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25)

     웨스트 하이카(West Hika)란 이름의 하물선에 탄 것은 1920년 11월 16일.
    내가 그 날짜와 배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의 상황이 몹시 험난했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대부분의 선편이 일본항을 경유했기 때문에 상해 직항편이 드물기도 했다.

    20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상해에 도착했을 때는 12월 5일. 나와 임병직은 중국인 선원으로 위장하고 배에서 내렸다. 이때부터 나의 상해 임정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밀항 해오던 상황보다 더 험난했다. 먼저 국무총리를 맡은 이동휘의 반발이 컸다.

    이동휘는 나보다 두 살 연상인 1873년생으로 당시 48세의 장년이다. 강화도진장을 지낸 육군참령 출신의 애국자로 안창호, 이동녕 등과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1911년에는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 당하기도 했다. 그 후에 연해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작년 상해 임정이 구성 되었을 때 군무총장, 지금은 국무총리가 되어있다.

    1921년 신년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동휘가 나에게 말했다.
    「각하, 지난번 윌슨 대통령에게 각하께서 조선 땅을 강대국이 위임통치 하도록 제안서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써 해명을 들어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는 안창호와 이동녕, 이시영에다 경무총장 김구까지 합석해 있었다. 나는 시선을 들어 이동휘를 보았다. 이동휘는 장신에 굵고 끝이 날카로운 콧수염을 길렀다. 강한 시선이 도전하듯 내 시선을 받고 떼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수없이 이 말을 했으리라. 안창호가 수없이 설명을 했어도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방안은 조용하다. 모두 숨을 죽이고 내 공식 해명을 들으려는 것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 제안을 했소.」

    이동휘의 어깨가 치켜 올라갔고 어디서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내가 말을 이었다.
    「신채호는 내가 없는 나라를 팔아먹어서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라고 했다지만 과연 여러분은 외국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조선을,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이라도 인정 해 주는 것 같습니까?」

    어느덧 내 얼굴은 상기되었고 억제하려고 했지만 목소리 끝이 떨렸다.

    심호흡을 한 내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일본제국의 뱃속에 들어가 이미 이름도 사라진 대한민국을 어떻게든 먼저 끄집어내려는 의도였소. 그리고 그것도 독립을 전제로 한 시도였던 것이오.」

    「과연.」
    커다랗게 말을 받은 사람이 김구다.

    김구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서열은 가장 낮지만 임정 경호총책으로써의 권위가 묻어났다.

    「없는 나라를 판다는 말은 궤변이고 모함입니다. 각하께서 그렇게라도 노력하신 덕분에 세계인들이 일본놈 뱃속에 있는 대한민국을 이만큼이나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이동녕이 말했고 안창호는 먼저 긴 숨부터 뱉고 나서 말했다.
    「이것으로 그 논쟁은 그쳤으면 합니다. 일본놈들이 들으면 가장 기뻐할 논쟁이었습니다.」

    과연 그것으로 그 이야기는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거론되지 않았지만 이동휘의 강직한 성품으로는 나에 대한 거부감이 가셔진 것 같지가 않다. 나 또한 내 주장이 강한 성품이라 결국 이동휘를 포용하지 못했다. 나하고 결별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고 화까지 났으니까.

    그때 회의를 마쳤을 때 김구가 한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김구가 나한테로 다가오더니 낮게 말했다.
    「사람은 저한테 좋은 소리만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