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한번째 Lucy 이야기 ①   

    열 번째 수기를 덮은 나는 심호흡을 했다.
    밤이 깊었다. 탁상시계가 밤 12시반을 가리키고 있다.
    이승만의 측근이 되어있는 내 어머니의 할아버지 박기현이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수기 속으로 자신이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있다. 나는 탁상시계 밑의 서랍을 열고 서류봉투를 꺼내 들었다.
    지난 번, 여섯 번째 수기를 읽고 나서 만난 최영신이 가져온 서류였다.
    아버지 최기태가 이승만 암살작전의 행동대장이었다고 했다.
    이번 10장의 이승만 수기에 돈암장에서 저격을 당한 장면이 있다. 총탄이 빗나가 옆에 있던 이청상이 중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최기태의 자적이었는가?
    이제는 최영신이 가져온 서류를 읽을 때가 되었다.
    암살작전의 행동대장 최기태가 쓴 기록이다.

    <최기태의 기록>

    마틴 대위가 나를 불렀을 때는 1947년 2월말 경의 저녁 무렵이다.
    추웠다. 나는 남한에 배치된지 3개월, 제31침투부대 소속으로 유럽 전선에서 활동했는데 종전후에 귀국했다가 다시 이 춥고 시끄러운 땅으로 배치 받았다.
    참고로 제31침투부대는 지금의 수색대와 특공대를 혼합시킨 것이나 같다.
    유럽전선에서 독일 점령지에 침투되어 요인 암살, 정보 수집이 임무렸으니 모두 정예다.
    8개월 간의 지독한 훈련을 마쳐야 부대원이 되었으므로 계급은 모두 하사관이다.
    내 계급은 상사, 1947년 당시에는 26세, 한국계 이민2세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말할 수 있다.
    어머니가 프랑스계여서 가능한 일이었고, 한국계 내 아버지는 내가 스무살 때 돌아가셨지만 애국자였던 것 같다. 아버지 침실에 그 이상한 국기가 붙여져 있었으니까. 내가 한국에 왔을 때 그것이 태극기라는 것을 알았다.
    난 애국자가 아니다. 아니, 한국에 대해서 아버지한테 들었지만 금장 잊었다.
    왜냐하면 미국 시민이었으며 그것으로 만족했으니까. 아버지가 집에서 꼭 한국어만 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어를 배웠을 뿐이다. 그것을 인사카드에 써 놓은 것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갑자기 한국에 배속되었을 때 후회를 했다니까.

    나는 군정청 특별 보좌관 휘하의 「관리대」라는 조직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관리대에는 한국계와 일본계 요원이 네명 배속되어 있었는데 모두 나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정예였다. 우리들의 상관인 특별보좌관 핸더슨 중령은 국무부와의 연락을 맡았는데 사복을 입었고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들 임무는 한국내 정보 수집이다. 요원들은 일본계 놈까지 한국어에 능통해서 업무에 지장은 없다.

    자, 나는 마틴 앞에 섰다. 마틴은 핸더슨의 부관, 정보장교 출신이다.

    「테리, 임무가 있어.」
    마친이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좀 골치아픈 일을 시킬 때였으므로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마친과 나는 동갑이었고 군생활도 6년이어서 사석에서는 말을 놓는다.

    내 시선을 받은 마팀이 묻는다.
    「테리, 이승만을 알지?」
    알다 뿐인가? 이승만을 감시하느라고 돈암장을 열 번도 더 찾아갔다. 말도 안되는 말을 물었기 때문에 대답도 안하는 나에게 마틴이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 자가 곧 미국에서 돌아 올거야.」
    「그래서?」
    짜증이 난 내가 재촉했더니 마틴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자를 제거하는 거야.」
    「제거?」
    되물었지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잠깐 돈암장에서 보았던 이승만의 얼굴이 떠올랐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인간이었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