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동 칼럼] 도둑 카피를 자랑하는 시민운동가는 없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씨를 잘못 봤습니다"

학력 의혹-대기업 후원금-등산복 협찬-하버드 도서관 도둑 카피.."투명한 사람 아니다"

조광동 재미 언론인 | 최종편집 2011.10.18 12: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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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 때 ‘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세상은 더욱 정의롭게 발전해야 하고, 내일은 오늘 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저는 시민 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언론인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의 일익을 담당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변화를 보도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의 주체가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한다스 간디나 도산 안창호,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에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저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시대적 무게와 크기가 너무 거대해서 흠모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롤 모델(role model)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사는 시대에 제가 가장 관심을 많이 가졌던 운동가가 미국의 랄프 네이더(Ralph Nader) 였습니다.
 
랄프 네이더는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서 태어나 한 때 정치인의 보좌관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소비자 보호운동에 뛰어 들어 전 생애를 시민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동차가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포드와 GM 자동차와 맞서서 싸웠던 네이더의 약점을 잡기 위해 GM 자동차는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네이더의 사생활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약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GM 자동차는 사생활을 침해한 혐의로 의회에서 국민들에게 굴욕적인 사과를 하고 네이더에게 수십만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했습니다.

네이더는 이 보상금을 소비자 운동의 씨앗돈으로 삼았습니다. 소비자 운동을 거쳐, 인권운동, 부패 척결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에 앞장섰던 네이더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동차도 없이 싸구려 음식을 먹으면서 한달에 2천달러 정도의 생활비로 살고 있습니다. 수백만달러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으나 여기서 나오는 이익금은 모두 시민운동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저는 랄프 네이더의 철학과 방법에 동의를 하지 않는 점이 있으나, 그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 저는 한국의 서울시장 선거를 보면서 시민 운동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씨를 알지 못하지만 제가 한 때 언론사를 떠나 시민운동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후배로 부터 박원순씨의 아름다운 재단을 미국에서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으면 박원순씨에게 소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재단에 관심이 많았으나 운동의 성격이나 방법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서 사양을 했고, 인연은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인연을 맺기 주저했던 주된 이유 가운데 또 하나는 박원순씨가 2000년 한국 국회의원 선거 당시 특정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낙선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시민운동이 보수나 진보, 혹은 특정 이념이나 종교와 연계되는 것을 경계하고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시민운동가는 투명성과 변화를 선도하기 때문에 정치나 기업, 기득권 세력과 불편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고, 때로는 국민들과도 불화하고, 그들로 부터 거센 공격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를 지지하고 후원했던 사람들이나, 자기 종교, 자기 이념을 비판해야 하는 곤혹스러움과 인간적 배신을 선택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운동가는 언제나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합니다.
돈이나 여자, 위선과 거짓의 약점이 잡히면 시민운동가의 생명은 끝납니다.
시민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특정 세력으로 부터 자유스럽고, 양심과 정의, 신념의 잣대에 의지해서 제도와 시민들을 향해 외치는 것입니다. 시민운동가는 외롭습니다.

시민운동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이 운동 기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돈을 지원한 사람이나 기업의 잘못을 똑 같은 잣대로 비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약함이고 인지상정입니다. 이런 이유로 시민운동의 후원금이 어디서 나오느냐가 늘 주목과 감시의 대상입니다.

