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분열된 조국(27)

    트루만(Harry Shippe Truman) 대통령은 1945년 루즈벨트가 사망한 후에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인계 받은 터라 1947년 초까지의 미국 외교정책은 루즈벨트 시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미주리주 출신의 트루만은 1884년 생이었으니 1947년 당시에는 한국나이로 64세였지만 활동적이며 적극적 성품이었다.

    「이봐요, 제임스, 이거 읽었습니까?」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안에서 트루만이 탁자위에 놓인 워싱턴 포스트를 눈으로 가리키며 묻자 번즈 국무장관이 머리를 들었다.

    번즈(James Burns)는 1882년생으로 트루만보다 두 살 연상인 66세, 정치 경력도 선배였고 죽은 루즈벨트가 출마할 때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강한 성격으로 적이 많아서 트루만이 부통령으로 지명되었던 것이다.
    트루만은 대통령이 되자 존경했던 번즈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번즈는 루즈벨트의 국제협력을 중시하는 다변주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었는데 차츰 트루만과 마찰이 일어났다.

    요즘은 소련 위성국이 된 동유럽을 「철의 장막」이라고 부른 처칠이 소련의 팽창 억제에 미국이 적극 가담해줄 것을 요구해 오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철의 장막」근처에서 그리스와 터키는 공산당 세력과 투쟁중이었는데 처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번즈가 소극적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될것이다.

    번즈가 시선을 내려 워싱턴 포스트를 보았다.
    3단짜리 기사가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국의 닥터 리가 소련의 위협을 경고하다』기사 제목이 그렇게 뽑혀있다.

    「정신 나간 동양인의 언론 플레이요, 해리」
    「이 사람 프린스턴 박사 출신이던데...」
    웃지도 않고 말한 트루만이 정색하고 번즈를 보았다.

    「어제 백악관에 파견되어있는 국무부 직원을 닥터 리에게 보냈었소, 제임스」
    번즈의 시선을 받은 트루만이 말을 잇는다.
    「조리가 분명했고 처칠의 의견과 똑 같았습니다.」

    이제 번즈는 외면한 채 입을 다물고 있다.
    번즈의 옆모습을 향해 트루만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 우리는 미국 외교원칙을 바꿔야 할 때가 온것 같습니다. 전쟁시와 전쟁후의 정책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때 번즈의 시선이 탁자위에 놓인 신문으로 옮겨졌다.
    붉은 줄로 그어진 기사의 첫 단어가 『바꿔야 한다.』였다.
    머리를 든 번즈가 트루만을 보았다.
    「해리, 국무장관도 바꾸시지요.」

    이제는 트루만이 입을 다물었고 번즈가 말을 잇는다.
    「당신한테 맞는 새 국무장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유감이오, 제임스」
    「아니요. 당신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해리」
    쓴 웃음을 지은 번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잇는다.
    「이제는 새 시대니까요.」

    번즈가 방을 나가자 트루만은 의자에 앉아 길게 숨을 뱉았다.
    창밖으로 백악관 정원 이곳저곳에 쌓인 눈이 보인다. 1947년 1월 초순이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비서관 톰프슨이 들어섰다.
    「각하, 상원의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잠깐만,」
    손을 들어 보인 트루만이 지시했다.

    「방금 번즈가 국무장관직을 내놓았어. 처칠 수상한테 연락을 해.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상의해야 되겠어.」
    트루만의 목소리에 활기가 띄워졌다.
    「물론 비밀이야. 갑자기 소련을 자극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