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④

    미-소 공동위원회는 미국무장관 마샬과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가 대표가 되어 1947년 5월21일부터 덕수궁에서 개최되었다.
    하지는 미-소 공동위원회가 모스크바 협정에서 체결된 ‘신탁통치안’을 건드릴 수는 없다고 남북한 정당과 단체들에게 미리 선언했다.

    하지와 나의 관계는 이미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하지는 직속상관인 동경의 맥아더를 거치지 않고 미국무부와 트루만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당시의 미국 대외정책이 일관성을 잃은 혼란 속에 스파이들의 반역에 이용당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다.

    「북한은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입장이니 남한의 반탁 주동자들만 억누르면 된다고 믿는겁니다.」
    어느 날 밤, 박기현이 몰래 나갔다가 들어 와 말했다.

    박기현과 이철상은 집사로 임용시켰기 때문에 나하고 같이 거주하면서 바깥 동정을 살피고 온다.
    정전이 되어서 촛불을 켠 돈암장 응접실에는 나와 박기현, 이철상까지 셋이 모여 앉았다. 박기현이 말을 이었다.
    「소련은 모스크바 협정을 기준으로 협상을 하려고 들기 때문에 미국도 양보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트루만이 루즈벨트와는 달라.」
    내가 감옥처럼 보이는 어두운 응접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국무장관 번즈를 내보내고 지난 3월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했어. 이젠 소련의 군사력이 위협임을 깨닫게 되었단 말야. 소련의 팽창을 막는 「봉쇄정책」이 필요한 시기란 말일세. 이번 회담도 그런 맥락일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문득 40년전 한성 감옥에서 수감자들을 가르치던 때가 떠 올랐다.
    내 말에 열기가 띄워졌다.
    「나는 이번 미국에서 한반도 신탁통치는 곧 『한반도 포기』라고 주장했어. 이젠 트루만도 그것을 깨달았을 거야.」
    「하지가 아직도 강경합니다.」
    이철상이 잇사이로 말했으므로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는 선택의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국무부 공산당 스파이의 지시대로 따를 뿐이다.
    거기에다 식민지 민족이었던 한민족에 대한 무시,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을 못참는 군인 기질까지 작용했으리라.

    내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이 회담은 결렬될 거야. 미국은 이제 봉쇄정책으로 소련의 팽창을 막을 것이고, 소련은 한반도의 총선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막을 테니까 말야.」
    「이미 북한은 소련 위성국이 되어있으니까요.」
    이철상이 말을 잇는다.
    「남북한 총선을 하면 김일성 정권이 흔들릴 수가 있지요. 회담 시늉만 하고 결렬시킬 것입니다.」
    하지가 아직도 남한에서 미국무부 친소 유화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대세는 트루만에 의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주군 사령관 하지보다 세계정세를 더 멀리 본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내 연금을 풀리지 않았다.

    공동위원회 회담이 지지부진 하면서도 한달을 끌어가던 6월 중순 무렵이다.
    이젠 연금상태에도 익숙해진 내가 저녁에 마당으로 나왔을 때는 8시쯤 되었다.
    이 시간에 프란체스카의 충고대로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이다.

    내 운동 상대로 그날은 경비병 잭슨 상병이 나왔다.
    돈암장 경비병으로 내가 집 근처를 산책할 때 두어번 따라 나온 병사다.
    물론 감시역이었지만 밝은 성격의 텍사스 출신이다.
    「잭슨, 오늘은 한 바퀴만 걷지.」
    내가 말했더니 잭슨이 빙긋 웃었다. 흰 이가 가즈런하게 드러난다.
    스무살쯤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