후원금을 잘못 받으면 발목을 잡히고 시민운동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시민운동가 보다 부패성이 많은 정치인들도 누구로 부터 얼마의 후원금을 받았느냐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선진 정치의 규칙입니다. 이해 상충이나 이해 관계의 의심을 받을 수 있을 때는 선거 자금을 받았다가도 다시 돌려 줘야 합니다. 정치인도 이럴진대 시민운동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민운동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사명감이나 높은 인격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안철수씨가 박원순씨에게 양보하고 물러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음 속으로 박원순씨가 시장에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정치판이 워낙 썩고 엉망이니 이렇게라도 충격파를 던져주는 것이 한국 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은 시민운동가가 정치를 잘못하면 시민운동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운동가들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정치를 잘못한 탓으로 민주운동을 욕되게 한 것에 상심했던 저는 시민운동이 추락할까 걱정되었습니다. 비록 저와는 생각하는 이념이나 방법이 다르지만 시민운동가로 괜찮은 박원순씨가 정치판에서 망가지고, 아울러 시민운동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시민운동의 본질은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양심과 정의의 잣대로 옳고 그른 것을 말하지만 정치는 표를 염두에 두고 인기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시민운동가가 정치인이 되기 어려운 걸림돌은 인기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지지 기반과 친구와 동지를 잃더라도 잘못된 것을 말하고 고치도록 외쳐야 하는 것이 시민운동가이기 때문에 운동가의 인기는 물거품입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저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박원순씨의 인상이 안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상이 착하고 순수해 보이지 않느냐는 제 말에 아내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딘가 어둡고 분명치 않은 이미지가 있고, 말하는 방법과 태도가 맑고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거전이 시작되고 박원순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저는 차츰 아내의 의견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지를 털면 먼지 안 날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박원순 후보의 신변 관리는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군대 안가기 위해 양손 입양했다는 비판은 어릴 때 일이니 박원순씨가 책임질 일은 아닌 것 같았으나 학력을 계속 “서울 법대 중퇴”라고 한 것은 큰 흠결 같았습니다. 과거 정치인들 가운데, 대통령이 된 사람까지 학력을 왜곡했던 것을 목격했던 저는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학력을 왜곡하는 것은 도덕성에 치명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저서에서 서울법대 중퇴로 된 것을 한번도 고치려고 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성이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원순씨는 이것을 출판사의 탓으로 돌렸으나 책을 출판하기 직전 저자가 최종적으로 승인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책을 한번 낸 것도 아니고 여러번 냈고, 책이 초판으로 끝나지 않고 재판까지 인쇄가 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대단히 민감해 하는 학력 왜곡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은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박원순씨는 자기는 학력에 신경을 안 쓴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이것을 시정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정직성과 분명성의 결함으로 시민운동가에게 치명적이 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박원순씨의 딸이 서울대 디자인과에서 서울 법대로 힘든 전과를 한 것도 박원순씨가 서울법대에 집착과 미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박원순씨가 책이 많아서 60평 아파트에 산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6.29 이후 한국이 격동할 때 시인 김지하씨가 정신혁명운동을 외치면서 동아일보에 장문의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 김지하씨는 아내의 뜻이기는 했지만 60평 아파트 당첨 대열에 섰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을 감동적으로 읽었던 저는 혁명을 하려면 자기 희생이 필요하고, 정신혁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정신혁명운동을 위해 60평 아파트를 반으로 줄이고 남은 돈을 혁명운동 기금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기고를 했습니다. 그 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김중배씨는 그 기고를 읽고 미국에 살면서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제 글을 실어주질 않았습니다.

저는 시민운동가는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민들 보다 잘 살아도 안되고, 사치스러워도 안되고, 좋은 옷이나 자동차를 타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원순씨는 책이 많아서 큰 아파트에 산다고 했지만 그 말이 너무 궁색하게 들립니다. 시민운동가로 박원순씨의 생활비가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운동가의 생활이 검소하고 엄격하지 않을 때 돈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고,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박원순씨는 큰 기업체에서 너무 큰 돈을 너무 많이 거둬들였습니다.
그 액수가 수백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기업체로 부터 받으면서 시민운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시민운동에 동조해서 돈을 주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기업가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이익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박원순씨의 말대로 돈을 주는 사람에게는 의지가 있고 기대가 있습니다. 자기 방어를 위한 보험금을 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약점을 폭로당하는 것을 막는 사례금입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 넣으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만 찬물에 넣고 조금씩 온도를 높이면 그대로 편안하게 잠든다고 합니다. 시민운동에게 기업체의 돈은 뜨거운 물입니다. 반사적으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시민운동가가 한푼 두푼 돈을  받다보면 몇십만원이 몇백, 몇천이 되고 나중에는 몇억까지 되고 시민운동가는 돈에 둔감해지고 뜨거운 물에서 시민운동은 편안히 안주하게 됩니다. 개구리처럼 뜨거운 물에서 시민운동이 죽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시민운동은 기업 후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사회 개혁이나 비판적 기능을 하는 시민운동은 기업의 돈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미국에서 시민운동 기금은 회원들의 회비나, 자체 사업을 통한 기금 조성, 독지가들의 조건 없는 기부금, 비영리 재단의 후원금에 주로 의존합니다.
 
박원순씨가 기업체로 부터 수백억원을 받았다는 것에 실망했던 제가 깊이 놀라고 아연했던 것은 등산복을 기부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두 대간 종주가 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과 사회변화를 위하는 고뇌의 행진일겁니다. 수백명의 등반도 아니고 대여섯명의 산행에 코오롱의 등산복 협찬이 4백만원인지, 천만원인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시민운동을 기업체로 부터 몇억의 후원금을 받은 것 보다 더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입니다.

