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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가 냉전의 산물?
교과부가 현대사 교과서 기술과 관련해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삼을 것을 요구한 데 대해 일부가 반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마치 상대화 시키고 싶다는 의지 같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민주주의는 그리스의 직접민주제가 아니라 근대 민주주의다. 근대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말하고, 이는 계몽사상기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선두에 서서 쟁취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일 뿐, 정치제도는 아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나 독재 아닌 자유주의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로 나타나면서부터 비로소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가 정착했다.
우리가 아는 이런 민주주의는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핵심으로 한다. 그리고 그 기본권 중에서도 자유권이야말로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 이것도 자유주의가 앞장서서 쟁취한 것이다. 이래서 민주주의는 곧 자유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라는 게 자연스럽게 인식되었다.
근대 이후로 와서는 민주주의에는 자유주의적 성취물에 더해서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추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어났다. 이 요구는 전체주의적 방식과 비(非)전체주의적 방식으로 구별되었다. 전자는 그 요구를 위해 폭력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자유주의로부터 단절시켰다. 후자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문화적 법률적 성취물을 존중하면서 그 토대 위에서 평등을 의회주의적으로, 점진적으로 추구하려 했다.
이런 사상사적 흐름을 배경으로 해서 생각할 때 우리가 대한민국 건국의 헌장으로서 추구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선취(先取)한 민주주의의 성취물을 토대로 해서, 그리고 그 헌법질서와 대의제의 테두리 안에서, 보수적 정책정당, (경제적)자유주의 정책정당, 진보적 정책정당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로얄티(loyalty)를 고백하면서 공존, 경쟁하는 민주주의라 할 것이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는 국가와 정체(政體)의 철학과 조직원리에 관한 포월적(胞越的)인 개념으로 쳐야지, 단순한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만을 의미하는 하부체계의 하나로 격하시킬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런 뻔한 이치가 왜 새삼 도전받느냐 하는 의문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나치스의 국가사회주의, 인민민주주의, 모택동 신민주주의,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구별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기절초풍할 소리로, 자유민주주의가 냉전의 산물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선취하기 시작한 게 1950년대 미소냉전 때부터란 말인가? 200년 전 존 록크와 토마스 제퍼슨이 지하에서 울겠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