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정부 복지, 어디부터가 개인 책임?”...이 물음이 묻혀 버렸다
  • 8월 24일은 우리 민족 역사에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의 뜻이 희생된 날이다. 무려 2,159,095 명의 표가 개봉도 못 해보고 땅에 묻혔다. 나는 절이나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종교의 언어를 빌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일종의 순교이다. 그래서 나는 이날을 ‘8·24 순교’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하루 종일 지인들에게 시시각각 문자를 전송했다. 하루 동안 총 5,901 통의 장문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통신비만 271,436원을 썼다. 지인들은 ‘발악적인 스팸’에 시달린 셈이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도라이’ 같은 짓을 했을까? 무엇이 나를 움직였던 것일까?

    오세훈이 날 움직였을까?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곽노현이 교육감이 된 것은 오세훈이 김영숙 교육감후보를 끼고 돌았기 때문이다.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오·김 두 사람은 프레스센터에 나란히 선거운동본부를 차렸고, 유세 일정과 동선도 나란히 맞추어 다녔다. 김영숙이 12.18%를 가져갔기 때문에, 이원희(33.22%)가 곽노현(34.34%)에게 약 5만 표의 근소한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곽노현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이 바로 오세훈·김영숙 짝패이다.

    둘째, 오세훈은 주민투표가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양 떠들었지만 실은 그 준비 및 진행과정에 아무 실제적 도움을 주지 않았다. 선거법 상 오세훈이 돕지 못 한다면, 오세훈의 지지자, 후원자들이라도 도울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주민투표를 진행했던 『복지포퓰리즘추방운동본부』는 8월 초에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졌고, 그 핵심 인사는 마음이 상하고 몸이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

    8월 10일 경 부랴부랴 대타로 들어간 사람이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이다. 심지어 8월20일, 22일, 23일의 주민투표 독려 집회에 오세훈 지지자들은 단 한 명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어쩌면 오세훈에게는 애초부터 풀뿌리 지지자들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주민투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세훈과 아무 상관없이, 또한 한나라당의 온갖 김빼기와 뒷다리잡기에도 불구하고 시민에 의해 발의되어 시민에 의해 진행되었던 것이다.

    오세훈은 이번에 대선불출마를 선언하고 서울 시장직을 내놓음으로써 비로소 죄값을 치렀다. 그리고 매우 중요인물—킹메이커로 거듭났다. 내년 총선? 서울에서는 오세훈의 지원유세를 받는 편이 박근혜의 지원유세를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할 게다. 내년에 서울에서 공천받고 싶은 자, 당선되고 싶은 자들은 지금부터 오세훈과 잘 지내두는 편이 좋다.

    오세훈이 나를 움직였던 걸까? 아니면, 한나라가 나를 움직였던 걸까? 천만에. 한나라가 한 일이라곤 막판에 플래카드 걸고 50 명 안팎의 콜센터 직원을 운영한 것 외에는 없다. 또한 나는 이제까지 어느 특정 정당에도 충성을 바친 적이 없다.

    노무현이 뜰 때에 길에서 마주친 후배가 나에게 권했다.

    “형, 입당 좀 하세요?”
    “응? 무슨 당?”
    “우리당이요. 우리당!”
    “내가 ‘너희당’에 왜 입당해야지?”

    정당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도 없고, 정당에 대한 충성심도 없는 사람이 왜 어제(8·24) 그토록 ‘광분’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페이스북을 하고 트윗을 날렸을까? 이번 주민투표가 원칙과 가치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가 정부 복지이고, 어디서부터 개인책임인가?”라는 이슈에 관한 시민선택이었다는 점이다.

    평소 같았으면 투표만 하고 말지, 하루 종일 매달려서 내 돈, 내 시간 써 가면서 문자 보내고 트윗을 띄우지는 않았을 게다. ‘광분’했던 것은 야권이 일치단결해서 투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투표는 나쁘고 거부는 착하다”라는 선악 편가르기를 했기 때문이다.

