‘김정일 코드’라는 책에 따르면, 1945년 독립 당시 34세의 김일성은 민족해방에 노력해 온 위대한 지도자이며 6·25는 미군의 학살 전쟁과 국군의 야만적 보복이 뒤엉켜 저질러진 “중세 마녀사냥”이나 “킬링필드”가 된다.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김정일의 강제노동수용소는 수감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교화시킨다는 ‘교육기관’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옹호한 뒤 “반면에 미국은 감옥에 흑인으로 가득 찬 강제노동수용소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더 정당하게 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마지막 침공은 철저히 무장한 병영국가를 낳았다”며 “북한이 핵을 갖는다면 이는 부시가 만들어준 무기(Bush's bomb)”라고 썼다.
“북한 핵은 부시가 만든 폭탄이다”는 문장은 이 책의 표제어 중 하나로도 인쇄돼 있다.
심지어 이 책은 “북한에는 부인할 수 없는 자유가 존재하며 그것은 한국적인 한국인이 되는 자유다”라며 신앙·언론·집회·결사·거주·이전 등 인간의 자유가 완벽히 박탈된 북한을 “한국적 한국인이 되는 자유”로 표현한다. 惡魔(악마)를 위한 변론문.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하게 느껴진다.
2.
譯者(역자)인 남성욱 소장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브루스 커밍스를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학자”로 평가한다. 6·25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을 비롯해 커밍스의 김일성의 항일운동, 김정일의 북핵개발, 북한 인권 실상 등에 대한 묘사는 事實(사실)로 볼 수 없는 과장, 왜곡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4페이지에 달하는 ‘옮긴이의 말’에는 어떠한 비판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譯者는 이 책에 대해 “때로는 폭넓게, 때로는 바늘 끝처럼 예리하게 분석하고 통합하고 있다” “이 저서의 의미는 한국 현대사란 학문에 임하는 철저하고, 성실하고 냉엄한 자세에 비롯된다” “(···) 먼지 쌓인 사료와 증언을 발굴하고 이를 학문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치열한 노력은 이 책이 지닌 독보적 가치를 상징한다” 며 격찬한다.
또 “미국에서 북한학으로 학위를 마쳤고 10여 차례 이상 북한 현장을 방문하고 수많은 북한사람과 대화를 나눈 바탕이 없었다면 그가 북한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그나마 공감대를 가질 수 없었을 것”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은 최대한 검증을 통해 확인하였다”고 하여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이 ‘검증을 통해 확인한 것’이며 ‘공감대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역자의 평가를 일부 인용하면 이러하다.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은 한국전쟁에 대한 방대한 연구의 결실이었다. 아울러 1997년 작 ‘한국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을 통해 역사의 단절과 연속의 변증법적 시도를 모색한 역저다(298p)”
“브루스 커밍스 교수만큼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외국 학자도 보기 드물다.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그의 연구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라는 이론적 대립 때문에 많은 논란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역사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98p)”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 현대사의 키워드가 ‘자주’와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298p)”
“‘선과 악을 넘어’라는 기본적 전제 아래 저자는 한국전쟁의 역사적 교훈에서부터 북핵위기·김일성의 신화·김정일의 현실정치·북한의 일상생활 모습까지 때로는 폭넓게, 때로는 바늘 끝처럼 예리하고 분석하고 통합하고 있다(299p)”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는 커밍스 교수의 특정한 관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연구를 특정 관점과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면 연구의 결실을 반쪽밖에 파악할 수 없다. 이 저서의 의미는 한국 현대사란 학문에 임하는 철저하고 성실하고 냉엄한 자세에서 비롯한다(299p)”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창고에 방치돼 있는 먼지 쌓인 사료와 증언을 발굴하고 이를 학문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치열한 노력은 이 책이 지닌 독보적 가치를 상징한다.(···) 작은 사실 하나에도 확인과 비판과 수용을 달리하는 정치한 학문자세는 아무리 높은 평가를 해도 부족할 것이다(300p)”
“다만 미국에서 북한학으로 학위를 마쳤고 10여 차례 이상 북한 현장을 방문하고 수많은 북한사람과 대화를 나눈 바탕이 없었다면 그가 북한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그나마 공감대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301p)”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은 최대한 검증을 통해 확인하였다(301p)”
3.
