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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고 김동식 목사가 강제 납북된지 11년, 북한 감옥에서 순교한지 10주기를 맞는다.
기독교사회책임 김동식목사유해송환운동본부 등 4개 단체는 12일 북한에 강제 억류된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조속한 송환 및 북한의 반인도범죄와 납치범죄를 규탄하는 국민대회를 1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가졌다.
이들 단체는 "북한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체계적으로 외국인 납치를 추진해왔고 수백명의 한국어부와 탈북한국인, 선교사들을 강제 납북했다"며 "대표적으로 강제 납북된 고 김동식 목사는 2000년 1월 16일 중국 연길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중 북한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후 김 목사는 2001년 북한 감옥에서 사상전향을 강요받다 고문과 영양실조로 순교했다"고 상기했다.
단체들은 이어 "정부는 납북자 송환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며 "고 김동식 목사의 유해를 즉각 송환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고 김동식 목사는 중고교 시절부터 교회학교 연합 활동에 앞장섰던 ‘예비 목회자’였다.
부산 고려신학교를 다니며 SFC 경남지역 위원장을 지냈고, 졸업 후 목회활동을 펼치다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얻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작은자교회를 개척해 장애인 자활터 ‘물댄동산’과 장애인선교예술단을 조직, 운영하는 등 장애인 선교를 활발히 펼쳐 나갔다.
김 목사는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 때 중국을 방문, 중국 장애인들을 돕는 데 헌신하던 중 빈곤에 허덕이는 북한의 참상을 접한다. 이후 김 목사는 탈북자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탈북 고아들을 위한 ‘사랑의 집’을 운영, 나진·선봉지역 의류보내기와 함흥·신의주 일대 고아원을 지원했다.
특히 납치 전해인 1999년에는 탈북자 13명의 한국 입국을 지원하는 등 탈북자 돕기에 발 벗고 나서며 헌신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런 김 목사를 북한 정부는 지난 2000년 1월 16일 납치했다.
납북 후 김 목사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전향하고 탈북자를 도운 과거를 회개하도록 온갖 위협과 회유,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80kg이던 몸무게가 35kg으로 줄었고, 고문 후유증에 영양실조와 직장암 등으로 이듬해인 2001년 2월 중순경 평양 초대소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의 묘지는 북한 평양 근교 상원리 소재 조선인민군 91훈련소 위수구역 내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