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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알 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이 美특수부대에 사살됐다. 미국민은 환호성을 질렀고, 전 세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가는 급락하고 美증시는 상승했다.
한편 미국의 ‘강력한 응징’에 ‘배알’이 꼴리는 자들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미군은 왜 비무장인 빈 라덴을 사살했나’ ‘9.11테러라는 자작극을 꾸몄던 미국이 이제 빈 라덴이 쓸모가 없어지니까 죽였다’는 등의 ‘헛소리’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이중 일부 언론사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이 빈 라덴을 죽인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반미' 건수 잡은 매체들, 일제히 '빈 라덴 사살은 국제법 위반'
<한겨레신문>은 6일자 사설에서 '빈라덴은 엄밀히 말해 9·11 테러를 사주했다는 혐의 자체도 확정된 상태가 아닌 만큼 재판을 통해 유죄를 입증하고 이에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게 더욱 필요했다'며 '그런데 미국은 이런 모든 절차를 건너뛰어 현장에서 곧바로 ‘즉결처형’ 해버렸다.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저지른 암살, 초법적인 사형집행 등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은 이에 더해 '체포하려는 최소한의 시도도 없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확인사살까지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그(빈 라덴)가 비무장 상태였고 무장 호위병도 없었다는 점에서 미군이 자위권을 발동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미국은 의혹을 풀어줄 가장 중요한 증거인 빈라덴의 주검마저 서둘러 수장해버렸다. 미국이 파키스탄 정부에 통보조차 하지 않고 작전에 들어간 것 역시 이번 작전의 비합법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은 또한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이는(빈 라덴 사살은) 문명이기를 포기한 집단 알카에다와 문명을 가장한 또다른 야만 집단의 문제”라며 “미국은 자신들이 테러의 피해자이기에 정의를 복원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전에 미국이 인류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을 왜곡하면서 외교 정책을 펴온 테러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하다는 점은 보지 않는다”는 주장을 인용해 마치 '미국'과 '알 카에다'가 동격인 양 표현했다.
'아덴만의 여명작전' 엠바고 파기로 비난받았던 <미디어 오늘>은 '그(오바마)가 말한 정의는 미국 특공대에 의한 비무장 상태에서의 빈 라덴의 현장 살해와 비정상적 방식의 시신 처리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미국은 빈 라덴을 체포가 아닌 현장 살해를 목적으로 한 작전을 전개하고 그의 시신을 바다 한가운데다 수장시킨 것'이라는 식으로 '팩트'와 '주장'을 적절히 섞어 사용했다.
이들 외에도 좌파 매체들은 독일, 파키스탄, 미국 내 좌파진영의 주장을 인용해 '빈 라덴의 사살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한국인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빈 라덴, 법대로 심판하자’에 담긴,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
빈 라덴 사살을 논하기 전에 먼저 9.11테러에 대해 알아보자. 2001년 9월 11일(현지시각) 美뉴욕과 워싱턴 등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 테러 때문에 3021명이 죽었다. 여기에는 구조활동을 벌이다 숨진 343명의 소방대원도 포함된다.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언론을 포함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이때부터 세계 각국에서 테러들이 빈발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언론의 관심’이 테러로 돌려지면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테러는 예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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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빈 라덴이 리더로 있던 알 카에다는 서방 국가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테러를 저지르고 있었다. 9.11 테러 이후에 ‘지지세력’이 증가하면서 테러의 규모가 더 커지자 눈에 더 띠게 된 것일 뿐이다.
알 카에다의 테러는 미국만 대상으로 한 게 아니었다. 1998년 아프리카 케냐 주재 미국대사관 폭탄테러를 시작으로 영국, 스페인, 인도 등의 소위 ‘이교도 국가’는 물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시리아, 예맨, 필리핀 남부 지역 등 이슬람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 혹은 지역도 그 대상에 포함됐다. 이중 9.11테러는 미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났다는 것 외에도 피해자의 국적이 30개 국을 넘는다는 점에서 ‘세계의 적’이 돼버린 사건이다.
