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1962)-통혁당(1968)-남민전(1979)..면면한 종북의 흐름! 평양 붕괴 조짐..90년대 들어 결정적 승리를 굳힌 종북은 지금 초조!
  • 가짜진보와 짝퉁보수


    YS 정부 때부터 우리 정치는 진보-보수 구분틀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전세계의 살만한 나라 중에 이 구분틀을 널리 사용하는 사회는 우리 밖에 없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진보-보수 구분틀이 아니라, 리버럴-보수 구분틀을 사용한다.

    진보-보수 구분틀은 웃기는 착각이다. 진보는 가짜이고, 보수는 짝퉁이기 때문에.

    진보라고? 역사가 어디를 향해 진보하는데? 누가 그것을 장담하는데? 그 장담을 누가 믿는데?

    보수라고?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해 온 사회에서 보수할 게 무엇이 있길래? 보수를 말하는 당신은 과연 어떤 오래된 가치와 제도를 지키면서(보수하면서) 살고 있는가?

    차라리 반동이라 불러라

    진보(progressive)는 처음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 전체주의자들의 개념이었다. 진보는 항상 ‘인류 역사’를 떠벌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이야기하고, 삶이 아니라 (추상화된, 신격화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버르장머리이다. 그들은 ‘나’--1인칭단수(the first person singular)를 “문법적 허구”(grammatical fiction)라고 불렀다.

    ‘나’는 문법에서나 존재하는 개념일 뿐, 현실적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현실적 존재는 ‘인류의 역사’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 역사가 사회주의를 향해 ‘진보’한다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진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작품이었던 게다.

    그래서 진보의 반대말은 보수가 아니라 ‘반동’(reactionary)이다. 그렇다.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상대방을 ‘반동’이라 불러야 한다. 이왕이면 네 글자--‘반동분자’(reactionary element)라고 부르면 더 좋다.

    좀 겁난다고? 겁날 것 없다. 당신들! 진보가 좋아 죽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반동’이라 부르면 된다. 이왕이면 ‘반동분자 쉐이!’라고 불러주면 더 좋겠다.

    1970년대 후반 베트남 보트피플의 물결이 유럽과 미국을 덮친 이후에 ‘진보’(progressive)란 단어는 유럽의 주류 정치 평론에서 사라졌다. 유럽에서 급진 좌파가 몰락했기 때문에. 또한 서유럽 ‘진보’의 천국이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마저 공산당이 스스로를 해체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한 직후, 즉 YS 때에 운동권은 족보도 없는 구분틀인 ‘진보-보수’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천박한 제도권 언론은 날름 이 구분틀을 받아 먹었다. 왜 그랬을까? ‘보수’가 되는 것이 우리 사회 상류층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윤리, 이념, 가치, 원칙이 비어 있는 공허하고 탐욕스런 존재들이라는 자격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 상류층의 로망은 바로 “유서 깊은 보수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꺼내놓은 진보-보수라는 해괴망측한 구분틀을 냉큼 받아들였던 것이다!

    50년대 최고의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무슨 아이스크림! 양키 놈 x대강이나 빨아!”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보수는 무슨 보수! 영국 놈 x대강이나 빨아!”

    대한민국은 개혁 리버럴이 만들었다

    영국의 역사 사상가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다. “기원 8세기에서 4세기까지 약 4백년 동안, 아테네의 정치인들은 일련의 경제적, 정치적 개혁을 이루어냄으로써 사회혁명을 예방하여 막아냈다 Athenian statesmen averted a social revolution by successfully carrying through an economic and political revolution…”

    이 말을 바꾸면 이렇다. “대한민국은 지난 67년 동안 일련의 경제적, 정치적 개혁을 이루어냄으로써 스탈린-모택동-김일성식 적화를 막고,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번영한 국가가 되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개혁 외발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 길 밖에는 없다. 대한민국 사람은 태생적으로, 보수가 아니라 개혁 리버럴들이다.

    (사사오입 개헌 이전의) 이승만과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당시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리버럴이었고 개혁가였다. 이승만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박정희세계시장 체제에 민족의 운명을 걸었다. 거대한 도박이었다. 이 두 도박이 성공해서 지금 대한민국의 기틀이 잡혔다.

    운동의 에너지 역시 개혁 리버럴이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이끄는 ‘위로부터의 개혁’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특히 4.19 이후 민주주의, 즉 정치 개혁을 향한 거대한 각성과 움직임이 있었다. 편의상 이 움직임을 ‘운동’이라고 부르자. 이승만과 박정희가 ‘국가 발전 전략’에 관한 개혁 리버럴을 대표한다면, 운동은 ‘시민사회의 태동’에 관한 개혁 리버럴을 상징한다.

    4.19 이후 80년대 초중반까지 약 4반세기 동안 운동의 근본 페이소스(pathos)는 무엇이었던가? 개혁 리버럴 정신에 대한 호소 아니었던가? 그것이 김수영, 김지하, 김민기의 정신세계 아닌가?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종북이 운동권을 장악하면서 운동권에는 전체주의 패거리 근성, 떼근성이 뿌리잡았다. “진실에 대한 존중” “개인실존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떼에 유리한 것을 ‘진실’이라 부르는 습관” “떼에 대한 존중”이 자리잡았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개혁 리버럴의 정신에서 이탈함으로써 스스로 오욕의 길로 들어섰듯이, 운동 역시 개혁 리버럴의 정신을 포기함으로써 종북의 길로 타락했던 것이다.

