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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사상 최대의 금융 사기극이다.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에 건설될 신도시 ‘캄코(Cam-Ko)시티’와 신공항 건설 등에 5,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여기서 자금을 빼돌린 정황을 발견하고 현장 방문도 했다. 이곳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공사비 2조 원이 넘는 ‘한국형 신도시’
캄코시티는 부산저축은행 등 한국기업들이 캄보디아 정부와 함께 계획해 만들기 시작한 ‘신도시’다. 총 사업비는 29억 달러에 달한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30km 떨어진 곳의 132만㎡(약 40만 평) 부지에 2018년까지 금융센터, 아파트 단지, 프놈펜 시청, 대학, 레저시설, 주상복합 빌딩 등을 짓는 계획이다. 시행사는 랜드마크 월드와이드, 시공업체는 한일시멘트그룹 계열사인 한일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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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코시티’는 2004년 초에 김 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구속)이 캄보디아를 방문한 뒤 구상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2005년부터 캄코시티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광주일고 후배인 건축가 강 모(52) 씨에게 도시계획을 맡겼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5년 건설업체인 P사를 세워워 인천국제공항의 에어몰 턴키 설계공모전에 당선되고 강원도와 인천광역시로부터도 우수건축상을 받는 등 건축 디자인 설계로 두각을 나타낸 인물.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P사는 대형 프로젝트 기획과 건축설계, 건설 시공으로 특화된 3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어, 캄보디아 사업과 같은 부동산 개발사업이 가능하다. P사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중앙부산저축은행 본사(일명 '워터게이트' 건물)와 부산제2저축은행의 해운대지점 건물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부산저축은이 새로 인수한 대전과 전주 상호저축은행의 내부 인테리어를 담당할 정도로 김양부회장의 신임이 돈독했다.
이런 관계로 P사는 전체 규모가 수조원대 규모 개발사업인 신안복합리조트와 새만금 에코폴리스, 그리고 캄코시티의 마스터 플래닝을 담당했고, 강씨는 2007년 캄보디아정부로부터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미국시민권자인 강씨는 검찰수사가 시작된 직후 업무상 출장을 이유로 출국한뒤 귀국하지 않고 있고, 검찰은 강씨가 부산저축은행이 벌인 대규모 부동산개발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전후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김양부회장 주도로 진행된 캄코시티 사업이 진행되려면 저축은행이 해외에서 벌어지는 사업에 대해서도 PF투자를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하는데, 2006년 10월 18일 금감원이 저축은행의 해외 PF 투자를 허용했고, 금감원의 허용 한 달 뒤인 2006년 11월 노무현 前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이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캄보디아 증권거래소 설립 결정도 이때쯤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 캄보디아 정부는 ‘캄코시티’를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릴 정도로 큰 관심을 가졌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 사업으로 김 양 부회장은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소바타라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캄보디아 정부는 캄코시티 지역 전체를 ‘금융특구’로 지정했다. 증권거래소는 물론 컨벤션 센터와 새 시청 청사, 기술대학, 국제학교, 종합병원, 의대까지 건설할 계획이었다. 주변에는 고급 빌라와 타운하우스, 아파트 8,000여 세대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대형 쇼핑몰과 오피스 빌딩, 주상복합빌딩도 포함됐다.
1단계 사업인 1,009세대 중 타운하우스 164세대와 빌라 18세대, 아파트 등 700여 세대는 이미 완공해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과 한국인들에게 분양을 끝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캄보디아 증권거래소, 42층짜리 주상복합빌딩 등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하지만 3단계 사업 때부터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부산저축은행이 자금공급을 하지 못하면서부터다. 그러자 시행사인 ‘랜드마크 월드와이드’는 지난 4월 20일 서울중앙지법에 부산저축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캄코시티 사업
‘랜드마크 월드와이드’측이 낸 소장에 따르면 ‘2005년 8월 부산저축은행이 캄코시티 개발에 필요한 대출금 2,545억 원과 다른 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의 이자까지 같이 대출해주기로 하고, 대신 캄코시티 개발에서 생기는 이익의 60%를 부산저축은행에 주기로 계약을 했는데 2010년 9월 1일부터 대출을 중단하는 바람에 다른 곳에서 대출한 돈의 이자 97억 원을 지급하지 못하고 연체이자 34억 원까지 손해를 봤다’고 한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캄코시티를 위해서만 3,534억 원을 대출해줬다. 이를 위해 설립한 SPC만 9개였다. 부산저축은행은 2007년 8월 22일에는 한일건설, 현대페인트 등과 함께 현지에 자본금 1,500만 달러짜리 ‘캄코뱅크’까지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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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부산저축은행은 KTB자산운용(대표 장인환)으로부터도 돈을 끌어다 썼다. KTB자산운용은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8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 캄코시티와 캄코은행 설립 등에 투자했다.