이런 알 카에다의 리더 빈 라덴을 미국이 ‘혼자 마음대로 사살’ 했다는 것을 놓고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나라들, 혹은 지도자들은 '법치주의'에 대한 절차 문제와 자신들에게 ‘단죄의 기회’가 돌아오지 않게 만든 미국의 행동을 비판한 것일 뿐 '빈 라덴이 무죄'라고 말한 적은 없다. 아니 美특수부대의 사살을 문제삼은 이들은 오히려 빈 라덴을 재판정에 세워 그가 '순교'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미국 외교전문가인 존 페퍼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 소장은 '빈 라덴을 사살하지 말고 법정에 세웠다면 순교자 이미지를 없애 그에게 패배를 안겨줬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제법 위반’ 운운하는 '중동 전문가'나 언론들은 이런 서방국가들의 속내를 이해하기 보다는 서방국가들이 미국의 ‘빈 라덴 사살’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빈 라덴 사살에 ‘국제법’ 들이대는 자들이 모르는 것
‘빈라덴 사살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알 카에다가 한국에 와서 테러를 저지르려다 실패한 사례는 아는가. 9.11 테러를 주도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일명 KSM)는 1995년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납치해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하려던, 일명 ‘보진카 작전(Op Bojinka. 아랍 속어로 ’폭발‘을 의미)’을 시도하려 했던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9.11테러 당시 비행기를 몰고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하는 계획을 세운 KSM은 1995년 1월 21일과 22일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美국적 여객기 4대를 포함 국제선 여객기 12대를 납치해 태평양 상공에서 동시에 폭파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만약 그의 '작전'이 성공했다면 사망자는 4000명(그 중 한국인이 절반 이상)이 넘었으리라는 게 정보기관들의 평가다.
하지만 이때 테러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각종 장비들을 보관하고 있던 필리핀 마닐라의 알 카에다 조직원 아파트가 폭발하는 바람에 그의 '작전'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 같은 사실은 9.11테러 이후에야 밝혀졌다. KSM은 한국에서의 테러가 실패한 이후 9.11테러를 기획했다고 한다. KSM은 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뒤 현재 美당국에 수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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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에다가 한국을 목표로 했던 건 이뿐만이 아니다. 1998년에도 한국에 위장취업해 주한미군 기지에 테러를 가하려다 불법체류 혐의로 쫓겨난 적도 있다. 이런 알 카에다가 만약 한국에서 테러를 했어도 ‘국제법’ 운운하며 빈 라덴 사살을 문제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 한국 상선이 돈을 주고 풀려날 때는 ‘글로벌 호구’ 운운하며 정부를 비난하는 건 더더욱 이해가 되질 않는다.
9.11테러에 희생된 한국인 복수, 미군이 대신해준 게 그렇게 열 받나?
‘빈 라덴 사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에게 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9.11테러 당시 한국인이 몇 명 희생되었는지는 혹시 기억하는가? 그들의 이름을 단 한 명이라도 기억하고 있는가? 예맨 관광 중 알 카에다의 폭탄 테러로 숨진 4명의 이름은 기억하나?
9.11 테러로 한국인 18명이 숨졌다. 이들 중에는 교민도 있고 한국인도 있었다. 대부분이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한을 풀었다는 주장은 어느 언론도 말하지 않는다. 예맨 테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말도 없다. 대신 좌파 매체들의 ‘빈 라덴 사살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만 포털을 장식하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사고'일까.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보면 마치 2002년 장갑차 사고로 숨진 여중생 이름은 알면서도 서해교전에서 북한의 도발 때문에 숨진 우리 해군 장병 6명의 이름은 기억조차 못해 망신당했던 盧정권 고위층들이 떠오른다.
미국이 싫어 알 카에다 편든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그럴 수도 있다 치자. 하지만 같은 국민이 테러에 희생되었을 때 그 희생자의 편에 서서 판단하는 게 ‘정상적인 시각’ 아닐까?
지금 ‘빈 라덴 사살’을 놓고 ‘국제법’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테러범을 사살했던 엔테베 작전이나 GSG-9, SAS의 이란대사관 작전, ‘아킬레 라우로호’ 구출작전도, 심지어 우리 해군의 ‘아덴만의 여명작전’도 모두 ‘국제법 위반’인가.
국제법은 강제성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때로는 현학적이고 무력한 국제법보다 ‘힘’을 토대로 한 강력하고 철저한 응징이 정의를 실현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게 현실이다. 현실을 무시한 채 테러범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언젠가 그 '자비'가 당신네들을 집어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