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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도 들기 전에 지쳤어요. 일 좀 빨리 하고 싶어요”
전체 공정 0.45%, 계획 7.76% 대비 목표달성 5.76%.
4대강 중에서 가장 진척이 늦은 낙동강 8공구 둔치 정비사업 현장 관계자는 쓴웃음부터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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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사업대행 협약을 해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8일 김해 상동면 매리~감노리 일대 낙동강 8공구 현장을 찾았다. 대구-부산간 고속도로를 나와 강변을 따라 8공구 가는 길 매리취수장이 있다. 경남 김해시에 속한 취수장 건너편은 경남 양산시이다. 양쪽 강안 밖의 산은 늦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사업예정지인 둔치는 얼마전까지 복분자, 감자 등을 재배하던 비닐하우스 단지다. 곳곳엔 수확을 끝낸 비닐 하우스는 철거됐거나, 뼈대만 남은 일부도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배추가 자라고 있는 몇 동만이 과거 이곳이 비닐하우스천지였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8공구는 지난 5월 경남도에서 조달청을 통해 발주한 공구다. 농작물 수확을 기다리느라 사업이 속도가 늦어졌고, 도지사가 바뀐뒤 사업관련 전망도 불투명한 와중에 공사 준비마저 시원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 10월엔 폐기물 매립토가 발견돼 사실상 공사에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8공구의 사업은 주로 하천부지를 정비하는 사업이다. 매리취수장 하류로부터 상류까지 4.43km구간이 사업구역이고 취수장 주변 침전물 등 수중준설도 380만㎥만큼 계획돼 있다.
지역신문엔 경남도 반발 소식 가득...현장은 한숨
기자가 방문한날 현대산업개발 최연준 현장소장은 정부의 경남도에 대한 사업대행협약해지에 경남도가 반발한다는 등의 관련 기사가 가득 실린 지역 신문을 펼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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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지역신문엔 온통 경남 낙동강 사태 뉴스로 도배됐어요. 정부가 회수한다하여 어떻게든 결판나길 바랐는데 다시 공사가 어찌될지 걱정이에요. 빨리 결론이 나 정상적으로 공사가 진행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한숨을 지었다.
최 소장은 그러면서 “지금 8공구는 삽도 못 들어보고 지쳤어요. 일을 해도 내년4월 예정인 공기 맞추기가 벅찰텐데...”라며 “지난 몇개월 변한 것은 풀만 자란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 공구는 지금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 7월~10월 거의 손도 못댔다. 공사도 늦게 발주돼 갈 길이 바쁜데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김두관 도지사가 당선된 이후 사업중단 우려로 조마조마하더니, 농작물 수확 등을 기다리느라 시간은 흘러갔다. 설상가상으로 10월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던 중 둔치 표토 아래 묻혀있는 ‘폐기물’이 발견돼 일은 더 꼬이기 시작했고 폐기물 성분 분석 발표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하는 딱한 상황이 됐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가려면 12월 3일이 넘어야 할 것 같다. 현장에선 매립폐기물의 종류와 독성여부를 가리는 결과가 12월 3일쯤 발표될 것 같다는 소식이 알려져 그나마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어떻게든 빨리 결론났으면...관계자 극도로 말조심
현장관계자는 기본공사 준비에 어떤 불편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지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현재 정부가 사업을 회수해갔다고 발표는 했지만 경남도가 반발하는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어떻게든 빨리 결론이 나서 마음 놓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이곳 폐기물이 발견됐다는 둔치를 둘러보았다.
안내를 맡은 협력업체인 대양토건 오동섭 소장은 “이곳은 토목공사가 없고 수중 준설, 둔치정비다. 비닐하우스가 있던 둔치를 200m폭으로 긁어낸뒤 강폭을 확대하고, 정비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현장엔 막바지 비닐하우스 철거작업을 하는 차량만 간혹 오갔고 농로는 롤러코스터를 탄듯 험했다.