KTB자산운용은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의 광주일고 동문인 장인환 대표가 2010년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장학재단의 기금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저축은행의 1,500억 원 유상증자에 이들 장학재단을 끌어들여 1,000억 원의 손해를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장학재단은 장 대표를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부산저축은행의 2대 주주이자 김 양 부회장의 광주일고 동기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도 뒤늦게 캄보디아에 진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해동건설은 지난 2009년 캄보디아 현지에 '해동엔지니어링&건설'을 설립했다. 검찰은 이 회사가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캄보디아 개발을 위해 설립한 9개 특수목적법인(SPC)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형선 회장은 '민청학련 사건' 관계자이자 5.18유공자다(그의 여동생이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고, 부인이 5.18 핵심인물 윤한봉씨의 동생). 이 때문에 호남 지역의 '민주화 인사들'과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1월 노무현 前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박형선 씨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로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고, 강금원-박연차씨와 함께 노대통령의 3대 후원자로 알려지기까지 했다.
아무튼 이렇게 들이부은 돈이 지금은 전부 사라졌다. 부산저축은행과 시행사는 이 돈으로 사업을 했다고 주장한다. ‘땅값도 사업초기에 비해 5배 가까이 올랐고 앞으로 캄보디아 부동산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 사업권 가치가 4억5,000만 달러라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2008년 당시 캄보디아 내부 상황은 이들의 주장이 한국인 부동산 투기꾼들이 만든 환상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 3월 캄보디아 프놈펜과 캄코시티 주변에는 ‘한국계 기획부동산’들이 설치고 있었다. 한국인 ‘사장’이 한국인 ‘관광객’ 수십 명을 관광버스에 태워 이곳저곳을 돌며 설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캄보디아에 ‘투자’를 하려는 한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수도 프놈펜과 캄코시티 주변의 땅값은 2년 만에 5배 넘게 뛰었다. 2006년 1㎡ 당 500달러 수준이던 것이 1㎡ 당 3,000달러를 훌쩍 넘긴 곳도 있다. 심지어 1만 달러에 육박하는 곳도 나타났다. 일부 ‘기획부동산’은 밀림까지도 팔아 넘겼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사들인 캄보디아 부동산은 외국인 소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훈센 총리는 ‘외국인에게 소유권을 넘기도록 법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한편 이런 부동산 투기는 집 없는 캄보디아 사람들과 현지 교민들을 괴롭혔다. 당시 봉사활동을 위해 파견된 정부기관은 프놈펜 시내에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결국 월 3,000달러에 단독주택을 빌렸고 현지에서 활동하던 변호사는 방 2개짜리 아파트를 월 1,800달러에 빌렸다고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컸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주택보급률은 15%에 불과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583달러인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이 지은 아파트는 ‘그림의 떡’이었다. 캄코시티에 있는 148㎡형 아파트 가격은 20만 달러. 캄보디아 사람들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343년 2개월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살 수 있다. 만약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70억 원짜리 고급 아파트를 수천 가구 짓는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캄보디아 사업’은 비리의 블랙홀?
한편 부산저축은행은 캄코시티 외에도 신공항과 고속도로 건설에도 각각 1,200억 원과 620억 원을 대출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 공사는 부지매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부산저축은행이 이런 식으로 캄보디아에 쏟아 부은 돈은 5,000억 원이 넘는다.
검찰은 이 돈 중 수백억 원 이상이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려진 정황을 포착하고 금융정보분석원(FIU)과 함께 추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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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민주당 원내대표인 김진표 의원은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2007년 말부터 수차례에 걸쳐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과 캄보디아를 방문했다’고 주장하면서 곤혹을 치르고 있다. 김 의원은 "캄보디아 방문 사실은 맞지만 부산저축은행관계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신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재미있는 건 캄보디아에 투자한 뒤 돈이 말라버린 게 부산저축은행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7년 사채를 동원해 코스닥 기업을 집어 삼킨 기업사냥꾼들은 ‘Y’라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캄보디아 프놈펜에 42층짜리 고급 주상복합빌딩을 짓겠다고 2008년 2월 밝혔다. 사업비는 무려 2억4,000만 달러. 기업사냥꾼들은 이를 위해 피해 코스닥 기업으로부터 300만 달러를 빌렸다.
당시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빌딩의 시공도 캄코시티의 시공업체였던 한일건설이 맡았다. 군인공제회의 자회사인 대한토지신탁은 여기에 초기 사업비를 댔다. 이 빌딩도 캠코시티처럼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2009년 3월에는 이 사업과 관련해 이강철 前정무특보(노무현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노 모 씨가 구속됐다. 하지만 코스닥 업체를 말아 먹은 기업사냥꾼들은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다.
아무튼 저축은행들과 정치인, 정부까지 큰 관심을 가졌던 캄보디아에서는 지금도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이 지역 주민과는 별 관련도 없는, 각종 대형빌딩 공사를 진행 중이다. 때문인지 캄보디아와 관련된 의혹제기도 많다. 하지만 불법자금 감시는커녕 증권거래소도 없는 캄보디아에서는 불법자금 추적이 어렵다.
캄보디아가 한국 정재계 부패와 비리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