‘김정일 코드’에서 김정일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찾을 수 없다.
40억 달러를 스위스 비자금 계좌에 놔두고도 1년에 3억 달러를 쓰지 않아 300만 명을 굶겨 죽인 사실, 시체가 산을 이루기 시작한 1994년 북한의 3년 치 식량 값 8억 달러를 들여 김일성 궁전을 리모델링한 사실, 김정일이 북한 간부 300년 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3000달러 식사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브루스 커밍스는 김정일을 오히려 이렇게 평가한다.
“김정일은 플레이보이도 바람둥이도 술주정꾼도 아니고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은 광신적 ‘악마박사’도 아니다. 그는 그다지 사교적이지 않으며 과음하는 편도 아니고 집에서 파자마를 입은 채 비서들이 회색 가방에 담아온 수많은 분야의 서류에 지시사항을 적어 넣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그는 점잖은 성격에 수줍음을 타는 편이며 정남을 비롯한 자녀들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헌신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한국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다. 김정일은 북한 방문자들을 매혹시키는 호화판 공식행사를 주재하는 것보다 그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125p)”
“점잖고” “수줍고” “가정적이고” “헌신적인” 김정일은 100만 명 이상이 죽어간 정치범수용소 역시 아래와 같은 이유로 만들었다고 저자는 변호한다.
“공식적으로 김정일의 강제노동수용소는 수감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교화시킨다는 ‘교육기관’으로 세워진 것이다(140p)”
브루스 커밍스는 정치범수용소 출신인 강철환氏에 대해 그가 살아남은 것이야말로 정치범수용소의 ‘교육기관’으로서의 필요성과 탄력성을 반증하는 양 강변한다.
“강철환씨가 저술한 ‘평양의 수족관(Aquariums of Pyungyang)’은 재미있고 믿음직한 이야기다. 이 스토리는 프랑스 출판사가 원래 의도했던 것처럼 전체주의적 억압상을 다른 무시무시한 소설로 가공되지 않았다. 그 대신 육친들과 10년간 감금당했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포로수용소에서 10년간 수용된 전과가 평양 거주나 대학입학 그리고 엘리트 지위로 진입하는 데 반드시 장애물은 아니라는 것을 증언한다.(143p)”
브루스 커밍스가 정작 비난하는 체제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반면에 미국은 감옥에 흑인으로 가득 찬 강제노동수용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래 되었으나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굴라그(편집자 주. Gulag. 강제수용소)다. 그곳에는 모든 흑인 청년들의 25퍼센트 이상이 감금돼 있다. 이것이 경찰국가인 북한의 핑계거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미국인들이 먼저 그들의 내부 도시가 가진 병폐에 대해 무엇인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143p)”
브루스 커밍스는 이제 2만 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해서도 근본적 회의를 품는 것처럼 보인다.
“문자 그대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정보기관 또한 북한 탈북자들을 줄 세워 놓고 미국의 기자들을 연달아 유혹하여 평양에 대한 루머를 만들어 내는 데 가세했다. 그 가운데는 가짜 탈북자도 있었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잠시만 조사해 보아도 금새 들통 날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20p)”
<“미국의 마지막 침공”에 대한 “자위용 핵 위협”>
브루스커밍스는 북한의 핵보유 역시 옹호한다. “미국의 선제공격”, “미국의 마지막 침공”에 대한 “정당한”, “자위용 핵 위협”이므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게 된다면 부시가 만들어준 무기(Bush's bomb)”라는 것이다. 일부분을 인용해보자.
