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치고 정치? (편집자 주: <나꼼수> 김어준의 책) 턱도 없는 소리다. 정치 자체가, 정치인 뿐 아니라 온 국민을 닭장 속에 가두어 못 살게 구는 ‘닭 치는 정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닭장 속의 닭처럼 길들여져서 대선 후보 혹은 종친초 앞에 설설 기는 존재가 된 지 오래이다. 선거판이 피가 낭자한 투계장이 된 지 오래이다. 국회가 닭 전시장이 된 지 오래이다. 정치가 거대한 닭 농장이 된 덕분에 이제 온 국민이 닭장 속의 닭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
A4 용지 정도의 바닥 크기에 닭 한 마리. 대한민국은 이제 거대한 닭 농장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아, 차라리 오웰(George Orwell)이 그렸던 ‘동물농장’이 부러울 지경이다. 거기엔 최소한 숨을 들이쉬고 내뿜을 공간이라도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거대한 닭 농장이 되어버렸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잘 나간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스스로 ‘닭’ 혹은 ‘닭대가리’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사회가 닭 농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집권당의 국회의원이 20대 중반에 벌써 강간, 절도를 포함해서 전과 4범을 기록한 인간을 ‘9급 비서’로 앉혔다. 우리 같은 시정잡배들은 그런 인간을 ‘꽈자’(전과자)라고 부른다. 강간은 특히 ‘물총’이라고 해서 인간 말종 취급을 받는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일이 없지만 한 20년 전에 군대 영창에 ‘물총’이 잡혀 오면 반쯤 죽었다. 우선 철창 밖으로 정강이까지 두 발을 뻗게 한 다음에 곤봉으로 발바닥을 5백대쯤 때렸다. 발바닥 전체가 부어 올라 열흘 가량 걸어다니지 못 하게 만들었다. 헌병에게 곤봉으로 맞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같은 방의 수인들이 몰매를 놓는다. ‘꽈자’의 세계에서 물총은 불가촉천민이다.
그 다음에 지저분한 범죄가 절도. 정말 배가 고파서 저지르는 훔치는 것이 아니라 ‘손버릇’이 나빠서 훔치는 사람은 ‘꽈자’의 세계에서도 가장 저질로 취급된다. 집권당 국회의원이 이런 물총과 손버릇을 포함한 4범 꽈자를 비서로 앉혔다는 것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것은 이미 닭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꽈자가 “나, 국회의원 비서여!”라고 폼 잡고 다녔다. 꽈자의 간이 점점 부어서 드디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지 친구로 하여금 선관위 서버를 향해 3류 DDOS을 하도록 만들었다. DDOS 공격은 엄격히 말하면 해킹이라 부를 수도 없는 조잡한 기술이다. 세션 연결 신청 메시지(session hand shaking)를 대량으로 만들어 날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 무식한 ‘접속 방해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조잡한 사보타지(sabotage)를 했던 사람들이 체포되었을 때 마약이 나왔다고 한다. 마약 중독자를 흔히 ‘약쟁이’라고 한다. 물총, 손버릇, 약쟁이….
꽈자의 행위가 들통나자, 국회의원은 “내가 시킨 일 아녀!”라고 말한다. 집권당은 “당 차원의 일이 아녀!”라고 말한다. “개가 사람을 물어서 죄송합니다. 개 주인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옷 벗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아, 애초에 이들은 옷을 벗을 필요가 없는 닭 같은 존재였던 게다. 그렇다. 닭은 옷을 벗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승을 하직하는 날, 냄새 나는 깃털을 깡그리 뽑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옷 벗을 필요가 없다는 점만 닭을 닮은 게 아니다. 머리도 닭을 닮았다. ‘닭 머리’ (닭대가리).
