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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원 대 금융사기로 알려진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들이 불법대출해준 돈은 4조5,000억 원, 그 중 임직원이 ‘아는 사람들’에게 불법대출해준 돈은 7,400억 원, 서민들에게 떠넘긴 후순위 채권 피해규모는 밝혀진 것만 700억 원,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장학재단에 끼친 손실이 1,000억 원.
그런데 임원들이 받아간 지난 5년 간 평균 연봉은 11억9,000만 원, 그동안 받은 성과급은 390억 원, 임원과 그 가족이 가진 불교 문화재급 보물과 현대미술작품은 돈으로 환산조차 안 되는 수준이다.
이 돈을 ‘좋은 일’에 썼다면 얼마나 생산적일 수 있을까.
“불교 박물관 만들려고…”라는 변명 통하지 않는 보물들
불교 보물들을 수집한 김민영 부산저축은행 대표는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김 양 부회장의 손윗동서다. 서울대 농대 입학 때부터 불교 학생회를 조직해 활동하는 등 불교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다. 이후 타이어 회사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부산저축은행에는 김 양 부회장의 권유로 입사하게 됐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 밝혀진 김민영 대표의 소장 보물목록을 보면 한글 창제 직후 제작된 월인석보(月印釋譜) 두 종류와 조선 세종 때 판각한 불교경전 묶음집인 육경합부(六經合部) 두 종류ㆍ해동조계암화상잡저(海東曹溪宓庵和尙雜著)ㆍ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ㆍ묘법연화경삼매참법(妙法蓮華經三昧懺法) 권상(卷上)이 있다.
또 대불정여래밀인수증다라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권1 ㆍ선종영가집 언해(禪宗永嘉集諺解) 두 종류ㆍ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脩多羅了義經) 권1ㆍ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언해(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권3ㆍ정약용 필적 하피첩ㆍ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권상ㆍ하(卷上下)ㆍ이한진 전예 경산전팔쌍절첩(李漢鎭篆隸京山篆八雙絶帖)ㆍ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ㆍ몽산화상법어략록 언해(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ㆍ경국대전(經國大典) 권3ㆍ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脩多羅了義經)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부가 보물로 지정한 문화재다. 고서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월인석보’를 제외한 나머지 물건들 가격만 최소한 26억 원이 넘는다. ‘월인석보’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되는 보물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고서들을 모두 합하면 1,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민영 대표는 지난 3월 이런 ‘보물’들을 10억 원을 받고 모두 매각했다.
서초동 삼성타운 다 사고도 남아…우리나라 대학생 중 20% 연간 등록금 무료
부산저축은행 그룹이 빼돌리거나 함부로 쓴 돈을 합하면 무려 7조 원에 육박한다. 여기서는 일단 불법대출에 사용한 4조5,00억 원만 계산하도록 하자. 이 돈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감이 오는가.
서울 시내 30평형대 아파트가 평균 5억 원 남짓이라고 가정할 때 9,000채를 살 수 있다. 서울 세곡지구의 보금자리 주택 30평형 대 내외로 계산하면 1만5,000채 가량 된다. 지방으로 가면 웬만한 소도시 주민들 모두에게 집을 나눠줄 수 있을 정도다.
빌딩을 산다면 어떨까. 삼성그룹의 새로운 본부인 삼성서초타운(추정가 2조8,000억 원)을 사고 남은 돈으로 역삼역의 강남파이낸스센터(추정가 1조5,000억 원)를 살 수 있다. 그래도 2,000억 원 가량이 남는다.
이 돈을 국민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에 쓴다면 어떨까. 지난 22일 황우여 한나라당 대표는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소요되는 재원은 연간 6조 원 가량.
2009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생 수는 약 307만 명. 이들이 연 평균 700만 원을 낸다고 가정하면 21조5,000억 원 가량이 등록금으로 사용된다. 부산저축은행 그룹이 불법대출한 돈이면 이들 중 20%가 1년 동안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불법대출 규모 4조5,000억 원은 정부가 관리하는 ‘한국장학재단’의 총 기금 규모 3조2,000억 원을 훨씬 웃돈다. ‘한국장학재단’은 1년에 12만5,000여 명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그룹이 허공에 날린 돈을 여기다 보탰다면 연간 30만 명이 혜택을 봤을 것이다.
