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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라는 섬은 본시 계림(신라의 별칭으로 경상도를 가리킨다)에 속한 우리나라 땅이다. 이것은 문서에도 기록된 명백한 사실이다.”<조선 세종실록>
지난 11일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가 주최한 제3차 이승만포럼에서 김상훈 대령이 “대마도를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고 주장한데 이어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자료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대마도는 총 면적이 울릉도의 약 10배에 이르는 708㎢이다. 부산에서 49.5㎞ 떨어졌고 후코오카와의 거리는 138㎞에 이른다. 위치는 북위34도42분에서 북위 34도5분 사이이며 경도는 동경 129도30분에서 동경 129도10분에 자리한다.
한단고기 고구려본기는 “구주(규슈)와 대마도는 삼한이 나누어 다스리던 곳으로 본래 왜인들이 세거(世居)하던 곳이 아니라”하고 “대마도는 삼가라로 나뉘었으니 좌호가라는 신라에 속하고 인위가라는 고구려에, 계지가라는 백제에 속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삼국시대 초기에는 대마도를 진도(津島)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또 고려 공민왕 때는 대마도주는 고려로부터 지방 무관직인 만호(萬戶) 벼슬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 초기 신숙주 등 17명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남긴 ‘해행총재’(海行摠載)에는 ‘삼국시대에 이미 일본에 사는 왜인들은 대마도를 외국으로 보았고, 대마도 사람들은 스스로 반(半) 조선인으로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또 조선 세종실록에는 “대마도라는 섬은 본시 계림(신라의 별칭으로 경상도를 가리킨다)에 속한 우리나라 땅이다. 이것은 문서에도 기록된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데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을 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719년 조선통신사를 수행해 제술관으로 일본을 방문한 신유한은 ‘해유록’(海遊錄)에서 “대마도는 조선의 한 고을에 지나지 않는다. 태수가 조선 왕실로부터 도장을 받았고 조정의 녹을 먹으며 크고 작은 일에 명을 청하여 받으니 우리나라에 대해 번신(藩臣)의 의리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마도는 명백한 조선 영토로 인식되다가 일본이 근대국가 재편과정에서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 당시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열강의 개방 요구에 맞서다 이 같은 국제정세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고 대마도의 일본 지배를 막지 못했다.
이와 관련 각계에서는 “역사적인 근거가 명백한 만큼 대마도에 대해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적극 펼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