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이 동네북이다.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투숙한 호텔에 들어가 정보를 빼내려다 발각된 사람들이 국정원 소속이라는 의혹 때문이다. 어떻게 비밀요원들이 CCTV에 다 찍히냐, 좀도둑보다 못하다, 3류소설이다는 혹평이 줄을 잇는다. 동시에 이스라엘 모사드는 완벽한데 우리는 왜 이토록 어설프냐는 비판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의 기억엔 이스라엘의 모사드도 그렇게 완벽하지는 않았다. 1년전 일이다. 두바이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핵심 간부 마흐무드 알마브후흐가 암살당했다. 세계 언론은 곧장 모사드를 암살 배후로 지목했다. 여러 가지 관련 증거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우선 두바이 경찰이 공개한 공항과 호텔 폐쇄회로(CC)TV엔 암살단의 행적이 고스란히 포착돼 있었다. 또 암살단 숫자가 11명이며 그들이 위조한 영국, 아일랜드 국적의 여권도 확인되었다. 두바이 경찰청장은 모사드가 암살에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로 용의자들 간의 전화통화 기록도 있다고 밝혔다. 용의자들의 신용카드 사용기록도 확인되었다.

    이 모사드 사건은 이번 국정원 의혹 사건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국제적 파장도 컸다. 사건이 일어난 3일 뒤 유럽연합(EU) 27개국 외무장관들은 이번 사건을 강력히 규탄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직접 등장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규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국내 정치세력과 언론들의 태도는 비교적 냉정했다. 국제적 파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이스라엘 몇몇 일간지와 야당은 모사드 국장의 사임을 요구하기는 했다. 그러나 암살이라는 이 엄청난 사건도 이스라엘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판단 하에 모사드 국장의 사임을 끝까지 밀고 가지는 않았다. 적당한 시점에 이 사건은 이스라엘 국내 여론에서 사라졌다.

    이번 국정원 의혹 사건은 모사드 사건에 비하면 정말 조족지혈이다. 피해 국가인 인도네시아도 자신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국언론의 보도를 선정주의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샤프리 삼소딘 인도네시아 국방부 차관은 21일 보고르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정보 요원들이 (방한 중인) 특사단 숙소를 침입했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는 선정주의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고 현지 영자지인 자카르타포스트(JP) 인터넷판이 전했다. 또 삼소딘 차관은 “특사단이 들고 간 자료 중에는 고급 군사기밀자료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사드가 어떤 실수를 했건 가능한 감쌀려고 하는 이스라엘 정치권과 언론을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약간의 국수주의적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사드가 일으킨 국제적 파장과 갈등에 비교하면 이번 국정원 사건은 가시적인 외교적 갈등을 전혀 일으키지 않고 아주 잘 수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일으키는 어떤 작은 실수도 무조건 용납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문책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마냐사냥은 아닐까?

    물론 정보기관은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때문에 정보기관 요원들은 언제든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되는 모사드 사례에서 보듯이 어떤 공작이던 성공할수도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실패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공작이 실패했다고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듯 법정에 공개적으로 세우고 이를 문책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처자식 딸린 가장의 몸으로 국익을 위해 목숨걸고 싸울 것인가? 실수가 있다고 그 직원들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면 과연 어느 능력있는 젊은이가 정보기관에 취직하려고 하겠는가?

    정보기관 활동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심판하지 않고 명예를 지켜준다는 묵계가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목숨까지 걸고 적지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실수에 대한 엄격한 평가와 필요하다면 징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국정원 의혹 사건에 대해 우리 국민들과 언론이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좀 더 책임있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