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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창당을 위해 의기투합한 안철수 의원과 한상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내놓은 카드는 '성찰적 진보'였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뒤 계파패권정치, 486의 권력화, 소모적 이념논쟁 등을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분석한 객관적인 자기성찰을 시도하다 친노(親盧)의 극성스런 반발에 밀려난 한상진 명예교수가 '성찰'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함으로써 친노당으로 전락한 더불어민주당과의 차별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안철수 의원과 한상진 명예교수는 7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50여 분에 걸쳐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 의원은 한상진 명예교수에게 윤여준 전 장관과 함께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한상진 명예교수는 이를 수락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나열하며 안철수 의원의 동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진 명예교수는 특히 '성찰'을 통한 '진실과 화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성찰에 안철수 의원도 예외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가장 먼저 대상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고, 안철수 의원 또한 이에 수긍하며 자신이 먼저 구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시절에 범한 여러 과오들에 대해 성찰하겠다고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을 끝내고 나온 안철수 의원은 취재진과 만나 "한상진 (명예)교수가 정말 어려운 결단을 내려줬다"며 공동창당준비위원장 수락 사실을 알렸다.
이후 취재진과 만난 한상진 명예교수는 "공동창당준비위원장직을 수락했다"며 "정말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울러 "정권교체의 희망이 없는 제1야당에 그대로 묶여 있을 수 없다"며 "새로운 돌파구가 될 제3정당의 필요성이 너무도 커서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상진 명예교수는 안철수 의원과의 독대 과정에서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안철수 의원이 먼저 나설 것을 요구했고, 이에 안철수 의원도 동의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는 "민주통합당에서 18대 대선평가위원장을 하면서 '제3자가 (외부에서) 들어와서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하니, 내부에서 진실을 소명해달라'고 진정으로 요청했다"며 "그것이 '멘붕'에 빠진 지지자들을 품어안고 화합해서 앞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런데 (내부에서의 진실 소명이) 안 됐다"며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의 커다란 문제점은 책임윤리가 없는 것이고, 기득권은 향유하려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재인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친노패권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되는 것이 무책임 정치다. 2012년 19대 총선(친노 한명숙 대표)과 같은 해 18대 대선(친노 문재인 후보)을 친노 계파가 모두 패배했음에도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지난해 2·8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친노 문재인 대표는 4·29 재보선과 10·28 재보선에서 참패했음에도 책임회피로 일관한 채 독선과 독주의 무책임 정치를 질주하고 있기도 하다. 한상진 명예교수는 바로 이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한상진 명예교수는 "척박한 정치 풍토 속에서 어떻게 책임윤리를 회복해 실망하는 유권자와 결합하고 그 힘으로 새로운 정치를 행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화두"라며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새정치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점은 안철수 의원 자신이 이 과정에 먼저 참여하겠다고 오늘 약속한 것"이라며 "한국정치에서 어느 누구도 정말 정직하고 진정성 있게 자신의 단견과 실수, 과오를 소명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항상 나는 옳고 상대방은 나쁘다는 도식이 이끌어왔는데 이것을 깨야 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의원도 "새정치연합에 몸담고 있었을 때 제안한 10대 개혁안에 '내가 공동대표 시절 있었던 과오나 실수에 대해서 나 스스로 반성하는 토론회를 열겠다'고 이야기했었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되고, 내가 제안했던 10대 개혁안이기 때문에 그걸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무책임 정치와 남탓, 우리만이 선(善)이라는 독선으로 일관해 스스로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친노 문재인 지도부의 행태가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의원과 한상진 명예교수는 이른바 '성찰적 진보'를 통해서 스스로 성찰하는 형태로 친노를 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안철수 의원과 한상진 명예교수가 합의한 '진실과 화해의 과정'이 제도화되면 무책임한 친노패권주의 세력에 큰 압박으로 작용함은 물론 향후 인재 영입 과정에서도 유리하게 기능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논란이 있는 인사들도 성찰의 과정을 거쳐 얼마든지 신당에 합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상진 명예교수도 "우리도 (과오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현재 정치를 하고 있는 분, 과거에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모든 분들을 이 정당은 환영할 것"이라며 "(지난 정치의 과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 진솔하게 소명하고 그걸 통해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한상진 명예교수는 공동창당준비위원장 수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안철수 의원과 이야기하면서 나의 역할은 여기 (신당 창당)까지로, 그것이 끝나면 다시 학자의 길로 가겠다고 했고, 안철수 의원도 '좋다'라고 합의했기 때문에 (창당준비위원장을 맡는 것)"이라며 "나는 학자로서 지금까지 컸고 연구하고 있는 것, 완성하고 싶은 이론이 있는데 상황이 워낙 위중하니까 잠시 (연구를) 접고 (신당 창당에) 올인하는 것이고 이게 끝나면 더 이상 욕심이 없다"라고 총선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한편 이날 한상진 명예교수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안철수 의원은 이 기세를 몰아 윤여준 전 장관에게 삼고초려(三顧草廬)할 뜻을 나타냈다.
안철수 의원은 "윤여준 장관에게 다시 한 번 부탁드리는 것은 물론 삼고초려하겠다"며 "합리적인 보수와 성찰적인 진보가 함께 힘을 합쳐서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에 (윤여준 장관에게 다시) 부탁을 드릴 것"이라고 밝혔다.