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신당 창당론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 부상...속 쓰린 민주당, 정치공학 셈법 복잡 미묘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여권이 ‘새판짜기’에 분주하다.

    자갈밭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나라당 내 곳곳에서는 쇄신 요구가 터져 나온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

    연일 정신없는 나날이다. 홍준표 대표는 ‘2040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쇄신의 일환으로 여의도 당사를 없애겠다”는 선언도 뒤따랐다. 다른 당직자들도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보려고 진땀을 흘리는 중이다. 

    후유증이 너무 큰 탓일까. 수습이 쉽지가 않다.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야권이 거세게 한나라당을 압박한다. 답답한 상황이다. 분위기를 추스르려는 당 지도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비판의 칼 끝을 겨누기도 한다. 당 쇄신을 요구하는 의원들은 지난 6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국정운영 방향을 틀라고도 했다. 청와대는 고언(苦言)은 듣겠다면서 건의 방식을 탓했다. 날은 이미 저물어가 가고 있는데 갈 길은 아직도 먼 형국이다.

    민의(民意)에 의해 이뤄진 결과물이다. 투표에 참여한 서울시민 중 53%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결과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나라당을 이 지경으로 몰아붙인 뿌리는 단 한명으로 집약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검증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들로 미뤄보아 한나라당을 뒤흔들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야권통합에 몰두하는 민주당과 손학규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은 들러리 아닌 들러리에 불과했을 뿐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여당을 구워삶은 이는 바로 안철수 서울대 교수라고 콕 집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 안철수 서울대 교수 ⓒ연합뉴스
    ▲ 안철수 서울대 교수 ⓒ연합뉴스

    ■ ‘1시간씩 두 번의 만남+짧은 편지 한 통’

    '1시간씩 두 번의 만남'에 '짧은 편지 한 통'.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키는데 들인 품이다.

    안 교수가 없었다면, 박원순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박 시장이 다른 방도를 마련해 출마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 누구도 ‘안철수 역할론’이 결과의 핵심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선을 뒤로 돌려 지난 9월6일 오후 4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약 1시간 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 안팎에서 벌어진 사건은 선거구도와 정치지형의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안철수-박원순 공동기자회견이 열린다는 소식에 수백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서 안 교수는 자신의 불출마 및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을 발표했고, 인지도가 거의 바닥이었던 박원순 후보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는 정치권에 불어닥친 ‘안철수 신드롬’의 시작이었다.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안 교수는 잠잠했다. 그러자 한나라당과 나경원 후보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정밀검증’에 돌입했고 이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선거구도는 초박빙 국면으로 들어섰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박 후보는 안철수 교수에게 ‘SOS’를 요청했다. 안 교수는 이를 받아들였고, 다시 1시간여 동안 박 후보를 '만나 주었다'. 그리고 주어가 불분명한 A4용지 1장 분량의 편지 한 통을 전달했다. 일종의 '교시'였다고 보여진다.

    선거 당일, 결과는 ‘53% 대 46%’ 박원순 후보의 승리였다. 안 교수의 '깜짝 방문'과 '편지 한 통'이 초박빙 선거 구도를 뒤엎은 셈이다.

    ■ ‘안철수 신당’의 부상

    그리고 ‘안철수 제3정당 창당’ 가능성이 정국을 강타했다.

    10.26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0%가량이 안철수 교수 중심의 제3신당이 출현할 경우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문화일보>와 디오피니언이 지난달 29~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중심의 제3신당이 출현하면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40.9%에 달했다. 민주당 지지층의 53%가 신당 창당 시 신당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현재 정치권에선 야권 통합 차원의 신당 논의는 있으나, 제3세력의 신당 논의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친노 세력인 ‘혁신과 통합’이 안 교수에게 “야권 통합 신당에 참여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여론조사에선 실체도 분명치 않은 ‘제3신당’이 국회 과반 의석이 넘는 제1당 한나라당과 필적하는 지지도를 받고 있다. 우리 헌정사(憲政史)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본인의 생각은 어떠할까. 선거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학장회의차 서울 신림동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을 찾은 안철수 교수는 ‘야권 통합을 위해 역할을 하겠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박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로 10.26선거 판세를 뒤흔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 후보 로 거론되는 것도 선거 연장선상이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당혹스럽다. 그런 결과는, 글쎄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제3정당 창당 관측에 대해서도 “학교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했다. 안 교수 본인은 일단 신당 창당을 부인한 것이다.