이 돈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금급식에 사용할 경우에는 전국 800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최소한 2년 간 혜택을 줄 수 있다.
불법대출액 외교통상부 2.5년 예산, 소방방재청 7.5년 예산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불법대출 규모는 외교통상부 연간 예산 1조7,444억 원의 2.5배에 달한다. 대한민국 20만 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청의 연간 예산(2010년 기준)인 5조9,752억 원보다는 조금 작다. 정부의 국가산업 연구개발 지원예산이 연간 4조 원 남짓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산저축은행 그룹 임직원들의 범죄는 정말 '통이 크다'.
일본 대지진 이후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소방방재청의 2010년 예산은 6,800억 원 가량. 불법대출한 돈이면 소방방재청의 7년 6개월 예산이다. 광역지자체가 분담하는 전국의 소방방재 예산을 모두 포함시킨다 해도 2년 동안 쓸 수 있는 규모다.
서민들을 돕기 위한 정책금융인 미소금융, 새희망홀씨대출, 바꿔드림론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모두 합쳐도 3조 2,000억 원 가량이다. 부산저축은행 그룹 관계자 수십 명이 쓴 돈보다 작은, 이 돈의 도움을 받는 서민들이 매년 수만 명에 달한다.
만약 부산저축은행 임직원들이 빼돌린 돈의 5%만이라도 외교부의 재외국민 긴급구호 예산(연간 3억 원)이나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기부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불법대출 중 10%만이라도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을 돕는데 썼더라면, 서민금융 기금에 기부했더라면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
영국이 내놓은 유로파이터 타이푼 1개 대대도 구입 가능
부산저축은행의 불법대출액을 만약 국방전력 확충비로 사용했다면 아마 북한과 중국은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이 돈이면 이지스 구축함 세 척을 더 만들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K-2 흑표전차는 500대를 한꺼번에 도입할 수 있다. K-21 장갑차라면 1,000대, 윤영하급 고속정은 100척을 도입할 수 있다.
다른 나라로부터 무기를 구매한다면 어떤 무기를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최근 영국은 재정위기로 국방예산을 줄이기로 하고 각종 장비들을 내놨다. 그 중에는 최신예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도 있다. 영국이 도입할 당시에는 대당 1,800억 원 가까이 지불했지만 내놓은 가격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가격을 1,200억 원으로 가정할 경우 여유 물량을 포함해 1개 대대급(24대에 여유 부품)을 주문할 수 있다. 이는 영국이 매물로 내놓은 타이푼 물량의 절반에 해당한다. 타이푼과 F-15K를 함께 구비하게 되면 우리나라 공군력은 중국, 일본에 맞설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서북도서는 물론 휴전선 일대 방어에 엄청난 도움이 될 무인 스텔스 정찰기도 살 수 있다. 미군도 그 배치를 확인해주지 않는 스텔스 무인정찰기 ‘센티넬’을 영국도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에 매물로 나온다. 가격은 대당 1조5,000억 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당시 미군이 이 지역에 무인정찰기 ‘센티넬’을 띄워 놨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부산저축은행 그룹이 빼돌린 돈이면 이 ‘센티넬’ 2세트를 사고도 남는다.
우리 군에 필요한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는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글로벌 호크’는 노무현 정부 당시 판매가격이 5,000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였으나 최근 미군의 도입량 감축으로 가격이 크게 올라 대당 1억 달러 정도에 판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그룹이 빼돌린 돈이라면 여러 가지 시스템을 포함해 25대 이상 주문할 수 있다.
물론 이 돈이면 현재 공군이 도입하려는 F-35 스텔스 전투기 1개 대대나 육군이 탐을 내는 최신형 AH-64D 롱보우 아파치 2개 대대를 갖출 수 있다.
이렇게 비교를 했지만 부산저축은행이 저지른 범죄에 연루된 돈은 상상조차 어려운 거액이다. 이 돈이 저축은행 본연의 역할인 '서민금융'과 '중소기업금융'에 쓰였더라면 우리 경제 전반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