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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청(청장 노대래. 이하 방사청)은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육군의 노후화한 공격헬기를 바꾸기 위해 대형공격헬기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공기부양정과 기갑전력을 타격할 전력이라고 한다. 이에 군 안팎에서는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방사청이 밝힌 도입예산 ‘1조8,000억 원’을 놓고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아파치 헬기 도입 환영, 그런데 예산이….
방사청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공격헬기 사업은 2008년 9월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공격헬기 획득방안 분석’ 연구를 시작해 2010년 12월 사업타당성 조사 연구까지 모두 끝낸 상태다. 오는 5월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심의하고 2012년 10월 기종 결정 및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맞춰 방사청이 1조8,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AH-64D 블록1 36대를 중고로 도입한 뒤 이를 국내에서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국회 국방위 위원들이 “예산을 더 늘려 줄 테니 최신형 버전으로 구입하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최근 파워팩 논란이 불거진 XK-2 흑표 전차 도입 대수를 300대에서 200대로 줄이고(대당 약 80억 원), K-21 도입 시기를 연기해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노대래 방사청장은 이 계획을 이미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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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H-64 헬기 도입 소식에 군 관계자는 물론 민간 군사연구가 등은 ‘다행’이라며 기뻐하고 있다. 그런데 예산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현재 AH-64D의 최신 버전 판매가격을 고려하면 1조8,000억 원으로는 20대를 구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고기체 36대 도입 vs. 최신버전 20대 도입
AH-64 아파치 헬기 도입 사업은 20년도 더 된 육군의 숙원사업이다. 그동안 군 수뇌부와 정치권은 ‘가격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계획을 계속 미뤘다. 하지만 속내는 ‘이제 우리 군의 장비가 북한보다 질적으로 우세한데 굳이 대형 공격헬기가 필요한가’라는 것이었다. 이런 ‘자만’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로 사라졌다. 전쟁은 장비의 ‘스펙’으로 하는 게 아니라 ‘투지’로 한다는 걸 모두가 깨달았다.
육군은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게 돼 기뻐했다. 하지만 20년 사이 아파치 헬기는 ‘과거의 아파치’가 아니었다. 걸프전으로 데뷔한 뒤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전쟁으로 위력이 검증되면서 몸값도 크게 높아진 것이다. 게다가 ‘롱보우’로 업그레이드까지 했다. 덕분에 ‘몸값’은 20년 전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실제 90년대까지 4,000만 달러 내외(AH-64A)던 가격은 최근 미국이 대만에 팔 때는 8,000만 달러(한화 약 960억 원, AH-64D 블록3)로 뛰었다. 인도에 제시한 가격도 22대 구매 시 14억 달러(대당 6,360만 달러, 한화 약 760억 원)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구매 가격은 대당 1억 달러를 훌쩍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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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방사청은 무엇을 근거로 1조8,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걸까. 당초 우리 군은 AH-64D를 구입하고 싶어도 그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미군이 AH-64A 헬기 ‘업그레이드’를 추진하면서 ‘중고 AH-64D’를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은 현대화 계획에 따라 AH-64A 헬기를 AH-64D 롱보우 아파치 헬기로 재제작(Rebuild)한 바 있다. 이때 821대의 AH-64A 중 284대가 AH-64D 롱보우 아파치 블럭1형으로 바뀌었다. 우리 군이 도입하려는 중고 AH-64D 블록 1이 바로 이렇게 제작된 헬기다.
미국은 우리 측에 AH-64D 블록 1형과 업그레이드 키트(대당 약 270만 달러)도 함께 주문하면 ‘리셋’을 통해 블록2형으로 업그레이드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리셋’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모든 헬기의 무장과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프로그램으로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장치와 부품이 새 것으로 교체된다. 우리 군 헬기에는 없는 전천후 적외선 센서 ‘M-TADS’도 신형으로 장착된다.
중고라서 안 된다? No! 우리 형편에 맞는 기종
즉 현재 언론을 통해 ‘중고 아파치 헬기’로 알려진 AH-64D 블록1 중고 기체는 엄밀히 말해 ‘중고’라고 보기 어려운 우수한 기종이다. 게다가 가격 조건도 좋다. 알려진 바로는 미국이 한국 국방부에 제안한 AH-64D 블록1 가격은 2012년 기준으로 1,618만 달러이며 이 기체에는 새 엔진과 새 레이더, 신형 M-TADS가 장착된다. 블럭2로 ‘업그레이드’하는 키트 가격은 대당 269만 달러다. 이 정도면 1대 당 약 1,900만 달러(한화 약 228억 원)가 소요되므로 1조8,000억 원으로 36대 이상을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
반면 국회 국방위 말대로 ‘신상’을 구매할 경우 가격은 대당 최소 6,400만 달러, 평균 8,000만 달러다. 우리 군에 필요한 대수를 채우려면 최소 4조6,000억 원, 평균 5조8,000억 원까지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방예산으로는 이런 ‘신상가격’을 치를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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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시기 문제도 있다. 미군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화되자 우리나라에 주둔 중이던 AH-64D 헬기 72대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남은 AH-64D도 곧 철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연평도 포격도발을 겪은 우리 군이 서해도서에 500MD 경(輕)공격헬기, KA-1 경공격기 등 다양한 대응전력을 배치했다고 하나 이 AH-64D가 빠진 자리를 메우기는 어렵다.
무기거래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인도받으려면 해외군사판매(FMS) 관련 서류 제출 후 3년 이상 걸린다. 또한 2014년에는 대당 판매가가 1,708만 달러 이상으로 높아진다. 이번에 AH-64D 도입 결정을 하지 않으면 몇 년 뒤에나 기회가 온다.
14일 국회 국방위 소속 某의원은 ‘방사청이 AH-64D 헬기 가격을 속였다’며 흥분했던 모양이다. 일부 의원은 '왜 중고 헬기를 도입하냐'고 난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난 13일 방사청이 보고한 예산 규모는 AH-64D 헬기에 대해 안다면, 연평도 도발 사건을 겪은 군과 정부가 미군이 빠진 ‘공백’을 최대한 빨리 저렴하게 메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방사청이 '불량무기' 때와는 달리 이번 대형 공격헬기 도입계획을 세울 때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