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 (25)

     

    승당(承堂) 임영신은 1930년에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1931년에 중앙보육학교장에 취임한 여성 교육자다. 해방이 된 1945년에 임영신은 대한여자 국민당을 창당하고 당수가 되었고, 1946년에는 중앙여대를 설립했다.
    나와 함게 워싱턴에 온 임영신은 1899년생이었으니 당시 48세로 신생 대한민국의 여성대표로 나설만한 인물이다.
    그 임영신이 미국무부 극동국장인 빈센트(John Carter Vincent)를 만난 것은 12월 중순쯤 되었다. 빈센트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오래 겪었기 때문에 자치정부를 운영할 능력이 없고 따라서 일정기간 신탁통치를 해야만 한다고 망언을 한 인간이다.
    그는 또한 소련과의 유화론자여서 번즈 국무장관과 손발이 맞았다.

    빈센트와 임영신이 만난 곳은 국무부 건물 안의 조그만 회의실이었다.
    그 자리에는 빈센트의 보좌관 한 명과 임영신의 보좌역으로 박기현이 수행했다.
    빈센트는 내 면담신청을 거절한 대신 임영신을 보른 것이다. 나 대신으로 만만하게 보이는 임영신을 불러 경고를 하려는 의도였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빈센트가 턱을 조금 든 얼굴로 임영신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 여러분들은 헛수고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이 박사가 아무리 언론에 대고 떠들어도 미국 정책은 바뀌지 않습니다.」
    임영신은 듣기만 했고 빈센트의 말이 이어졌다.
    「이 박사가 자꾸 소련의 위협을 말하는데 그것은 단독정부를 세위기 위한 핑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였던 빈센트가 임영신여을 보았다.
    「진주군 사령관 하지 중장까지 이 박사를 비협조적이며 반미선동가, 비현실적인 불평분자로 지적한 상황이요. 만일...」
    심호흡을 한 빈센트가 말을 이었다.
    「이런 행태가 계속된다면 미국 정부는 이 박사를 배제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잘 아실 테니 이 박사에게 그렇게 말씀 드리시오.」
    말을 마친 빈센트가 어깨를 펴고 의자에 등을 붙였을 때 임영신이 말했다.

    「이 박사와 나는 앞으로 세계가 미-소 양대국의 각축시대로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임영신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이었다.
    「지금 동유럽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국장께서는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이제...」
    그리고는 임영신이 똑 바로 빈센트를 보았다.
    「이박사와 저는 곧 미국 정부내의 소련 유화론자들은 세계 정세를 모르는 무식하고 무능한 인사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박기현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그때 빈센트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지더라고 했다.
    임영신이 한 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다행히 이 박사를 지지하는 의회 의원들, 언론인들, 장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남한에 소련에 대항하는 우익 정부 성립을 지원해 줄 때까지 이곳에 머물 것입니다. 나는 이 박사의 그 결심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그 때 빈센트의 얼굴이 똥을 삼킨 것처럼 일그러지더라고 했다.
    그러더니 뱉듯이 말했다는 것이다.
    「소련은 미국의 우방이야, 당신들이 상관할 일이 아냐.」

    「이것도 이 박사 말씀인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임영신이 말했다.
    「머지 않아서 미 국무부 안에서 소련 스파이로 체포되어 처단 될 인사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의 바르게 빈센트에게 절을 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국장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