“‘부시독트린’은 북한이 위기를 야기할 경우 핵으로 선제공격하겠다는 수십 년 된 주한미군의 작전계획 위에-스스로 수천 개의 핵무기를 쌓아놓고 있으면서도-핵무기를 한두 개 소유하고 있거나 단순히 그것을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북한과 같은 나라를 공격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더해진 것이다(215p)”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자위용 핵 위협 또는 핵사용이 적법인지 위법인지에 대해 재판소(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는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미국이 비핵국가인 북한을 전멸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것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더 정당하게 된다(219)”
“북한에 대한 미국의 마지막 침공은 철저히 무장한 병영국가를 낳았다. 그리고 50년 뒤 그 국가는 여전히 미국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다. 북한이 결국 핵무기를 가지게 된다면 그 무기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시가 만들어준 무기(Bush's bomb)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220p)”
▲<김정일 코드> 책 표지, 저자 브루스 커밍스, 번역자 남성욱 소장.
"정통성은 북한에...미군은 재미삼아 총을 쏘아댔다"?
4.
‘김정일 코드’가 가장 집중한 분야 중 하나는 소위 ‘김일성이 항일투쟁과 6·25당시 미군의 양민학살’이다. 이 책은 민족사적 정통성은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정권이 갖는 것이 옳고 미군철수를 비롯한 반미주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식으로 몰아간다.
6·25사변에 대해서는 브루스커밍스가 주장해 온 미국의 ‘南侵誘導說(남침유도설)’은 나오지 않지만 김일성의 ‘南侵(남침)’에 대한 비판적 서술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미국의 공습은 북한을 철저히 파괴했다”, “미국인들의 야만적인 공습”, “미국인들이 저지른 파괴와 끔찍한 살해”, “미군은 모든 것에 재미삼아 총을 쏘아댔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었다”며 “북한이 병영국가”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이 한국전쟁 동안 대학살(holocaust)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브루스커밍스의 주장대로라면 6·25당시 국군과 미군은 잔인한 학살자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미군 소속 5만4000여 명의 전사자와 10만 명의 부상자도 마찬가지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들도 “재미 삼아 총을 쏘아댄” 자들일 뿐이다.
김일성은 6·25 南侵(남침)으로 300만 명을 죽게 하고 15만 명의 민간인을 납북했으며 ‘인민재판’ 등을 통해 12만 명의 양민을 학살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김일성은 마치 피해자처럼 등장한다. 브루스커밍스는 특히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경찰에 의한 “지독하고도 무서운 보복”이 이뤄졌다고 말한다. “학살”, “총살”, “처형”, “살해”, “몰살”, “중세 마녀사냥”, “킬링필드” 등이 “전방 전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브루스커밍스가 인용한 소스는 북한이나 헝가리 등 공산권 자료도 있지만 익명의 미군 장교나 남한 사람, 완전한 未詳(미상)의 인물도 있다. 저자는 다양한(?) 출처를 동원해 남한 장교들에 의한 “아이들·임산부·노인에 대한 처형도 있었다”, “300명의 여성 공산주의자들과 부역자들이 매음굴에 갇혀 남한과 미국 군인들에게 ‘밤낮없이’ 강간을 당했다”는 식으로 적고 있다.
브루스커밍스는 정작 부인할 수 없는 북한의 ‘인민재판’식 양민학살에 대해 “물론 북한사람들도 전쟁 중에 대량학살을 저질렀다”고 인정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바로 남한의 행위가 북한보다 더 심했고 미국은 동맹국이 저지른 범죄를 50년 넘게 숨겨왔다는 사실이다”며 학살자는 김일성이 아니라 국군과 미군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일부를 인용하면 이러하다.
“아이들·임산부·노인에 대한 처형도 있었다?”
