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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인 더 헤이그(Dok-do in the Hague)’라는 소설이 있다. 필자는 하지환 씨. 사실 그는 대구지방법원 가정지원의 정재민(34) 판사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독도와 관련된 국제법과 역사적 배경지식이 풍부하게 녹아 있어 외교부에서도 주목했던 책이다. 정재민 판사는 오는 7월부터 외교부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정재민 판사는 이메일을 통해 “평소 독도에 관심이 있었는데, 현직 판사가 독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논란이 될 여지가 없지 않아 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라고 밝혔다.
정재민 판사는 한일 간의 독도 갈등을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통해 냉정하게 보고 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국민들이 독도 문제에 대해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니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알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바로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흔히들 우리가 당연히 독도를 실효적지배하고 있다고 하는데, 제3국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에 대해서는 심히 부정적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니 아찔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건가.
“'실효적 지배'라는 용어는 국제법적 용어로, 물리적 점유뿐만이 아니라 '평화성' 즉, 평화적으로 점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 일본이 정기적으로 독도발언을 하는 것도 바로 이 '평화성' 요건을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양국 정부가 독도를 놓고 공식적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있는 현 상황을 제3국이 봤을 때 과연 평화성이 인정될지는 의문입니다.”
정재민 판사는 국내 정치인이나 몇몇 인기인들이 ‘독도에 건물을 짓자’거나 ‘군대를 주둔시키자’고 하는 주장의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실효적 지배를 구성하는) '평화성' 요건을 깨뜨리려고 공식 발언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이 '평화성'을 지킬 생각은 않고 도리어 일부 정치인이나 정부 부처가 독도에 건물을 더 짓자는 식의 '물리적 지배'만 강화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행동은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평화성'을 깨뜨려 실효적 지배를 위태롭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국제법 요건에 맞추어, ‘법률적인 공격’을 하는 것인데, 우리는 감정적이고 정치적으로 반응해 법률적으로는 매우 불리한 행동을 합니다.”
정재민 판사는 사례를 들었다. 예를 들어 옆집과 땅을 놓고 싸움이 붙었을 때 상대방은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정기적으로 내용증명만 보내고 있다. 반면 우리 쪽은 내용증명 받을 때마다 흥분해 옆집을 찾아가 고함을 치고 땅에 말뚝을 박고 소란만 피우지 변호사를 통한 법적 조치는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꼴이라고. 결국 법정에서는 ‘소란 피운 사람’만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본다는 말이었다.
그는 “실효적 지배는 있느냐, 없느냐의 개념이지, 강하냐, 약하냐의 개념이 아닙니다. 또한 실효적 지배는 인정되는지 여부보다 얼마나 계속적으로 인정받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평화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본의 도발에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일관성을 가지고 참고 또 참으면서 냉정하게 '법률적인 대처'를 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독도 갈등과 유사한 해외사례도 있을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2008년 ‘페드라브랑카’라는 섬을 두고, 소송까지 했는데 싱가포르가 승소(일부는 패소)한 바 있습니다. 독도 분쟁과 비슷해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그밖에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포클랜드 분쟁 등이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정재민 판사가 내놓은 답은 ‘법률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흔히들 우리 국민들이 모두 독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세계 사람들이 대부분 한국 주장을 인정하면 일본은 부끄러워서 더 이상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인 것 같은데, 애국심은 높이 사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궁극적으로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재민 판사는 ‘부동산 소송’의 사례와 서방세계의 ‘계약 중심 사고방식’으로 풀이해줬다.
“제가 부동산 소유권 재판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당사자들이 몇 년 동안 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그 사람들이 법정에 가지 않고 평소에 얼굴도 모르는 우리 국민 전체를 상대로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서울역 앞에서 설명하고, 신문에 광고하면, 과연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이 그 사람 편을 들어줄까요? 아마 그 두꺼운 기록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을 겁니다. 단지 ‘그냥 두 사람이 싸우고 있구나, 그럼 법원에서 판결 받으면 되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도 문제는 법률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고 관련 서류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것을 들고 세계 사람들을 설득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독도 문제에 대해 치밀하게 대응하지 않고, 세계에 홍보만 하다보면, 계약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서양인들은 오히려 법정에 가지 않는 우리나라를 의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송사가 생기면 흥분하지 말고 유능한 변호사를 찾아 맡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소송이 생겼을 때는 유능한 변호사를 찾아서 맡기는 것이 최고입니다. 변호사도 없이 본인이 흥분해서 일일이 상대방에게 대꾸하고, 공격하고, 제3자를 찾아가 호소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는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불리하게 만듭니다. 화가 날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해소를 하면서 참고 또 참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도 문제를 헤이그의 국제법정으로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 묻자 그는 “헤이그에서 어떤 판결 나올지는 대답하기 어렵다. 제 소설로 대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