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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파는 전체주의 좀비가 돼 버렸다.
대한민국에는 진짜 좌파, 진짜 진보가 없다. 지금의 것은 가짜다.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좌파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진짜 좌파는 희귀동물인 정도가 아니라 멸종동물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 나는 불행하게도, 멸종해가고 있는 종족에 속한다.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좌파는 사회민주주의자연대이다. 사회민주주의자연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멸종상태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의 좌파와 진보가 가짜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명이 번영하는 길—진실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진짜 좌파라면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어야 하며 생명이 번영하는 길을 가리켜야 한다. 현실은 ‘열린 세계’(세계시장 질서)와 ‘존엄한 개인’(개인화)으로 특징지워진다. WTO, OECD, FTA로 상징되는 세계시장이 나날이 강화되어 가고 있고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90%가 넘는다. 우리는 도시무역국가가 아닌 나라 중에서 가장 밀접하게 세계시장과 통합되어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 선진국에선 지난 30년 동안 ‘열린 세계’와 ‘존엄한 개인’을 향한 도도한 역사적 흐름이 급진 좌파를 박멸하고 정통 좌파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선 급진 좌파의 몰락을 한 번 살펴보자.
1970년대 일본의 적군파, 이탈리아의 붉은여단, 독일의 바더마인호프, 미국의 좌파 갱단과 같은 도시 게릴라가 마지막 급진 좌파였다. 대학교수, 회계사, 변호사 등 ‘고급 지식층’이 대책 없는 급진 좌파들의 주축을 이루었다. 우리 사회에서 아르마니 캐주얼을 입고 프랑스 레드와인을 먹고 에르메스 넥타이를 매는 고급 지식층 중에 강남좌파가 있듯이,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개념있는 고급 지식층’ 중에 도시 게릴라가 나왔다. 예를 들어 독일 바더마인호프 갱단의 표준 차량은 포르쉐였다. 또 다른 예로서, 1978년 이탈리아 알도 모로(Aldo Moro) 총리 암살에 관여했던 네그리(Antonio Negri)는 이탈리아 파두아(Padua) 대학의 정교수였으며 프랑스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인 에꼴 노말 슈피리어(École Normale Supérieure)의 객원 교수였다.
- 이들 유럽•일본•미국의 급진 좌파가 도시게릴라가 되어 스스로 자멸하게 된 것은 세계 시장이 고도화되고,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이 극대화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조차 가물가물한 존재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같은 흥미위주 대중소설에 사용되는 어렴풋한 배경 소재일 뿐이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던 것은 1987년이다. 유럽•일본•미국의 급진 좌파가 모두 박멸되고 난 이후였다. 그 때문에 우리 사회의 급진 좌파는 부지런히 ‘체제 안으로’ 들어왔다. 민노총, 민노당, 전교조가 합법화되어 ‘대한민국 체제 안의 운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민족해방, 급진 혁명 이념을 버렸더라도 그 근본사고방식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열린 세계를 인정한다면 WTO와 FTA를 반겨야 할 것 아닌가? WTO를 확정지은 회의가 우루과이에서 열린 까닭에 흔히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불리는데, 우리 사회의 좌파는 1990년대 초에 WTO에 반대한답시고 우루과이 대사관 앞에 가서 죽창을 치켜들고 화염병을 던졌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FTA에 반대한답시고 온갖 괴담과 궤변을 늘어 놓고 있다.
진짜 좌파라면 마땅히, 유럽의 정통 좌파가 변신해 온 과정을 본받아야 한다. 그들은 의회 민주주의 원칙을 굳게 지켜왔다. 또한 그들은 지난 30년 동안, 세계시장의 진화를 인정하고 이에 적응하는 노선을 취해 왔다. 또한 이들은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북한 전체주의의 인권 유린을 규탄해 왔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의 좌파는 세계시장의 발전을 폄하한다. 개인의 존엄성이 아니라 떼의 힘을 내세운다. 북한 전체주의 체제를 추종하거나, 옹호하거나, 그에 협력한다. 예를 들어 조국이든 유시민이든, 천안함 폭침에 대해 말을 얼버무리면서 북한 전체주의 지배계급을 ‘교류와 협력의 파트너’라고 치켜 세운다. 우리 사회의 좌파는 북한 전체주의 추종자, 부역자로 타락했다. 좌파는 가짜가 되어, 전체주의 좀비로 전락한 것이다.
2. 한반도 좌파 운동사는 ‘진짜’를 제거해 온 역사였다.
한반도의 좌파 운동사는 '양질의 좌파 운동가'를 숙청하고 제거해 온 역사이다. 북한의 경우, 1956년 대숙청으로 1만 명 안팎이 제거 당한 이후 김일성 개인숭배 체제가 강고하게 뿌리박았다. 일제시대부터 급진 좌파 운동을 해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때 숙청당했다. 목숨을 부지해서 중국으로 도망간 급진 좌파만 1천명이 넘는다.