“북한은 왜 병영국가인가? 무엇보다 한국전쟁 동안 대학살(holocaust)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60p)”
“맥아더의 문제점은 승리를 대신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승리의 한계 또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마지막 승리에 만족하지 못했고 매번 승전할 때마다 또 다른 전쟁을 갈구했다.(62p)”
“신무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당시에는 네이팜탄이 최신무기로 통했지만-미국의 공습은 북한을 철저히 파괴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었다. 북한 사람들은 3년 동안 매일 네이팜탄에 불타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92p)”
“1952년 한반도 북부와 중부는 거의 다 파괴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窟(굴) 속으로 숨었다. 북한 주민들은 주택·학교·병원·공장 등 모든 생활을 지하에서 영위해야만 했다.(93p)”
“2차 대전 당시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이 적들의 저항을 더 증폭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관리들은 공습을 심리적·사회적 전투의 하나로 이용했다(94p)”
“미국인들의 야만적인 공습의 마지막 단계에서 북한 식량의 75퍼센트를 생산하는 지역에 물을 대는 대형 대들 댐들을 파괴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공격 행위들이 세인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94p)”
“헝가리인 티보 메라이는 1986년 런던의 한 텔레비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쟁에서 남북한 가운데 어느 쪽이 얼마나 더 잔인했든지 간에 ‘미국인들이 저지른 파괴와 끔찍한 송해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군인들의 표적이 되었다. 내가 받은 인상이란 조종사들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모든 것에 재미삼아 총을 쏘아댔다는 것’이라고 그는 증언했다. 메라이는 1951년 8월 압록강을 건넜는데 ‘압록강에서 평양까지 완전히 쑥대밭이었다.’ 문자 그대로 ‘북한에 더 이상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96p)”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북측과 협력했던 사람들은 지독하고도 무서운 보복을 당했다. 영국 소식통들은 그것을 경찰에 의한 ‘중세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했으며 남한 출신의 한 한국인은 그 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비유하기도 했다(102p)”
“한 미국인 해병대 군종 신부는 남한 장교들이 약 1백 명 가량의 부역 혐의자들에게 처형당하기 전 자신들의 무덤을 파게했다고 증언했다. 그 가운데는 아이들·임산부·노인도 있었다. 이런 일은 전방 전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다(102p)”
“북한 당국이 작성한 내부용 비밀 자료에는 서울에서 일어난 만행이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2만9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남한 당국에 의해 ‘총살’당했고 2만1천 명은 감옥에서 처형됐으며 나머지는 경찰과 ‘반동’단체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인민위원회 간부들은 전 가족이 몰살당했다. 사형들 당하지 않은 부역자들은 가족까지 남한과 미국에 의해 ‘노예’취급을 당했다. 대한민국 도민증을 소유할 수 없었고 각종 강제노역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300명의 여성 공산주의자들과 부역자들이 매음굴에 갇혀 남한과 미국 군인들에게 ‘밤낮없이’ 강간을 당했다. 이 보고서들이 틀렸을 수도 있으나 북한 관리들이 상부에 보고하는 내부 기밀문서에 거짓말을 할 이유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103p)”
“미군 고문단은 국군이 학살을 계속한다면 북한 전역이 남한 당국의 출입통제구역으로 설정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103p)”
“미국은 남한당국이 조사나 재판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이와 여자를 포함한 적들을 죽이고 있는 동안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런 행위를 승인하는 허가서까지 발행했다(104p)”
“평양을 재탈환한 두 북한 소식통들은 평양에서만 1만5천 명이 학살됐다고 보고했다.(105p)”
“1950년에서 51년으로 넘어가는 혹독한 겨울, 그들 가운데 5만 명 내지 9만 명 정도는 남한 통제 하에 있으면서 구타·고문·유기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106p)”
“물론 북한사람들도 전쟁 중에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그들이 공산주의자임을 감안할 때 그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바로 남한의 행위가 북한보다 더 심했고 미국은 동맹국이 저지른 범죄를 50년 넘게 숨겨왔다는 사실이다(106p)”
<加害者와 被害者 뒤바꾼 섬뜩한 날조>
브루스커밍스는 6·25에 대해 미군의 학살 전쟁과 국군의 야만적 보복이 뒤엉켜 저질러진 “킬링필드”로 서술한다. 그러나 이는 加害者(가해자)와 被害者(피해자)를 뒤바꾼 섬뜩한 왜곡이다.
