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동 칼럼]정치시스템 고장, 정치문화 쇠퇴, 국가 쇠락

美경제 위기? 주범은 극단주의

조광동 재미 언론인 | 최종편집 2011.08.09 09: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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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커다란 진통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진통과 시련이 미국의 위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그 심도가 깊고 진폭이 넓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원인이 본질적인 것에 있다는데 중대성이 더욱 큽니다.
 
진통의 시작은 부채 상한액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부채 액수를 법적으로 정해 놓고, 그 상한액이 넘을 경우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지난 8월 2일을 기점으로 미국의 국고가 바닥이 났고, 부채 상환액을 증가시키지 않으면 ‘디폴트’(default)가 발생할 상황이었습니다. 디폴트는 ‘채무 불이행’이란 뜻으로 꾼 돈의 이자와 원금의 일부를 갚지 못하는 것입니다. 국가 부도가 난 다는 뜻입니다. 미국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것은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현재의 미국 경제 상황으로는 돈을 빌려야 유지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8월 2일 데드라인을 놓고 집권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은 수개월 동안 치열한 줄다리기 대결을 해 왔습니다. 최근 정치사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논쟁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정부의 부도를 막기 위해서는 부채 상환액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공화당은 미국이 더 이상 빚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경비를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의 경비를 삭감해야하겠지만 우선 경제를 살려야 하고,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삭감액을 줄이고 세입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입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증가시키고, 대기업이나 큰 부자들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합법적으로 세금을 탈세하는 구멍과 함정을 보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부자들에 대한 세금 인상은 기업 의욕을 감소시키고 그 여파가 경제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절대로 안 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경비를 줄이는 것이 최급무라고 했습니다. 미국은 현재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이고,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하 양원이 합의해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부채 상한 법안은 제자리 걸음을 했습니다.
 
이 잇슈는 정치 철학과 방법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 의견이 옳으냐 보다는 나라를 위해 어느 철학,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데드라인을 몇 시간 앞두고 양당은 가까스로 파국을 면했으나, 이러한 합의는 임시적이고 앞으로 ‘수퍼 커미티’(Super Committee)라는 것을 만들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수퍼 커미티는 민주당에서 6명, 공화당에서 6명, 모두 12명으로 구성되어 전권을 위임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퍼 커미티가 원만한 합의를 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은 부채 상환액 문제를 놓고 계속 격랑 속에서 소용돌이쳐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제의 본질적인 중대성은 정치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데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 제도나 법규는 변한 것이 없는데 정치 시스템이 고장 났나는 것은 미국의 의식, 정치문화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 정치의 격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부채 상환액 위기를 넘긴 뒤 곧바로 각 나라의 경제적 신용 등급을 평가하는 회사 가운데 하나인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tandard & Poor’s)는 미국의 신용 등급을 최상급인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하면서 주된 이유를 “경제적 도전에 직면한 시기에 미국의 정책 결정과 정치 제도의 효율성, 안정성, 예측성이 약화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 미국의 정치 능력이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 제도나 정책 결정 방법은 그 결과가 예상되었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예상성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 제도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빛나는 전통이 ‘타협’(Compromise)이었습니다. 정치 후진국에서는 타협이 변절과 배반이지만 정치 선진국에서는 타협이 정치를 상생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절제와 도량입니다. 서로의 정치 철학과 가치관이 다르지만, 나라를 위해 자기 신념과 철학을 어느 선에서 양보하고 절충하는 것입니다. 타협 정치에서는 자기 주장을 100% 관철시키는 것을 허용치 않습니다. 자기 철학과 신념으로는 이 길이 옳은 것이고 이 방법이 최상이라고 확신하지만,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철학과 신념을 어느 선에서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전통이 이번에 실종되었습니다. 경제적 위기나 부채 상한액 문제보다 더 큰 위기의 본질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문화가 뒷걸음질 친 것입니다. 타협 정치를 거부한 정치에 대해 대해 뉴욕타임즈 여론조사에서 미국민들 82%가 의원들을 불신한다는 경고를 보냈습니다. 의원들이 국민들로 부터 이렇게 외면당한 전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위기의 핵심은 극단주의(Extremism)입니다. 민주 정치의 가장 무서운 적이 바로 극단주의입니다.
극단주의가 정치 제도에 들어 오면 타협은 변절과 배반이 되고 정치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최근 미국 정치에 극단주의가 출현한 것은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부터입니다. 표면상으로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건강 보험이 없는 국민들을 위한 의료 개혁법을 제정하고, 경제 회복을 위해 대대적인 구제 금융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 세력은 오바마 대통령이 사회주의 성향으로 치닫고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고 반발했고, 이러한 저항과 분노가 ‘티 파티’(Tea Party)로 표출되었습니다.
 
