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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공짜밥은 줘야겠는데 돈은 없고…”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무상급식 예산 분담률을 가지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양 기관 모두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예산을 덜 지원하겠다는 속셈이다.
‘전면 무상급식은 시민의 뜻’ 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박원순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이 무상급식 시작 1년만에 심각한 ‘자금난’에 부딪힌 셈이다. 특히 내년에는 중학교 1학년까지 2013년에는 중학교 2학년, 2014년에는 전체 중학생으로 혜택 대상이 해마다 늘어날 계획이어서 두 기관 모두 울상만 짓고 있다.
서울시-교육청-구청이 올해 현재 무상급식에 투입된 예산은 2,292억원. 이 예산은 교육청이 50%, 서울시 30%, 자치구가 20%를 분담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에는 중학교 1학년에 추가됨으로써 2,896억원으로 필요 예산이 늘어나게 된다. 박 시장과 곽 교육감의 공약대로 2014년 전체 중학생으로 혜택 대상이 확대되면 해마다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을 복지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재정파탄을 몰고 올 것이라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예언이 벌써부터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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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교육청, “돈 없다. 돈 많은 서울시가 더 내라”
서울시교육청은 내년도 예산안 수립을 앞두고 서울시와의 무상급식 예산 분담률을 조정할 계획이다. 현재 시교육청은 올해 시행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예산 이상의 편성은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 몫인 올해 전체 무상급식 예산의 50%는 1,448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내년도 무상급식을 위해 1,148억원만 예산으로 책정했다. 이는 올해 초등학교 무상급식에 교육청이 투입한 예산 1,162억원보다도 줄어든 금액이다.
사실상 초등 1~3학년 무상급식 외에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무상급식)예산을 추가 편성할 여력이 없다. 학교 노후시설 개선 등에 투입해야 하고 돈 들어갈 곳은 많다. 서울시와 현재 분담률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교육청이 요구하는 방안은 중학교 1학년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 600억원 중 50%인 300억원을 서울시가 부담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전체 예산의 50%를 부담했지만, 중학교부터는 반대로 서울시가 더 많이 부담하라는 얘기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재정 지원금이 크게 줄어 신규 사업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서울시 가용예산이 교육청보다 훨씬 많은 만큼 이 부분에 대해 추가 부담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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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무상급식 주체는 교육청, 더 이상은 못 내”
마찬가지로 서울시도 예산이 결코 여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현행 부담비율인 30%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내년도 전체 무상급식 예산의 30%인 863억원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갑작스런 시립대 반값등록금을 위해 182억원을 배정한데다, 가용재원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시교육청의 '추가 부담' 요구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서울시 교육협력과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무상급식에서 서울시는 지원자의 입장이다. 주체는 교육청인데, 예산의 절반도 부담하지 못하겠다면 말도 안되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산안 증액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에 서울시는 무상급식 대상 학년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2014년에는 서울시 부담액만 1,3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어서, 현재 30% 부담률도 줄일 계획을 검토 중이다.
다른 관계자는 “다른 지역은 광역지자체 부담률이 평균 20% 수준이고 기초지자체에서 오히려 부담을 많이 한다. 앞으로 추가되는 학년에 대해서는 시-교육청 실무협의회를 통해 시 부담률을 줄여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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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 포퓰리즘은 망국의 지름길’ 오세훈 전 시장의 예언 적중하나?
당장 서울시가 추가 예산 부담에 난색을 표함에 따라 내년도 무상급식 중학생 확대가 상당히 불투명해진 상태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은 물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제1공약이 무상급식인 것을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이처럼 무리한 예산 지원에 따른 부작용이다. 앞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시교육청과 시의회를 향해 “애들 밥 먹이는데 드는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해마다 들어가는 엄청난 무상급식 예산은 결국 시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경고한 적 있다.
규모가 작은 기초단체(구청)의 경우 부작용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무상급식에 참여하지 않다가 박 시장의 취임 이후 여기에 동참한 4개 구청은 예산 마련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송파구는 내년 무상급식 예산(44억원) 확보를 위해 교육예산 86억원(올해 기준) 중 20억원, 다른 부서 신규사업 20억원 정도를 취소할 계획이다. 강남구와 서초구도 기존 교육예산을 줄여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구는 오는 5일 제출하는 예산안에 학교 시설 유지·보수 예산 19억원, 방과후 프로그램 예산 12억원 정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할 계획이다.
앞서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한 인천시의 경우 한때 공무원 월급조차 주지 못하는 ‘모라토리움’ 현상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무상급식 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다른 교육지원 예산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타 사업 예산까지 끌어 쓰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면 서울시도 그리스의 전철을 밟게 되는 현상이 곧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