실제 6·25사변 중 민간인 학살의 주체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과 ‘바닥빨갱이’로 불리는 남한 좌익들이었다. 북한군이 서울에 들어오자 좌익들이 이른바 人民裁判(인민재판)을 통해 경찰과 군인 가족을 잡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증오를 흉기로 만들어 놓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6.25사변 중 북한군과 좌익들이 학살한 민간인은 총 12만2,799명(「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에 이른다. 이 수치는 남경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etto)의 유태인 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던 바닥빨갱이들은 대개 총이 없었으므로 죽창이나 도끼, 쇠스랑, 괭이, 곤봉 등으로 무장했고 곡괭이와 삽으로 우익인사들을 찔러 죽이는 원시적 학살행위를 자행했다. 전쟁사학자들은 6.25사변 당시 ‘12만 양민학살’이 세계적 학살로 기록되는 이유는 피해자 수는 물론 그 殘酷性(잔혹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바닥빨갱이에 대한 ‘12만 양민학살’은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 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1950년 6월26일)”, ▲“반동분자, 비협력분자, 도피분자를 적발하여 무자비하게 숙청하라(1950년 6·25 남침 직후 서울 시내 뿌려진 김일성의 호소문)”, ▲“악질반동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은 극히 정당한 일입니다(1950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 김일성 보고)”는 발언에 나오듯 김일성이 주도했다.
開戰(개전) 초기 남한 정부 역시 좌익에서 전향한 보도연맹원에 대한 처형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인원과 행태는 좌익의 ‘양민학살’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左(좌)편향된 역사해석으로 물의를 빚어 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委, 위원장 안병욱) 조차 2009년 11월26일 “6.25 직후 국민보도연맹원 등 4,934명이 국가기관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었다. 진실화해委는 이날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중순경까지 국민보도연맹원 등 요시찰인들이 육군본부 정보국 CIC(방첩단)와 경찰, 헌병, 해군 정보참모실, 공군정보처 소속 군인과 우익청년단원에 의해 소집-연행-구금된 후 집단 학살됐다”며 “확인된 희생자는 4,934명”이라고 발표했었다.
12만 명 對(대) 4,934명. 이것이 6·25 당시 이른바 좌익과 우익에 의해 죽은 민간인 데이터 비교이다. 6·25전쟁 중 左右(좌우) 사이 報復(보복)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9·28 서울 수복 이전은 좌익의 인민재판이 전부였고 9·28 이후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한 구속·재판이라는 公的(공적) 처벌을 통해 이뤄졌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브루스커밍스가 말하는 남한당국의 “학살”, “총살”, “처형”, “살해”, “몰살”, “중세 마녀사냥”, “킬링필드”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강간”과 “노예화” 는 사실이 아니다.
양동안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9·28 서울 수복 이후 소위 우익들에 의한 좌익 보복 역시 국회에서 私刑(사형)금지법령이 만들어지면서 금지됐을 뿐 아니라 살해당한 우익들의 가족들 역시 부녀자와 어린이들이어서 보복을 하기도 어려웠다. 人民裁判(인민재판)으로 양민학살을 주도한 좌익들은 이후 재판을 통해 수감돼 처벌을 받았다”며 이른바 군인·경찰·우익에 의한 양민학살의 허무맹랑함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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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6·25 사변 당시 김일성의 발언 및 지시>
■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 도피분자, 요언(妖言) 전파 분자와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 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
■ 『반동분자, 비협력분자, 도피분자를 적발하여 무자비하게 숙청하라』 (1950년 6.25 남침 직후 서울 시내에 뿌려진 김일성의 호소문,출처: 『꽃피는 산하-6.25의 흔적을 찾아서』)
■ 『국군장교와 판검사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고, 면장, 동장, 반장 등은 인민재판에 부친다』(1950년 6월 30일 포고문, 출처: 『정치범은 자수하라』와 『반동분자 처리지침』)
■ 『숨어 있는 반동도배들이 자수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반동분자들과 투쟁하지 않는 경향이 당일꾼들에게 만연되고 있는 현상은 극렬히 비판해야 한다.』 (1951년 1월 21일, 『적에게 일시 강점당하였던 지역에서의 반동단체에 가입하였던 자들을 처리함에 관하여』라는 군사위원회의 결정 3개항을 설명하면서)
■ 『악질반동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은 극히 정당한 일입니다』 (1950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에서 진술한 김일성 동지의 보고/『한반도 분단의 재인식』-신일철 著)
<계속. ‘김정일 코드’의 6·25남침 옹호 등에 대한 기사가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