티 파티는 별개의 정당이 아니라 표면상으로는 공화당에 속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비대해진 연방 정부의 정치 권력을 주 정부와 국민에게 환원시키고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풀뿌리 운동입니다.  2010년 11월에 있었던 중간 선거에서 50여명의 의원을 당선시키고 원내 교섭단체인 코커스(Caucus)를 구성하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티 파티는 숫자상으로는 50여명이지만 미국 정치에 뜨겁고 격한 정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으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한 정치 철학과 신념이 있기 때문에 타협을 하지 않고 자기 신념을 관철하는데 전력 투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온건한 보수성을 가진 공화당이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들의 주장과 철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방법이 극단적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나라의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화당이나 민주당, 티파티에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정치인, 경제학자, 경제인, 전문가들이 자기 철학과 방법에 따라 처방을 내 놓고 있지만 누구 방법이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기의 신념과 주장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티 파티가 타협을 거부하고, 내 주장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러한 주장은 가속화되고 극단화 되었습니다. 공화당은 민주당과 타협을 하고 싶어도 다음 대통령 선거와 의원 선거에서 티 파티의 협조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티 파티의 비위를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티 파티에서는 국가 부도가 나더라도 부채 상환액을 증가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극단세력이 나타나면 정치는 더욱 격해집니다. 티 파티는 미국 경제를 인질로 잡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부채 상환액 타협이 막바지에 성사된 후 바이든 부통령이 “티 파티가 테러리스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티 파티를 ‘흡혈귀’라고 비난한 것은 미국 정치가 얼마나 격해지고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 정치의 미덕은 절제와 관용이었고, 웬만해서는 상대방이나 동료 의원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절제와 금도의 둑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 정치의 위기이자, 미국의 정치 품격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의 정치 위기를 지켜보면서 한국이 타산지석의 교훈을 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가 극단화되고 미국 정치의 격이 실추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처럼 의사당 문을 망치로 부수거나 국회의원의 공중 발길질을 하는 사태까지는 가질 않았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민주당 상당수 사람들은 공화당과 티 파티가 끝까지 부채 상환액 증가를 동의하지 않을 경우 수정 헌법 14조를 발동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수정 헌법 14조에는 “미국 공공 부채의 유효성은 문제시 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공화당 일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헌법 14조 비상권을 발휘할 경우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 정치는 더 큰 정치적 불안을 조성하고 격렬한 소모전을 전개해야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부터 이러한 극단 조치를 거부했습니다. 오바마는 극단주의 카드를 피했지만, 이러한 그의 태도는 허약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가져 왔고, 지지 세력을 실망시키는 정치적 손실을 입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또 다른 절제력은 “인종주의 카드”에 대한 유혹을 뿌리친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 정치에서는 부채 상한액을 수십번 증가시켜 왔고, 상한액을 증가시키는 것에 큰 진통을 겪지 않았습니다. 공화당 의원들이 자랑과 모델로 삼는 레이건 대통령은 부채 상환액을 7번 인상했었습니다. 유독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부채 상환액을 승인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오바마가 흑인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했지만, 오바마는 이러한 질문 자체를 무시하고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의 위기는 자기 주장과 신념을 극단화 시키는데 있고, 이 극단주의는 이념주의와 직결됩니다. 정치에는 이념과 철학이 필요 불가결하지만, 정치인이 이념에 지나치게 경도될 때 나라의 정치는 극단화하고, 극단주의가 심해지면 광기의 이념주의를 생산합니다. 극단적인 이념주의는 미움과 증오를 불러오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나라의 동력과 에너지를 대결과 싸움으로 소진시킵니다. 미국 사회가 분열되고, 극단화하고, 증오의 강도가 커지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도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 시스템이 고장 나고, 정치 문화가 쇠퇴하면 국가의 쇠락으로 직결될 것입니다.
 
정치의 안정성, 예측성이 경제 발전과 경제 신용의 근간이 된다는 S & P의 발표는 한국이 새겨 들어야 할 말입니다. 한국이 지금 각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지만 정치적 안정성과 합리성을 구축하지 못할 때 오늘의 번영은 모래성이 될 수 있습니다.

가끔씩 한국이 교만해 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라가 교만해지면 자기 성찰에 소홀히 하고, 다른 사람의 충고를 경청하지 않고, 사회 의식과 정치 문화가 극단화로 가게 됩니다. 실용주의와 합리성이 지배하는 미국 정치가 극단화로 가는 것은 감정주의 파벌주의가 유달리 강한 한국 정치가 극단화 함정에 얼마나 쉽게 빠질 수 있을지를 시사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타협 정치의 바탕에서 민주주의를 신장시켰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타협 정치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 바탕이 튼튼한 미국 정치에서 극단주의가 고개 드는 것은 민주 의식이 척박한 한국 정치에서 극단주의가 언제든지 나라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경계해 할 것이 극단주의입니다.
극단주의는 지지자를 열광시키고 지지 세력을 뜨겁게 결집시킵니다. 그러나 나라를 파국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한국의 미래를 더욱 밝게 약속받기 위해서는 정치가 합리성과 안정성을 조성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정치는 보수든 진보든 극단주의로 이념화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정치의 이념화를 경계하고, 극단화를 절제해야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정치가 길을 잘못 들어서면 나라의 경제가 흔들리고 삶의 질이 격하됩니다. 미국이 허약해지는 것의 본질은 경제가 아니라 의식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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