    안 교수와 가까운 인사들도 “(안 교수의) 통합 신당 참여는 아직 때 이른 얘기”라고 했다. 정치를 시작할지조차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야권 통합 정당 참여에 대해 말하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 ▲ 지난달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개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불편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 지난달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개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불편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 여의도 강타한 ‘안철수 창당論’

    “야당 내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안철수 신당 창당설은 가능성 있는 얘기다”
    “손학규 카드로는 박근혜를 이길 수 없다. 때문에 안철수 교수가 직접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 본인이 제3정당 창당을 부인했지만 여의도 내에선 신당 창당설이 끊이질 않는다.

    서울시보선에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시선을 끌면서, ‘대선 전초전’이란 말까지 나왔다. 당연히 정치권의 시선은 안 교수의 다음 행보에 쏠려 있다.

    신당 창당의 필요충분조건에는 조직 구축이 들어있다. '안철수 신당'도 예외는 아니다. 조직 구축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안철수 신당도 당장 구체화되기보단 어느 정도 ‘관망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요동치는 기성 정치권 개편 움직임을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안철수 창당론은 크게 두가지 길을 두고 설왕설래 중이다. 기성 정치권과 결합한 통합 정당이냐, 아예 제3지대 새 정당을 만드느냐이다.

    먼저 제3신당 출현보다는 야권 통합과정에서 신진 및 기성세력을 아우른 통합정당 등장이 점쳐진다. 신진세력은 안철수-박원순, '투 톱'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다. 기성세력은 민주당을 포함한 기존 야당들이다. 이들이 상호 견제와 경쟁을 통해 '환골탈태(換骨奪胎)'격의 새 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혁신과 통합’이 안 교수에게 손을 내민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만약 안 교수가 대선에 도전한다면 지난 서울시장 선거처럼 야권을 통합한 뒤 주자로 나올 것이다. 또 손학규 대표가 대권을 포기하면서 안철수 교수에서 힘을 실어 줄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안 교수가 기성 정당 모두를 비판한 만큼, 제3정당을 창당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안 교수의 입지가 확인된 만큼 마냥 장외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야당의 행태를 지켜본 뒤 제3세력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커질 대로 커졌다는 판단이 들면, 시민사회세력을 중심으로 전격 깃발을 세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안 교수가 민주당 등 기존 야당과 힘을 합치느냐, 아니면 신당을 창당해서 총선에서도 독자적으로 돌풍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신당을 만들되 민주당 인사들을 흡수하는 큰 틀의 야당으로 나가느냐 등 여러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다.

    ■ 안철수, 머리 굴리면서 꽃놀이패 굴리나

    이처럼 안철수 교수의 행보를 놓고 정치권 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민주당이 ‘안철수 카드’를 적극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는 복잡한 정치공학 셈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외견상 승리를 거뒀지만 내년 총선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이번 선거는 시민단체와 다른 야당 간 결합으로 거둔 것인 만큼 민주당 지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안 교수가 신당을 창당하고, 좌파 시민단체가 민주당과는 또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면 민주당이 차지할 총선 파이(몫)는 눈에 띄게 작아질 것이다.

    나아가 야권 대권주자로 손학규 대표보다 안철수 교수가 급부상한 만큼 민주당은 조급하다.

    뿐만 아니라 안철수 교수와 손을 잡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음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측근을 중심으로 시의회 점령에 나설 공산이 있다는 전망도 민주당을 불안케 한다.

    통합정당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기싸움을 시작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의 관계 설정도 모호하다. 민주당으로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선 안철수 교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일부 민주당원들은 아직도 ‘안철수-박원순’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한 당원은 “박원순에게 자리 양보한 것도 모자라 안철수에게 민주당을 흡수당한다면 그냥 투표를 포기해버리는 게 낫겠다. 어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배후에서 안철수-박원순을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다른 당원은 “안철수가 요리조리 꽃놀이패를 굴리는 사이 민주당은 점점 붕괴하고 있다. 더 이상 손학규는 민주당을 모욕하지 말고 당을 떠나라”라고 꼬집었다. 

    꽃놀이패(霸)란 바둑에서 한쪽은 패가 나면 큰 손실을 입으나 상대편은 패가 나도 별 상관이 없는 패를 일컫는다.

    이와 달리 다른 당원은 “안철수의 여론 조사를 보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변화를 수용하고 안철수 중심으로 힘을 모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을 꺾자”고 했다.

    문재인 이사장은 “제3정당 창당은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결국 야권 분열”이라고 못 박았다. 야권통합이 아닌 ‘후보 단일화를 통한 선거연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한 지붕 대가족’ 형태의 통합 모델을 역설하면서 일각에서 거론되는 ‘안철수 신당’에 초구 견제구를 던진 셈이다.

    그러나 초조한 것은 그들이고 꽃놀이 패를 즐기는 것은 안교수 뿐이라는 사실은 한국 정치문화의 어설픔을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