잘 나가는 국회의원들만 닭인 것이 아니다. 닭 중에 검은 닭이 폼 나게 보이듯이 옷 중에는 판사들이 입는 검은 법복이 멋있다. 그런데 검은 판사 옷과 검은 닭 깃털 사이의 유사성 때문인지 일부 판사들도 정치판에 끼어들어 밥그릇 싸움을 시작하면서 닭을 닮아가고 있다. 그것도 떼를 이루어 닭 흉내를 낸다.
나는 판사들이 떼를 이루어 “한미FTA를 사법부가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법주권’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너무 웃다가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머리가 완전히 닭대가리 수준이 된 게다. 혹은 아주 사악한 언어강간범이 된 게다. 나는 이 판사들이 언어강간이라는 매우 흉측한 범죄를 지을 리 없다고 믿는다.
아, 흥분하지 마시길. ‘언어강간’을 매우 흉측한 범죄라고 생각한 원조 사상가는, 나 같은 시정잡배가 아니라,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이다. 그는 “언어는 공동체를 묶어주는 본드이다. 언어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범죄이다”라고 말했다. 이 판사들은 사람의 차원에서 언어를 강간한 게 아니다. 닭의 차원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는 새삼 ‘강간’이니 ‘범죄’니 평할 필요가 없다.
사법주권(judicial sovereignty)이라는 개념은 FTA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주권이라고 하면 ‘국가의 독립성’을 생각하기 때문에 ‘사법주권’이 마치 국가의 독립성에 관한 문제라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판사가 나서서 “FTA는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하면서 “우리 일을 우리가 재판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면, 보통사람은 마치 국가의 독립성이 훼손당한 사건으로 짐작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판사가 나섰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천만에. 사법주권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개념이다. ‘주권’이라는 단어가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서, ‘사법주권’이 가지고 있는 원래 뜻을 뭉개버리고 전혀 다른 엉터리 주장을 한 게다. 닭의 수준까지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 판사들을 ‘언어강간범’으로 고발해야 했을 게다.‘사법주권’은 “판사가 존엄한 개인 주체로서 판단할 독립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에 관해 판단하는 독립성인가? 기본법(fundamental laws)을 기준으로 제정법(statutory law)을 판단할 독립성이다. 기본법은 자연법(인간의 본성에 관한 법률적 통찰) 및 그를 반영한 헌법을 포함한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 쳐보자. 계획살인, 상해치사, 과실치사, 정당방위 등 제정법 상의 여러 가지 규정 중 하나를 적용해야 하는 애매한 경우라고 상상해 보자. 이때 판사가 그 정황과 인간에 대한 고려를 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사법주권의 개념이다. 즉 사법주권은 “인간의 보편적 본성과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문제에 관해 판사 개개인이 깊게 고뇌해야 한다는 실존적, 철학적 의무를 뜻한다.
왜 법복은 성직자의 옷과 같은 검은 색일까? 위에서 말한 한없이 무거운 실존적, 철학적 의무를 걸머졌다는 표시이다. 자연법(기본법)과 제정법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고뇌의 표시이다. 이 긴장과 고뇌 속의 결단이 바로 ‘사법주권’이라 불린다.
‘사법주권’이라는 개념이 이런 뜻임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이 떼를 이루어 한미FTA에 관해 “이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여!”라고 주장한다고라? 검은 닭들이 떼를 이루어 밥그릇 앞으로 모여드는 것과 똑 같은 꼬락서니일 뿐이다.
한미FTA와 같은 각종 조약은 애초에, 너무나 일상적인 너무나 평범한 차원—순전히 제정법(statutory laws) 차원의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디에도 자연법(기본법)과 제정법 사이의 긴장이 없다.
아, 물론 평양의 법관에게는 외국과의 조약이, 인간의 실존적, 철학적 본성과 관계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됨의 본질은 민족주체성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족을 떠나서는 인간이 성립하지 않는다—이것이 김일성주체사상의 핵심 명제이다.
한미FTA가 “사법주권의 문제이다”라는 주장은, “한미FTA가, 인간의 본성과 국가의 제정법 사이의 원초적 긴장과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개인실존을 국가와 민족에 예속되는 것으로 보는 끔직한 전체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대한민국 판사들이 떼를 이루어 외치고 있는 것이다!