    투표에 관해 선악을 끌고 들어와 편가르기를 하는 행위를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착하다, 나쁘다라는 선악에 관한 판단은 오롯이 개인의 것이다. 감히 정치권이 길거리에 플래카드로 내걸어서 언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가 정부 복지이고, 어디서부터 개인 책임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투표를 [거부하라]는 이야기는 “너희들은 감히 그 문제에 대해 판단할 자격이 없다”고 윽박지르는 권위주의적 소리이다.

  • ▲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 거부를 촉구하고 있다.ⓒ
    ▲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 거부를 촉구하고 있다.ⓒ

    “투표는 나쁘고 거부는 착하다”라는 플래카드는 “너희를 대신해서 우리가 선과 악에 관한 판단을 내려주겠다”라는 오만방자한 소리이다.

    권위주의와 오만방자가 ‘민주’라 불리고 ‘진보’라 불리는 것이 너무나 가증스러워서, 나는 8·24 주민투표를 위해 ‘광분’했다.

    유권자의 25.7%에 해당하는 2,159,095 명 모두 이같은 느낌이었을 게다. 한나라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아니었으며, 더더욱 오세훈에 대한 지지는 아니었다.  특히 오후 4시 이후, 투표함이 개봉조차 되지 못 하고 땅에 묻힐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투표에 참가했던 약 80만 명의 사람들은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8·24 순교’라고 부른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숫자다.  만약 보통 투표일 같으면 이 숫자는 약 3백 만 명에 해당할 게다. 투표율을 55%로 가정하면 투표인 수는 약 460만 명이다. 이중 3백 만 명이면 득표율 65%이다. 앞으로 최소한 서울에서, 복지포퓰리즘을 떠들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는 어렵다.

    이번 주민투표는 첫눈에는 야권과 친박의 승리인 듯 보인다. 원래 모든 순교가 첫눈에는 억압세력, 처형세력의 승리인 것처럼 보인다. 목수의 아들 혹은 사생아였던 유대청년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다음에 이스라엘의 진보세력—민족정통성을 내세우는 바리새(Pharisee)와 이스라엘 독립투쟁을 주장한 열심당(Zealot)-은 기뻐 날뛰었다. 진보세력은, 신 앞에 홀로 선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가르친 이 청년을 증오했던 게다.

    그렇다. 이번 주민투표를 무산시킨 야권, 친박, 그리고 (친박에 의해 마비되어 있는) 한나라당은 바로 처형세력, 억압세력이다.

    “우리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 어디까지가 정부 복지이고, 어디서부터 개인책임인가를 결정하겠다”라는 입장을 지지한 2,159,095 명을 투표함에 담아 땅에 묻어 죽인 게다. 그러고 그들은 웃음지으며 기뻐 날뛴다.

    우리 시민에게 이날은 ‘8·24 순교이고 이들 주민투표 무산세력, 시민정치 억압세력, 시민주권 처형세력에게 이날은 ‘‘8·24 학살’이다.

    친박에게 붙들려 마비되어 있는 한나라는 당명을 바꾸는 편이 좋다. 배배당(배신·배임당)으로…. 그리고 당 대표를 박근혜로 옹립하는 편이 좋다. 박근혜 배배당 대표. 얼마나 화끈하고 좋은가? 이제 마음대로 노골적으로 시민 주권, 시민 정치를 배신하고 국정 책임을 배임할 수 있지 않은가?

    자, 이제 분열의 시대가 왔다. 한나라 당이 깨지냐 안 깨지냐는 것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민주당과 민노당이 통합하냐 통합하지 않냐는 것 역시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한나라는 박근혜 및 친박의 영향력으로부터 ‘분열되어 나와서’  이념과 가치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민주당은 종북·친북의 사악한 영향력으로부터 ‘분열되어 나와서’ 진정한 복지와 민주주의를 위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얼마나 잘 분열하여 발전하는가에 따라 정치판의 이니셔티브가 결정될 것이다.

    ‘8·24 순교일’에 만들어진 2,159,095 개의 표 무덤은 바로 이 분열을 위한 축복이다.  

    박성현

  • ▲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 거부를 촉구하고 있다.ⓒ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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