6.25 이후 남한에서는, 북한에서 남로당계가 100% 제거당했음에도, 오히려 종북 노선을 띄었다. 남한의 종북 급진 좌파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재건되었다. 북한 전체주의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이 모두 이 지역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급진 좌파 운동이야말로 극단적인 ‘영호남 차별’ 양상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남민전의 경우 본체인 남민전은 대구•경북 사람들이 주도했고 외곽 조직인 민투(민주화투쟁위원회)의 멤버는 호남 사람들이 주축을 이뤘다. 민투 역시 그 책임자(이재오)는 경북 칠곡 출신이다. 이 사람들 중에는 대단히 재능이 풍부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통혁당의 핵심 관련자인 신영복의 경우,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를 써서 사람들의 술맛을 돋구어 주고 있다. 내가 마시는 ‘처음처럼’의 글씨 인세가 종북 집단의 운동자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기만을 빌 뿐이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이미 마르크스, 모택동의 책이 금서가 된 지 오래이다. 북한 헌법 서문은 14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김일성이란 단어가 17번 나온다. 헌법 서문 자체가 북한을 '김일성의 나라'라고 선언하고 있다. 극악한 전체주의 1인 숭배체제이다. 남한의 급진 좌파는, 북한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이미 좌파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집단이다.
북한 전체주의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 종북 집단이 주도해 온 남한의 좌파 운동은 겉으로 혁명을 포기했을 뿐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세계시장의 발전을 폄하하고, 개인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습성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이 습성 때문에 이들은 양식있는 양질의 좌파를 차례로 제거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지하, 문익환, 장기표, 주대환이다.
1991년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쓰자 이들은 벌떼처럼 김지하를 공격해서 반병신을 만들었다. 1994년 문익환이, 종북 노선인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해체하고 남한 운동가들이 주도하는 민족회의를 만들고자 했을 때 이들은 김일성의 지령에 따라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문익환을 “안기부 프락치”라고 공격했다.
평생 동안 민주화와 노동운동을 위해 일해 온 장기표나 주대환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기표는 전태일 분신자살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로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획을 그은 사람이다. 주대환은 한때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을 한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가치와 세계시장의 발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북한 전체주의의 참혹한 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이다. 그 덕분에 이들은 이미 지금의 가짜 진보 운동권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이나 족보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3. 강남좌파가 아니라 강남좀비들이다.
강남좌파 역시 위에서 말한 남한 좌파의 일반적 특성에 의해 단단히 영향을 받고 있다. 이들은 결코 세계시장의 발전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이들은 결코 북한 전체주의 지배집단을 비판하는 법이 없다. 이들은 결코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선선히 인정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 이들은 북한 전체주의에 의해 직간접 영향을 받는 좀비에 불과하다. 이들은 좌파가 아니라 강남좀비이다.
이 강남좀비의 뇌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의외로 뇌는 멀쩡하다. 자못 유식한 개념과 단어도 비교적 정확하게 사용한다. 문제는 이들의 심장, 영혼, 심리 구조가 비틀려 있다는 데에 있다. 이들은 스무 살 무렵 안팎에 마르크스 레닌주의 혹은 김일성주의 이념으로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둘 다 사람의 영혼을 깊게 망가뜨리는 전체주의 사상이다.
전체주의 사상은 달콤하다.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을 구원하는 사회”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는 상품(commodity)과 물신숭배(fetishism)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뒤집어 엎고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면 인간이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김일성주의에서는 일본, 미국의 영향력을 단절하고,민족주체성에 바탕한 민족공동체를 만들면 인간이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스무살 안팎에 이런 전체주의 이념의 세례를 깊게 받은 사람들 중에는, 더 이상 해방과 혁명을 믿지 않더라도, 여전히 이념의 뿌리가 그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이 뿌리를 뽑고 나면 .인생의 끔직한 심연—“인생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허무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쿤데라(Milan Kundera)는 이를 두고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라고 불렀다.
전체주의 세례를 받지 않은 보통사람은 평생 이 허무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면서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살아왔다.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도, 이 허무의 밑바닥을 응시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남이든 강북이든, 가짜 좌파들은 나이 마흔, 쉰이 먹도록 이 허무의 밑바닥을 직시한 적이 없다. 그대신 진보니, 계급이니, 민족이니, 해방이니, 민중이니 하는 단어로 가짜 가치관을 형성해서 이를 부둥켜 안고 살아 왔다. 이 가짜 가치관을 버리면 인생이 갑작스레 공허해지고 허무해지고 아무런 도덕과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무중력 상태에 던져지게 된다.
그래서 혁명을 포기했다고 하면서도 전체주의 이념의 근본 사고방식과 뿌리는 안 버리는 게다. 이는 마치 황장엽과 같다. 그는 죽을 때까지 주체사상을 부둥켜 안고 살았다. 그의 메시지는 이랬다.
“내 주체사상이 진짜야.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주체사상은 가짜란 말이야!”
가짜진보는 좀비다. 강남좌파는 강남좀비다. 인생의 허무, 의미 없음을 직시하는 상태에서 자기자신의 도덕과 가치를 정립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겁쟁이들이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내 후배는, 저녁마다 80년대 운동권 서적을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찍이 6세기 로마 정치인 보에티우스(Boethius)는 사형수가 되어 처형을 기다리는 상태에서, 행운, 불운,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적었다. 중세 철학의 교과서가 된 ‘철학이 주는 위안’(Consolation of Philosophy)이란 책이었다. 그러나 강남좀비와 같은 비틀린 영혼에게는 건강한 철학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 한다. 그들에게는,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을 다시 곱씹는 것—이것만이 위안이 될 뿐이다.<명 푼수다>에서는 지금 이 칼럼의 주제를 놓고 수다를 늘어 놓았다.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들어보시길 바란다.
<명 푼수다> 제 ⑥ 화 강남좌파는 없다. 강남좀비 있을 뿐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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