더 비참한 일은 이 판사들은 자신들이 매우 끔직한 전체주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언어강간범’ 혹은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들은 검은 법복을 입은 닭일 뿐이다. 닭대가리가 같은 두뇌를 가지지 않았다면, 개인의 실존적, 철학적 긴장과 고뇌를 모조리 국가와 민족에 예속시키는 어이없는 짓을 하고도 자신이 무슨 짓을 처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 하는 비참한 존재로 타락할 수 없지 않은가!
자,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국내 프로축구 정규리그에서 우승한 전북팀 최강희 감독의 축구 철학이 '닥공(닥치고 공격)'이라고 한다. 수비 위주의 재미없는 축구보다는 공격적 축구를 구사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그럼 닥치고 정치는 어떨까? 닥치고 정치하다가는 큰 일 난다. 강간 절도범이 국회의원 비서가 되어 선관위 서버에 대고 오줌을 갈기고, 판사들이 떼를 이루어 자기 자신의 실존적, 철학적 존엄성을 내팽개치고 정치판에 끼어드는 상태가 바로 지금 한국의 정치이다. 이런 마당에 닥치고 정치하다가는, 온 국민을 닭장에 가두는 ‘닭 치는 정치’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아, 그렇다면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가? 천만에. 희망은 차고 넘친다. 정치가 개판도 못 되는 ‘닭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서 땀 흘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오늘 우리 경제는 무역 1 조 달러를 돌파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닭장으로 변할 위기에 있지만 정치의식의 거대한 각성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것이 꽉 막힌 듯 보일 때가 바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직전인 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조건은 모두 무르익었다. 최면이 깨졌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는 최면에 걸려있었다. 여권에서는 박근혜의 존재감이 너무나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줄서기 최면현상이 진행되었다. 야권에서는 종친초(종북, 친북, 촛불군중 연합체)의 맹위 앞에 정통 야당마저 납작 엎드리는 눈치보기 최면현상이 벌어졌다.
지난 8.24 서울 주민투표와 10.26 재보선은 이 두 개의 최면을 산산이 깨뜨렸다. 여권에서는 박근혜가 절대적 존재의 자리에서 내려와 상대적 존재가 되었다. 야권에서는 종친초가 정통 야당을 직접 접수하겠다고 나섬으로써 야권의 합리적인 실력자들이 종친초에 대한 반란을 시작했다. 한미FTA를 둘러싸고 야권에서 나왔던 합리적인 목소리들은 바로 그 반란의 시작을 알리는 조짐이었다.
내년 19대 총선은 뜻있는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의 정신적 독립선언식이 된다. 더 이상 닭장 속의 닭으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대차고 줏대 있는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선거판은 여야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독립적 정치인과 최면 걸린 닭들 사이의 투쟁이 된다. 당연히 독립적 정치인들이 많이 이길 게다. 그 결과 여의도는 닭 전시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국회가 된다. 정당은 닭장이 아니라 국민에게 가치(value)를 널리 알리고 이를 중심으로 국민을 이끄는 정치결사체가 된다. 그 때 대한민국은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는 체제—공화국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닭들의 반란이 시작될 때에만, ‘닭 치는 정치’가 비로소 ‘닥치고 정치’가 될 수 있다. 모든 당(萬黨)의 닭들이여 궐기하라! Rise up, cocks and hens of all parties! 그대들이 스스로 깃털을 뽑아낼 때, 냄새 나는 깃털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리라![편집자 주]
이 칼럼에서 다룬 '닭 치는 한국 정치'를 주제로 <명 푼수다>에서 <저격수다>로 명패를 바꾼 '수다 팀'이 정치토크쇼를 가졌다.<저격수다> 듣기 ☞ ⑨ 닥치고 정치? 닭 치는 정치!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ngmo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