시민운동가는 고고해야지 구걸하거나 뜯어내는 것 같은 품격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등산복이나 등산 장비는 자기 돈으로 마련하는 것이 상식이고, 그것은 시민운동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도 아는 상식입니다.
민족과 역사를 고뇌하기 위한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등산복 후원을 받았다면 그 산행의 정신은 이미 본질을 잃었습니다. 시민운동가로 너무 치사한 기부를 받은 것입니다. 박원순씨가 직접 전화하지 않고 직원이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더욱 유치한 변명입니다. 그런 풍토가 없었으면 직원이 전화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사 박원순씨 모르게 했다고 하면 꾸짖고 그것을 돌려 보내고 사과를 한 뒤 자신은 그 등산복을 입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기 행사를 위해 툭하면 기업체에 손을 벌리고 후원을 요청하는 부조리한 협찬 강요 풍토를 개선하고 비판해야 하는 시민운동가가 그것을 솔선했다면 그 시민운동의 생명력은 죽은 것입니다.
 
박원순씨는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차제에 시민운동에서도 손을 떼는 것이 자신이나 나라를 위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아내는 류성준씨가 쓴 글을 전해 주었습니다.
박원순씨가 하버드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연수할 때 도서관 책을 카피하기 위해 밤에 몰래 카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카피 머신이 귀했을 때 제가 아는 분이 자기가 쓴 글을 카피하기 위해 남편에게 회사에서 카피 좀 해 달라고 했더니 그 남편이 정색을 하면서 “글을 쓰고 민주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부끄러운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질책했다고 했습니다.
박원순씨는 자기가 쓴 글에서 자기 코드만 누르면 마음대로 복사할 수 있는 공짜 복사 카드를 학교측으로 부터 받은 뒤 남들 눈을 피해 저녁에 출근해서 밤새도록 수십권의 책을 몰래 복사했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복사기 종이가 남용된 것을 눈치챈 학교측이 그 다음부터는 2천장까지만 무료로 복사하고 그 다음부터는 2센트씩 부과했다고 했습니다.

남들이 잠자는 밤에 도둑 고양이처럼 들어와 수십권의 책을 복사한 것은 양심 도둑질을 넘어서서 실물 절도행위입니다. 미국 기업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해고 당할 일입니다. 뉴욕타임즈에서는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회사 컴퓨터를 사용해 개인 이메일을 보냈다고 여러명을 해고시킨 적이 있었고, 최근에 미국의 중진 하원의원으로 유력한 차기 뉴욕 시장 후보였던 앤서니 위너(Anthony Weiner)가 트위터를 통해 자기의 벗은 몸을 여대생에게 보냈다가 실수로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어 물의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사퇴를 거부하는 하원 의원을 징계하기 위해 그가 낮에 이 여대생과 주고 받은 전화가 개인 휴대전화였느냐 아니면 의원실 전화였느냐가 조사되었습니다.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했으면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의원실 전화를 사용했으면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의원은 결국 사임했습니다.
 
정치인에게도 이렇게 엄격한 것이 선진의식, 선진 시민의식인데, 그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앞장선 시민운동가가 눈보라치는 ‘블리저드(blizzard 눈태풍)’ 밤에 도둑 카피를 하면서 아무도 나오지 않는 그런 눈태풍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한편의 코미디였습니다. 그 코미디 주역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였다니, 그것에 제게는 너무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도둑 카피 이야기는 박원순씨에 대한 제 미련과 기대를 말끔이 씻어 버렸습니다.
한국 시민운동가의 모습을 더욱 참담하게 한 것은 아직도 그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연구원의 양식과 양심을 존중하는 무료 복사 제도가 없어지고 일정 숫자 이후에 추가로 부과하게 됐다는 것을 무용담처럼 버젓이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하니 기가 찰 뿐입니다. 그 글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고백의 글이었다면 시민운동가의 잃어버린 양식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쌌다”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 시키는 박원순씨의 글은시민운동가의 글이 아니었습니다. 박원순씨는 저에게 시민운동가가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말이 옳았습니다. 박원순씨는 투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었습니다.
그가 서울시장이 되고 안 되고는 정치적 운에 달렸겠지만, 그가 다시 시민운동을 한다고 할 때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시민운동가로서 당신의 생명력은 한계를 넘었으니 정치인으로 전업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너무 초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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