비닐하우스가 헐린 자리 근처엔 아직 뜯지도 않은 비료포대가 쌓여있었다. 일부 포대는 찢어져 유기질비료가 흘러내렸다. 과거 비닐하우스단지에서도 비만 오면 이런 거름이 강물로 흘러들어갔을 것을 어렵지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비닐쓰레기와 스틸로폼무더기도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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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토엔 조개껍데기 가득...건축폐기물 아닌듯
농로를 따라 수백m를 이동하자 가로 세로 5m정도에 깊이 3m정도 크기로 포탄 맞은 듯한 구덩이가 보였고, 옆엔 여기서 퍼낸 어두운 색깔의 흙무더기가 쌓여있다. 구덩이엔 황토색 표토층 밑으로 거무튀튀한 뻘층 단면이 선명했다.
자세히 보니 소라, 갯고동, 홍합, 굴 등 갖은 조개껍데기가 가득했다.
이곳이 불법 매립된 토양이 있는 곳이다. 준설예정지를 표시한 붉은 깃발 사이로 하류방향으로 이동하니 다시 깊이 5m 넓이 10m 폭 10m 정도로 단정하게 깎인 사각형 구덩이가 나왔다. 문화재 발굴 조사 현장모습이다. 역시 맨아래 황토, 이질적인 탁한 흙, 다시 맑은 표토가 층층이 쌓인 모습이다.
어떤 구덩이에선 운동화창, 비닐 등 생활쓰레기도 섞여 있었다.
대양토건 오동섭 소장은 이런 구덩이가 59개나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매체 보도에서 유독성 시멘트 건축폐기물이라고도 알려졌지만 몇군데 구덩이에서 눈으로 확인한 ‘이질적인 토양’은 바닷가 개흙으로 보였다.뻘 흙덩이 맛 보았으나 짠맛은 못느껴
한곳에 쏟아져 내린 단단한 회색덩어리가 꼭 시멘트 굳은 것 같아 발로 밟으니 부서지면서 조개껍질이 나타났다. 흙을 가루내어 맛을 보았다. 조개껍질은 있었지만 짠맛이 뚜렷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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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소장은 “지금 우선 묻혀있는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 또 유독성인지 아닌지도 결론이 안 나서 공사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무엇보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라 걱정이다. 공사가 늦어지면서 협력 업체는 벌써 손해를 입기 시작했다. 정부가 사업을 회수하건, 경남도가 하건 조달청으로부터 발주받은 것은 똑같은데 어떻게든 우리는 빨리 공사가 시작되기만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오 소장은 또 공사가 시작돼도 걱정이라고 했다. “매립토 성격이 어떻건 규정대로 처리는 당연한데, 전국에서 우리 공구만 쳐다볼테고,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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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 폐기물 매립과 4대강 사업을 연결짓는 듯한 주장을 하는 데 대해서 현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 관계자는 “매립토는 문화재발굴 기초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수년에 걸쳐 언제부터 묻어왔던 것인데 오히려 4대강사업이 아니었으면 영원이 모르고 갈 뻔 했다. 4대강이 원인이라고 연결할 일은 결코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관계자들도 찾아와 ‘4대강 사업으로 이번기회에 발견돼 다행이다. 모두 파내고 가면 된다’고 격려해주더라”고 전했다.
정부, 47공구 발주 조달청에 요청
한편 정부는 경남도가 늦어진 원인이 문화재 조사, 폐기물 처리 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 “일부 사실이지만 일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노력할 만큼 했다.”며 사업권회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4대강 추진본부 관계자도 “폐기물 발견은 최근 일이고 것이고, 보상 문제등도 사업주체 경남도의 책임이다. 이런 과정이 늦어져서 공정이 늦어졌지 사업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경남도가 주장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경남도가 맡고 있던 13개 대행사업구간의 대행협약을 취소한 뒤 18일엔 경남도가 미뤄왔던 낙동강 47공구의 사업 발주를 조달청에 요청했다.
한편 강병기 경남도 정무부지사는 21일 국회에서 손학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광역도지사정책협의회에서 “경남도는 고의적으로 사업을 지연시키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다.이에 앞서 한나라당 경남도당은 19일 성명을 내고 "야당 지도부가 대거 경남으로 몰려와 도민을 현혹시키고 여론을 분열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며 "야당은 산적한 국정현안과 예산국회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국민 선동에만 골몰해 횡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야당은 경남도민을 정치적 볼모로 잡지 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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