    4.19 이후 대한민국 운동의 역사는 ‘종북이 개혁 리버럴의 운동에너지를 장악해 간 역사’였다. 이 장악은, 1991년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란 글을 쓴 이유로 운동권에서 매장되었던 사건에 의해 일단 완성된다. 종북이 완벽히 승리했던 것이다. 그래서 1991년 이후 운동권은 종북의 주도권 아래 존재해 왔다. 1962년의 인혁당, 1968년의 통혁당, 1979년의 남민전으로 이어지는 면면한 종북의 흐름이 1990년대에 들어서 결정적 승리를 굳혔던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평양을 옹호, 변호하는 데에 급급한 태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진보의 핵심에는 종북—평양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집단—이 들어 있다. 진보의 앙꼬는 종북이 되고 말았다.

    아, 그러나 종북의 뿌리—평양이 붕괴해 가고 있다. 이제 ‘시민사회 형성에 관한’ 개혁 리버럴 정신이 부활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 발전에 관한 개혁 리버럴’ 에너지를 부추기고 강화하는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통일 한반도를 감당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갖출 수 있다.

    강철서신과 잠수정

    지금 통합진보당의 후보 중에는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조직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 다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재건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이었던 이석기이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2번을 맡았다.

    우리 사회의 종북 인맥은 인혁당-통혁당-남민전으로 이어지는 60~70년대의 종북—나는 이를 ‘구세대 종북’이라고 부른다—이 있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386 종북이 있다. 구세대 종북의 핵심은 통혁당(1969년 검거)이다. 그 보스(boss)인 김종태는 직접 북한으로 넘어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온 ‘간 큰 사나이’였다. 구세대 종북 3대 사건 중에, 북한으로부터 ‘지하당’ 자격을 인정받은 유일한 조직이 통혁당이다. 통혁당에 대해 주목할 점은, 1955년에서 1956년에 걸쳐 김일성이 남노당계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다음에, 최초로 김일성체제에 충성을 맹세한 남측 조직이었다는 점이다. 북으로 넘어간 선배들을 개죽음시킨 체제를 상전으로 모시는, 정신적 마조키스트 전통을 세운 것이 바로 통혁당이다.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를 쓴 신영복과, 한명숙 민통당 대표의 남편인 박성준이 대표적인 통혁당 관련자들이다.

    386 종북은 1985년에 김영환이 물고를 텄다. 김영환은 이 해에 ‘강철서신’이라는 팜플렛을 썼다. 이 팜플렛은 “1955년에 김일성에 의해 미 제국주의의 간첩으로 몰려서 죽은 박헌영은 정말 미국의 간첩이었을까?”라는 문제를 제기한 후 “간첩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김일성체제를 상전으로 받들어 모실 ‘마음의 자세’를 준비시키는 문건이었다.

    김영환은 1991년에 강화도에서 잠수정을 타고 월북해서 김일성을 만나고 북한 노동당에 입당한 후 미화 40만달러의 공작금을 받아서 민혁당을 조직한다. 그러나 그는 줄곧 ‘수령의 무오류성(infallibility)’—수령의 행동과 말은 절대적 진리이다라는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오다가 1997년에 스스로 민혁당을 해체하고 전향한다. 이때 해체에 반대한 인물들이 재건민혁당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간첩과 접선해서 북한과의 연결선을 확보하고 지하당을 재건한다. 이 인물들이 바로 하영옥, 이석기 같은 사람들이다. 요즘 신문 지상에 떠들석한 ‘경기동부연합’은, 재건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가 활용한 대중 공개조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신이상자와 배부른 돼지들

    재건민혁당 관련자들과 같은 색깔이 진한 종북주의자들이 이제 정당정치의 전면으로 나서고 국회의원 뱃지를 달려고 하고 있다. 밝혀진 사실로만 보아도, 이들은 불과 10여년 전까지 간첩과 접선하는 지하당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이들이 매우 초조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핵심 종북활동가들이 공개적인 정당활동에 나서면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운다는 말인가? 종북 운동 자체의 이익으로만 따지자면, 지하운동가-반지하운동가-(노동조합 등) 대중조직 운동가-정당활동가-정치인 등 5개 층위로 역할이 분담되어야 한다. 그런데 2011년 말부터 거의 모든 핵심 종북활동가들이 정당활동에 나서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같은 초조한 행태를 보이는 것일까? 원인은 평양에 있다. 북한이 붕괴해 가고 있다는 것을 핵심 종북활동가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제도권 안의 자리매김’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당의 당료든 혹은 국회의원이든, 제도권 안에서 한자리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덕분에 대한민국 정치가 몸살을 앓게 된 것이다.

    둘째, 도대체 우리 사회 주류(主流)는 얼마나 무원칙하고 무능하길래, 종북활동가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되었단 말인가? 세계 7, 8위의 무역대국이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도 지식기반사회(knowledge-base society)임에도 불구하고, 거덜난 전체주의 체제를 추종하는 정신이상자들이 정치권의 전면에 나서서 정치를 뒤흔드는 상황 아닌가! 종북을 탓하기에 앞서서 주류 제도권(main stream establishment) 내부를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주류 제도권은 윤리, 가치, 이념이 실종된 무골충, 무척추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자기 자신의 원칙과 기준을 정립하지 못 한 배부른 돼지들 아닌가? 

    종북에 취한 정신이상자들과, 아무런 윤리, 원칙, 가치도 없이 기득권에 취한 배부른 돼지들이 주물럭거리는 정치 문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무엇인가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태양이 머리 위 천정(天頂)에 떠서 사물의 그림자를 걷어버리고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는 순간—위대한 정오가 다가오고 있다.

    그 때 우리 건강한 시민들은, 정신이상자들에게는 정신과 입원 치료를, 배부른 돼지들에게는 울타리가 튼튼히 정비된 돼지우리를 제공할 것이다.

    [공지사항]
    <명 푼수다>는 제9회부터 <저격수다>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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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격수다 제 26 화] 정신이상자와 배부른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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