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뚫고 들어가라”는 김일성 赤化 교시

    “기독청년들을 막스·레닌주의보다 김일성주의로 교양시켜 기독교 서클을 장악해 갔다”

    金成昱    
  •        “남조선에 내려가서 제일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이 어딘가 하면 교회이다.
    교회에는 이력서, 보증서 없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그저 성경책이나 하나 옆에 끼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헌금이나 많이 내면 누구든지 신임 받을 수 있다.
    일단 이렇게 신임을 얻어 가지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미끼를 잘 던지면
    신부, 목사들도 얼마든지 휘어잡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의 현지 실정을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1974년 4월 對南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김일성은 소위 남조선 해방, 즉 赤化(적화)의 진지 중 하나로 軍隊(군대)·勞組(노조)와 함께 敎會(교회)를 꼽았다.
    對南공작원 출신인 故김용규씨가 폭로한 ‘김일성의 비밀교시’를 보면,
    김일성은 북한에 동조할 법조인 양성만큼 교회 공작에 관심이 많았다.
    “남조선에 내려가서 제일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을 교회로 본 것이다.
     
      올해 작고하신 김용규씨는 김일성 대학을 졸업한 인민군 대좌 출신으로 북한에서 ‘영웅’ 칭호까지 받으며 한국에 6번이나 남파됐던 인물이다. 그는 1976년 9월20일 7차 남파 시 한국에 귀순해 동국대 행정대학원 안보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치안본부·경찰대학 공안문제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던 북한전문가다.
      
      ‘김일성 비밀교시’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북한에게 한국 교회는 중요한(?) 곳이다.
    對南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출신 장진성 시인은 對南공작 핵심거점 중 하나가 “교회”이며 “교회를 통한 공작은 북한의 오래된 전술”이라고 증언한다. 교회가 남한 내 간첩·김일성주의자들이 침투하기 위한 통로라는 지적이다.
     
      좌익운동권에게도 교회는 놓칠 수 없는 곳이었다.
    운동권 출신인 문화비평가 이강호씨는 “75년 남한에서 民衆神學(민중신학)이 태동되면서 기독교 안에 좌익적 토양이 갖춰졌고, 80년대를 거치면서 유물론·무신론을 강조하는 정통 막스·레닌주의에 반감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이 대거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주의는 ‘민족주의’의 外皮(외피)를 걸치고 있어서 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이 적었고, 실제 운동권 리더십은 기독청년들을 막스·레닌주의보다 김일성주의로 교양시켜 교내 기독교서클을 장악해 갔다”는 것이다.
     
      97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교회는 간첩·김일성주의자들의 거점을 넘어서 북한 우상체제 지원을 위한 중요한 채널로 자리 잡게 된다.
    소위 남북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남한 목회자·장로들의 평양 출입이 빈번해지고, 조선로동당과의 자연스러운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결과이다.
     
      이상의 증언과 함께 눈여겨 볼 대목은 한국 교회의 급속한 左傾(좌경)·親北(친북)·從北(종북)화다. 좌경·친북·종북 성향 기독교 지식인 그룹은 이른바 ‘개혁’을 내걸고 교회와 목회자 ‘신상털기’를 통해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안에 북한과 연계된 추잡한 연합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단순한 교회 부패 이전에 교회를 파먹어 들어간 붉은 바이러스가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서구사회 달리 反共(반공)의 보루여야 할 교회가 오히려 容共(용공)의 기지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위험한 伏線(복선)이다. 한국 교회 건강성에 대한 섬뜩한 비난 이전에 ‘신앙의 자유’ 수호를 위한 전체적 조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이 북한과 연합해 북한처럼 변해간다면, 기독교인들이 머물 곳은 교회가 아니라 수용소나 처형장이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